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우리의 모든 골프 서클 월례회가 취소되고 있다. 그런데 서클은 어차피 예약되어 있는 것. 아무리 코로나라고 해도 좋은 시간 부킹은 힘든데 이미 주어진 좋은 시간을 굳이 취소할 필요가 있을까? 누군가 아이디어를 낸다. 노샤워! 노캐디! 노식사! 로 합시다. 그래서 오늘 취소 대신 운동을 하게 되었다.
노샤워! 샤워는커녕 아예 라커룸에 들어가지 않기다. 그러므로 본래는 원피스나 정장 차림으로 라커룸에 들어가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데 오늘은 그 모든 것의 생략이다. 집에서부터 골프화도 신고 모자도 쓰고 골프복을 입는다. 따로 옷을 차려입지 않으니 편하기는 하다. 헉. 그런데 남편이 불만이다. 나중에 라카룸에서 땀에 전 옷은 갈아입어야지. 운전해야 하는데 신발도 갈아 신어야지. 아니 위험해 여보. 그냥 차 안에서 갈이 신으면 안 될까? 안돼! 그래 좋아. 나도 살짝 양보하여 그가 라카룸에 잠깐 들르는 것에 합의한다.
노캐디! 아내들이 먼저 가고 뒤에 남편들이 따라온다. 남편들은 노캐디에 익숙하지만 아내들은 캐디와 함께 했기에 노캐디가 어색하다. 그런 아내들이 덜렁덜렁 채라도 흘릴까 챙겨주기 위해서란다. 아니나 다를까. 남코스 5번 홀에서 티샷 하려는데 헐레벌떡 L의 남편이 카트를 몰고 나타나 L에게 채 받아! 빨리! 다그치며 3번 우드와 5번 아이언을 주고 쌩 돌아간다. 헉. 언제? 공이 산으로 가서 이리저리 찾느라 혼비백산할 때 그런 것 같다며 L이 멋쩍어한다. 하하 걱정 마. 우리 뒤에 남편들 있으니 든든하다. 괜찮아. 맘대로 채 흘려도 돼. 푸하하하 깔깔대며 우린 빵빵! 신나게 드라이브 샷을 한다. 나이스 샷!
코로나로 집콕만 하기 꽤 오래. 실로 오랜만에 하는 라운딩이다. 이번 역시 노샤워! 노캐디! 노식사!가 아니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늘집 조차 들르지 않으려 우리는 많은 먹거리를 준비한다. 나는 커피와 옥수수, L은 강릉에서 공수해왔다는 팥이 어마어마하게 든 찰떡. P는 요플레... 우리의 먹거리는 아주 풍성하다. 문제는 참으로 오랜만에 치는 공이 과연 잘 맞겠는가이다.
잘 칠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을 잠재워야 한다. 골프는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난 잘할 수 있어. 일단 자신감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그다음엔 집중이다. 하핫. 철학이 있는 골프. 난 나의 골프를 그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 홀로인 듯한 그 집중의 순간을 즐기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설렁설렁 웃기도 하고 잡담도 하지만 나의 샷 차례가 오면 그들 몰래 무섭게 집중한다. 와이 그들 몰래? 하하 그런 건 본래 몰래 해야 스릴 있다. 조금이라도 끼어들려는 잡생각을 물리치고 공에만 집중하도록 나 자신과 싸움을 한다. 거기서 이겨 완벽한 집중을 해냈을 때의 그 짜릿함이라니.
난 골프가 우리의 삶과 참 닮았다고 생각한다. 잘 되기도 하고 엉망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엉망의 순간을 억울해하고만 있으면 그 이후도 몽땅 엉망이 되어버린다. 깡그리 잊고 새롭게 집중할 때 그 엉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의 삶도 마찬가지다. 아, 내가 왜 그랬을까 정말 왜 그랬을까 그렇게 후회와 자책으로 몰아가면 그 나머지 많은 시간들도 몽땅 엉망으로 되어버린다. 난 골프에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걸 훈련한다. 그래서 난 나의 골프를 철학이 있는 골프라고 한다.
노식사! 방역도 철저히 하는데 꼭 그럴 필요 있을까? 18홀이 끝나가니 그들은 샤워도 하고 식사도 하려 한다. 아직 코로나 위험한데. 노샤워! 노캐디! 노식사! 하기로 했으면서. 그래도 배고픈 걸. 이렇게 땀이 난 채로 어떻게 그냥 가? 그들의 마음은 이미 샤워와 식사를 하는 것으로 기우는 것 같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고, 골프장에서 방역도 철저히 하니 탕에 들어가지 않고 샤워만 하고 후다닥 밥을 먹는 건 괜찮을 거라는 것이다. 난 아예 보스턴 백을 가져오지 않았다. 즉 샤워 준비 자체를 하지 않았다. 난 그냥 갈래. 그들이 샤워와 식사를 해도 난 그냥 가는 걸로 한다. 남편은 어떨까? 싸모님 정했으니 따라야지. 라카룸에서 신발만 갈아 신고 덜렁덜렁 나를 따라나서는 남편. 언제나 나의 편. 그렇게 우리는 흔들림 없이 노샤워! 노캐디! 노식사!를 지켜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