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캐디 연습

울산 C.C. 울산 컨트리클럽

by 꽃뜰

남자 여덟 여자 여덟 모두 열여섯 명. 하하 무슨 말이냐. 남편의 직장동료 여덟 명이 뭉쳤다. 지금은 모두 은퇴했지만 그러므로 서울이 연고지인 분들은 서울로 가야 하지만 그러지 않고 이 곳에 남아있다. 와이? 이유는 간단하다. 이 곳에서는 골프를 좀 쉽게 즐길 수 있으니까. 자식들 모두 서울로 외국으로 떠나보내고 이제는 부부만 살고 있는 남편의 옛 동료 여덟 명과 그 아내들이 함께 공을 치고 밥을 먹고 옛날 한창 직장에서 잘 나갈 때를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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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편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날로그 세대인 우리는 바둑알 여덟 개를 검정과 하양으로 준비해 자루에 넣고 남자들만 돌아가면서 한 알 씩 뽑는다. 바둑알을 꼭 쥐고 있다가 짜잔~ 펼치세요! 하는 순간 두두두두 모두 손을 짝 펼치며 뽑은 바둑알 대로 하양 검정팀이 결정된다. 그 남자팀의 아내들로 자동빵 여자팀도 만들어진다. 이번에 같이 치네. 앗, 우리 갈라졌네. 깔깔 푸하하하 웃음이 터지며 시끌벅적이다. 그런데 노캐디! 가 가능해진 것이다. 남편들은 진작부터 노캐디로 하면서 캐디피 12만 원을 절약하고 있었는데 우리 여자도! 한 번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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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씩씩한 여자니까 손을 번쩍 들었고 하하 줄줄이 이어질 줄 알았으나 노노노. 너무 더운데. 나중에 시원할 때 할게. 지금은 캐디 있는 게 좋아. 난 너무 힘들어. 노캐디 못할 것 같아. 아니 팀당 12만 원이 아껴지는데 요 거이 몬 일? 옆 사람을 구워삶기 시작한다. 노캐디 해봅시다. 겨우 네 명의 노캐디 여자 팀을 만든다. 이미 조편성을 위해 바둑알 뽑은 건 모두 무시. 다음 달엔 노캐디 조와 캐디 조로 나눕니다. 처음이라 노캐디 조 남편들이 한 팀 되어 바로 뒷 조에서 칩니다. 땅땅땅! 그 결정의 실행이 바로 오늘인 것이다. 첫 노캐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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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설레는 맘으로 일찌감치 카트 출발점에 모인다. 남편들이 먼저 달려 나와 열심히 설명해준다. 자동 리모컨은 이렇게 작동시키고, 무전기는 이렇게 번호를 맞추고, 카트는 중앙 라인에 꼭 맞추어 운전애야 하고, 한 홀 끝날 때마다 놓고 가는 채 없나 두리번두리번 꼭 살피고... 캬~ 끝도 없는 주의 사항. 스마트 스코어에 점수 입력 방법까지 상세하게 가르쳐준다. 담당자가 어느새 나와 보고 있더니 다 배우셨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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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잘 알겠습니다! 목청껏 외쳤지만 개뿔. 푸하하하 우리 팀 시작하려는데 세상에 캐디에게 익숙한 우리는 캐디백 뚜껑을 열고 뒤로 젖혀서 드라이버니 우드니 그 덮개들을 모두 벗겨내고 퍼터와 어프로치는 앞의 둥근 통에 빼놓는 등 그 많은 일을 하나도 안 하고 있었던 것이다. 뒤에서 준비 중이던 남편들이 달려와 뭣들하고 계시나 채 뚜껑을 모두 열어준다. 하. 이러고 우리 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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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드드드 일단 운전은 성공이다. 네 명 모두가 긴장하여 여차하면 운전대를 잡으려 하고 서로서로 돕는다. 그래도 꼭 이런 곳에선 총대를 잡는 사람이 있으니 리모컨을 자기 주머니에 넣은 사람 이리라. 나는 주머니에 넣을까 말까 하다가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 조금 생각하려 했는데 L이 딱 자기 주머니에 넣고 모든 운전을 주관한다. 샷에 집중하다 보면 노캐디라는 것을 까맣게 잊기도 하건만 L은 카트 운전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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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책임감을 갖는 것과 대충 적당히 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난 큰소리 빵빵 치며 노캐디팀 만들자 해놓고 대충 했던 것이다. 적당히 카트가 마침 곁에 있으면 올라타 운전대를 잡았지만 멀리 있으면 종종 까맣게 잊었다. 그러나 L은 멀리 있는 카트도 주머니 속의 리모컨으로 작동시켜 확실한 책임감을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애초에 그 리모컨을 내 주머니에 넣고 우리 팀을 위해 희생할 각오로 임했어야 한다. 노캐디 하자 외쳐놓고 막상 카트를 확실하게 책임지지 못했음을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