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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Jan 19. 2020

그걸 왜 버려?

그걸 왜 버려?


헉. 이게 무슨 말이지? 어떡하지? 아, 어떡해. 그럴 줄 알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아니 정말 그럴 줄은 몰랐다.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것 같다. 어떻게 할까. 나의 고집을 내세우며 대치 대결로 가? 아, 어떻게 할까? 좋은 게 좋다고 그냥 그가 하자는 대로 내버려 두어? 그러기엔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내게 정말 큰 타격이다. 이건 아니지 않은가. 아, 어떻게 할까.




며칠 전 함께 밤늦게 TV를 보고 있다가 우연히 채널을 돌리는 중에 홈쇼핑에서 멈추었다. 아, 저거! 내가 멈추게 했다. 왜냐하면 거기서는 커다란 거실용 쏘파가 특별 세일 중이었기 때문이다. TV 자체를 또 홈쇼핑을 거의 안 보는 우리이기에 어쩌다 돌린 TV에 쫘악 진열된 소파를 보는 순간 나는 딱 손이 멈추었다. 그리고 점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브라운 코코아, 그레이, 모카로 널찍한 소파가 3인용 4인용 6인용으로 나오는데 그것도 이태리제 가죽인데 특별 세일을 한다는 것이다. 나의 눈은 고정되었고 그리고 우리 집 소파! 그걸 노려보기 시작했다. 통하지 않아 절대 통하지 않아 포기하고 있던 소파에 대한 마음이 다시 몽글몽글 솟아났고. 우리 저걸로 바꾸자. 이태리제라잖아. 고급 가죽이라잖아. 저렇게 싸게 파는데. 별로 부담도 안되고. 이 참에 오래된 이 쏘파 좀 바꾸자. 모두들 오면 모라 하잖아. 소파 좀 바꾸라고.


공감도 아니요 반대도 아니요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앞에서 온갖 말로 설득하며 부드럽게 부드럽게 나는 착 착 진행하고 있었으니 색깔은 무엇이 좋을까? 우리 집이 모두 짙은 브라운 톤이니까 브라운 코코아가 낫지 않을까? 아니 그럼 집이 너무 어두워 밝은 색으로 하자. 오홋. 그에게서 나온 대답. 얼렁뚱땅 색깔에 집중하고 또 마감 시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방송 따라 우리도 얼떨결에 서둘러 결제하게 되었으니 빨리 봐봐. 방송 중에만 저기 저 탁자랑 보조 의자랑 준대잖아. 방송 끝나면 저거 없어. 그러니까 어서어서 지금 빨리 결제해야 해. 이 쏘파 이참에 우리 바꾸자. 저 하얗게 튼 것 좀 봐. 그러면서 재빨리 얼렁뚱땅 카드를 꺼내 등록하고 결제에까지 성공하였으니 드디어 아, 드디어 우리 집 거실을 떡하니 지키고 있는 저 낡은 소파를 없애게 되었구나 하고 있었다.


그 소파가 무엇이냐. 1990년대 초반이니까, 요 거이 몇 년이냐 지금 2020년이니까 아, 무려 삼십 년 전이다. 그때 당시 오백만 원이 넘는 고급 천연 가죽 소파였으니 그는 그야말로 오달 달달 떨면서 그걸 구입했다. 애지중지 그때 유행하던 시뻘건 가죽소파이다. 나무가 이런 나무가 없다며 지금 보는 소파는 절대 그걸 따라올 수 없다 하며 그 소파에 대한 사랑이 기가 막히다. 그렇게 삼십 년을 오면서 그 소파는 허옇게 트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소파를 리폼? 물어보았다. 소파 값과 맞먹는 리폼 값. 난 정말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밑이 이미 푹 꺼져있고 절대 편치 않은 소파.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마다 언니! 저 쏘파 좀 바꾸어요! 정말 왜 그러고 살아요? 그렇게 나의 후배들은 볼 때마다 투덜댄다. 그런데 난 그가 너무나 아끼는 소파임을 잘 알고 절대 그것을 없애지 않을 걸 알기에 몇 번 시도하다 에잇 그래 포기하고 만다. 자연스럽게 인테리어니 그런 것에도 관심을 딱 끊게 되는 것이다. 일단 저 낡은 소파가 사라져야 인테리어고 뭐고가 통할 텐데 남편이 그리 변치 않으니 어쩌랴. 물론 심하게 싸우면 가능할 수도 있다. 남편 말 무시하고 이런 건 여자가 하는 거야! 하면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그의 말을 따르는 게 흥이 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냥 딱! 관심을 끊고 그가 좋다는 대로 그가 하자는 대로 그냥 그러고 있다. 그렇게 또 많은 세월이 흘렀다.




오늘 오후 도착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미리 소파 놓을 자리를 비워두어야 한단다. 그래서 우리 저거 밑에 내려놓자. 하니 그에게서 나온 답이다. 세상에. 그걸 왜 버려? 라니. 그는 이 소파를 버릴 생각이 없었단 말인가. 그럼 왜 새 소파를 사는데 오케이 했단 말인가. 자기는 절대 오케이 한 적이 없단다. 내가 혼자 설쳐대며 그랬단다. 저 낡은 소파를 어디 싸안고 있으려고? 그 귀한 소파를 버릴 수 없단다. 어디고 방에 쑤셔 넣을 고민을 해야 한다. 아, 여기서 싸움을 감행해서라도 저 낡은 소파를 버릴 것이냐. 아, 어떻게 해야 하나. 버리는 게 맞는데. 바꾸고 싶어 하는 나의 맘도 충족시키고 간직하고픈 그의 맘도 충족하기 위해선 그냥 그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어야 하겠지만 아, 미니멀 라이프는 내게서 정녕 멀어지는가. 아, 맥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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