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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Feb 20. 2019

너무도 친절한 워커힐호텔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걸 찾은 이 기쁨~

앗, 이게 웬일이지? 문득 보니 내 가방 쟈크가 열려있고 그 안에 있어야 할 캐시미어 숄이 없다. 앗? 어디 갔지? 아니? 왜 없지? 모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무심코 나는 내가 앉은 의자 뒤에 놓은 가방을 보게 되었고 그 가방의 쟈크가 열려있다는 것과 안에 내용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오늘은 우리 모임의 신년회가 워커힐 명월관에서 있는 날, 친구가 크게 한 턱 쏜다 해서 20여 명이 모인 것이다. 즐겁게 맛있는 것 먹고 이야기하고 그렇게 모든 게 끝나갈 즈음 이를 발견한 나. 그러나 정말 이상하지 아니한가. 도대체 왜?

급기야 난 20여 명의 친구들에게 묻는다. 정말 그럴 일은 없는데 그런데 그런 일이 발생했기 때문에. 너희들 혹시 회색 캐시미어 숄 못 봤어? 혹시 술 마시고 자기 가방인 줄 알고 꺼낸 건 아닐까? 하하 그럴 리가 있겠나. 그러나 너무도 답답한 나는 그렇게 물었고 글쎄 저기 옷 거는 데 찾아봐봐. 정말 없어? 글쎄 아무리 누가 그러겠어. 나의 친구들도 영 호응이 없고 명월관 직원들도 이리저리 찾아봐 주지만 있을 턱이 있나. 아무리 그럴 리가 있겠느냐 말이다. 그렇다면 왜? 왜 나의 가방은 열려있고 안에 있어야 할 회색 포근한 숄이 없느냐 말이다. 내참.



아, 그렇지! 계속 찜찜하던 나는 집에 가는 차 안에서야 문득 생각이 났으니 그 내용은 이러하다. 나는 명월관을 갈 때 강변역에서 내려 워커힐 셔틀버스를 이용했다. 우리 모임 총무가 사진을 곁들여 너무도 친절하게 명월관 오는 길을 안내해주어 그 버스를 참 편하게 탄 것 까지는 좋았는데 타고 보니 약간 썰렁한 것 같았다. 그래서 추우면 덮어쓰려고 가지고 온 커다란 네모 캐시미어 숄을 꺼내 무릎에 얌전히 덮었다. 앙고라 캐시미어의 포근함이 전달되며 아 기분 좋다~  바깥 구경을 하던 기억까지가 나는 것이다.


혹시? 아무리 생각해도 그 후 그걸 챙겨 넣은 기억이 없다. 정말 그렇게 깜빡했을까? 그럼 왜 가방의 쟈크는 열려있을까? 꺼낼 때 열어놓고 그 채로 그때까지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이야기가 된다. 나는 무릎에 무언가 덮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워커힐에 도착해 그냥 일어났다면 그 캐시미어 숄은 그대로 스르르 바닥으로 흘러내렸을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나는 명월관을 가려면 어디까지 그 셔틀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지 몰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명월관 가려면 어디서 내려야 하나요? 목구멍까지 차오는 질문을 그런 걸 물으면 어째 쫌 창피할 것 같아 꾹꾹 참고 있었기에 눈치껏 사람들의 동향만 보고 있었다. 워커힐 호텔 앞에서 버스가 섰을 때 더 가는 곳이 있을까? 하여 난 앞자리지만 내리지 않고 지켜보니 맨 뒤에 있던 사람까지 모두 내린다. 그렇다면 여기가 끝이구나 하여 발딱 일어나 내렸으니 내가 무릎에 덮었던 숄을 기억할 여지는 전혀 없었을 것 같다.  



그렇지. 호텔에 전화해보자. 그게 가능할까? 과연 지금 몇 시간이 이미 흘렀는데 그게 있을까? 하나마나 아닐까? 그래도 워커힐 셔틀버스이니 워커힐 호텔에 전화해보자. 밑져야 본전. 거기서 잊고 내린 게 확실한 것 같으니 한 번 전화나 해보자. 해서 전화를 해보니 호텔 전화답게 아주 상냥한 응대다. 긴 설명을 시작해 본다. 저 하나 여쭤볼 게 있는데요 제가 오늘 저녁 6시쯤에 명월관에 약속이 있어 강변역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했거든요. 그런데 회색 숄을 무릎에 덮고 오다가 아무래도 깜빡 잊고 그대로 내린 것 같아요. 혹시 그걸 찾아주실 수 있을까요? 아. 네 알겠습니다. 알아보겠습니다. 하더니 조금 후 일단 끊고 기다리란다. 자세히 찾아보고 전화드리겠다며 나의 전화번호를 묻는다. 그리고 얼마 후 전화가 왔는데 분실물 들어온 것이 없단다. 명월관에도 분실물 들어온 것이 없단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몇 시간이 이미 지났고 사람이 계속 들락거리는 버스 안에서 그걸 찾을 수 있겠는가. 나는 그러나 미련이 남아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 내가 6시쯤 탔고 오른쪽에서 세 번째 자리에 앉았으며 아마도 의자 위가 아니라 바닥에 떨어져 있을 것이다. 좀 찾아봐 달라. 그리고 한참 후 전화가 왔다. 찾았다고. 세상에.


그걸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결국 찾다니 계속되는 나의 전화에 끝까지 친절하게 응대한 직원도 그렇지만 그걸 끝내 찾아내는 셔틀버스 기사님도 너무 고맙지 아니한가. 고맙다 정말 고맙다.


문득 하늘을 보니 대보름을 코앞에 둔, 코앞에? 친구가 곁에서 '오늘 밤 12시부터 대보름 시작이야~' 해서 '아, 대보름이 밤 12시부터 시작하는구나.' 라고 처음  안다 ㅎㅎ 달님이 휘영청 그 밝은 빛을 맘껏 뿜어내고 계시다. 아름다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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