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칩시다
부킹 전화를 걸었는데 의외로 재빨리 아주 좋은 시간이 예약되었다며 P부부에게서 연락이 왔다. 코로나로 집콕하고 있는 이때 자연으로 나가는 골프는 좀 안전하리라. 망설일 이유가 없다. 오케이! 그녀와 나는 먹을걸 사사삭 마련한다. 무얼 마련하자고 서로 연락한 것도 아닌데 적당히 골고루 분배가 되었다. 하하 통한다는 거다. 그녀는 구운 달걀과 바나나. 나는 반숙 달걀과 커피. 그리고 클럽에서 주는 물. 그거면 우리 라운딩엔 충분하다. 노캐디이니 남편들 따라 엇둘엇둘 준비운동을 하고 라운딩 시작이다. 20여 년 남편 직장 동료이며 오래 함께 해왔기에 정말 편안한 부부다. 공을 칠 땐 이렇게 긴장되지 않는 편안한 부부가 최고다. 실력도 비숫하다. 한 번은 내가 앞서고 한 번은 그녀가 앞서고. 이게 또 한쪽만 너무 잘 치면 부부게임에선 영 아니다. 못 치는 쪽 남편 얼굴이 점점 굳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보면 찰떡궁합이다. 하하
동코스 1번 홀. 드라이버를 멋지게 치고 쎄컨 샷도 멋지게 빵~ 날아갔지만 그린 앞 그래스 벙커에 빠진다. 얼마나 러프가 심한지 분명 그곳에 빠진 것 같은데 공이 안 보인다. 찾을 수가 없다. 풀이 그토록 무성하다. 앗, 공. 그러나 흰색. 그녀 공이다. 공 여깄어~ 말해주었으나 내 공이 안 보인다.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보아도 분명 그곳에 떨어졌는데 안 보인다. 어느새 달려온 남편이 여기! 내 공을 찾아낸다. 긴 풀 속에 폭 박혀있다. 아, 여기서 공 칠 수 있을까? 페어웨이에 꺼내놓고 칠까? 지금 돈내기하는 것도 아니고 남편들과 치는 건데 그냥 이런 곳에서의 연습은 필요도 없잖아? 페어웨이에 꺼내놓고 칠까? 그럴까? 아, 그러고픈 마음 가득했지만 그러나 그 아무도 나를 보며 꺼내놓고 치라고 말하지도 않는데 혼자 그러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게다가 그런 거 습관 들이면 조금만 이상한 곳에 있어도 자꾸 알까기를 하고 싶고 공을 좋은 곳에 꺼내놓고 싶어 질 게다. 안돼! 자신에게 못을 박고 그 무성한 숲 아래 있는 공을 A로 힘껏 쳐낸다. 그래 잘했어~ 는 개뿔. 헉. 세게 쳤음에도 불구하고 공은 그래스 벙커를 못 넘고 턱에 걸리고 만다. 또다시 무성한 긴 풀 아래다. 아이참. 하면서 그 턱에서 넘기려 자리를 잡는데 앗, 내가 덤불 속에서 발견했던 하얀 그녀의 공. 그녀는 페어웨이에 꺼내놓고 어프로치 샷을 시도 중이다. 아이참 나도 꺼내놓고 칠 걸 그랬나 봐. 난 그 그래스 벙커 턱에서도 제대로 못 쳐내 결국 두 타를 잃는다. 너무도 잘 친 드라이브 샷과 쎄컨 샷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더불 보기를 한다. 그러나 그녀. 페어웨이에 옮겨 놓고 친 공이 깃대에 잘 붙어 파로 마무리한다. 나이스 파!!! 팔짝 뛰며 좋아하고 남편들이 힘차게 하이파이브를 해준다. 우쒸. 나도!!! 나도!!! 꺼내놓고 칠 걸.
빨리 뛰어!
가뜩이나 더블보기를 하고 기분도 안 좋은데 앗 모야. 나의 남편. 내가 아직도 머리 올리던 그때로 아나. 빨리 뛰어라니. 지금 제대로 잘 가고 있구먼. 동작 빨리! 입에 붙은 남편의 나를 향한 외침. 아, 머리 올릴 때 얼마나 눈물을 쏟았던지. 뛰어! 빨리 뛰어!!! 그 말이 야속하게 아직도 남아있는데 왜 여기서 저 말이? P 남편은 어떻게 든 아내 공 잘 치게 하려고 곁에 붙어서 자상하게 코치 중인데 가끔 스치는 나의 남편. 빨리 해라. 동작 빨리. 빨리 걸어. 뭬라? 내가 지금 늦게 걷는 다고? 세상에 잘 가고 있는데 저렇게 말해야 할까. 그녀 남편은 이리저리 코치해주기 바쁘다. 코치가 잔소리라고 했지만 그래도!!! 우쒸. 자기는 줄 파를 하면서 와이프를 몰라라 하다니. 괜히 입이 일 미터나 쑥 나온다. 비교는 금물인데 난 어느새 자상하게 아내를 코치하는 P의 남편과 비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