계절은 이렇게 내리네
배달노동자의 교육학 수업
"배달"이 무엇이냐 물으면 다음과 같이 답할 것이다.
봄에는 봄바람을 맞고, 꽃비도 맞는다.
여름에는 뙤약볕을 맞고, 때때로 장대비를 맞는다.
가을에는 낙엽비를 맞고, 이따금씩 추억을 마주한다.
겨울에는 칼바람을 맞고, 가끔 펑펑 함박눈을 맞는다.
배달은 4계절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일이다. 걸어서 배달하든, 자전거를 타든, 오토바이를 타든, 덥고 춥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해가 나는 모든 것을 몸으로 겪는 일이다. 좀 더 따뜻하게 입고, 좀 더 시원하게 입고, 비가 올 때 우비를 입고, 햇볕을 가리려 머플러를 착용할 뿐, 몸 그대로 계절과 마주하는 일이다.
햇수로 5년 동안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각각 마주하였다. 봄이면 봄이어서 좋았고, 가을이면 가을이어서 좋았다. 여름이면 여름이어서 싫었고, 겨울은 겨울이어서 싫었다. 봄이라고 마냥 좋지만도 않았다. 가을이어서 싫은 것도 있었다. 여름이라고 겨울이라고 해서 또 반드시 싫은 것만도 아니었다.
봄에는 꽃을 보고, 여름에는 하늘 가득 뭉게 구름을 보고, 가을에는 노랗게 빨갛게 물든 단풍을 보고, 겨울에는 삭풍에 무릎이 시려왔다. 봄과 가을은 날씨가 좋으니 사람들이 배달을 덜 시켜 벌이가 좋지 않았고, 여름과 겨울에는 덥고 추우니 배달을 많이 시켜 벌이가 좋았다. 계절이 가진 특성을 따라, 배달은 좋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늘 평범하게 혹은 특이하게 흘러갔고 흘러가고 있다.
나는 4계절을 눈과 귀와 몸으로 느끼며 보냈다. 산을 무대로 살아가는 심마니, 약초꾼도 아니고, 논과 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농부도 아니면서도 나는 자연이 지어내는 4계절의 흐름에 내 몸을 맡기어 살고 있다. 계절이 가하는 온화함과 난폭함에 순응하고 또 피하려 애쓰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배달이 아니었다면 도시에 사는 내가 이런 경험을 해볼 리가 만무하다.
다행히 나는, 내가 배달을 하는 지역의 혜택을 많이 입었다. 어린이대공원이라는 녹지대가 있고, 한강이 크게 흘러 시원함과 장대함을 안겨 준다. 건국대, 한양대, 세종대라는 큰 학교가 있어, 호수를 바라보고 동산과 숲길 사이를 지나며 페달을 밟고 있다. 자연스레 수많은 나무와 꽃과 새와 곤충과 어울리는 곳에서 배달을 하고 있다. 광진구와 성동구, 동대문구의 수많은 아파트와 단독주택들 사이를 오가고, 공장과 사무실을 오르내리면서도, 나는 4계절의 흐름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배달하는 호사를 누리는 것이다.
매일 단조롭게 흘러가는 배달이 지루하지 않고 덜 힘들었던 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꽃과 나무가 있었고, 새가 지저귀는 가운데 곤충들이 내 눈과 옷 속으로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계절은 소리 없이 다가왔지만, 수많은 색깔로 또 소리로 내가 지나는 배달길을 방해도 하고, 응원도 해주었기 떄문이었다.
가끔씩 세찬 비와 굵은 눈으로 괴롭히기도 했지만, 더 높은 배달비로 보상해 주었다. 그리고 세상살이가 화창함과 편안함과 찌푸림과 난폭함이 어우러져 흘러가는 것임을 순간순간 일깨워 주었다. 삶을 진지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관조하며 되새김질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배달을 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절은 여전히 이렇게 내리고 있다. 햇볕으로, 비로, 눈으로, 꽃과 나뭇잎으로 이렇게 내리고 있다. 뜨거움과 차가움, 온화함과 서늘함으로 이렇게 내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달린다. 계절의 흐름을 타고 오늘도 배달길에 나선다. 바라기는 오늘 계절이 충만한 어린이대공원 길, 성수동 카페골목 길로, 느긋하게 달려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해커스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