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취업

by 꽃뜰

떨어지고 또 떨어지던 나에게 절호의 찬스가 왔으니 비공개 시험이다. 대학 선배가 그만두면서 알음알음 5명만이 시험을 치르게 된 것이다. 비록 5명의 경쟁이지만 끊임없이 준비한 덕일까 드디어 합격통지를 받는다. 첫 출근 모습이다.


1980년 3월 5일 수요일


두근두근 쿵쿵 쾅쾅 나의 가슴은 그야말로 요동을 치고 있다. 진정하자 진정해. 한국화약 그룹 종합기획실 홍보팀! 오늘 그 첫 출근이다. 어제 설명들은 대로 지정한 곳에 서 있으니 초원관광 통근버스가 온다. 당당하게 버스를 탄다. 이미 타고 있는 분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는 것 같아 절로 얼굴이 빨개진다. 후다닥 빈자리를 찾아가 앉는다. 서소문 서린호텔 앞에서 모두 내린다. 나도 내린다. 대형 관광버스가 계속 도착하고 사람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거대한 출근 물결. 아, 내가 이 대열에 끼다니. 나도 이제 어엿한 사회의 일원이 되었구나.


초원관광에서 내린 사람들은 서소문에 있는 한국화약 그룹 회사로 뿔뿔이 흩어진다. 플라자 호텔로, 제일화재 빌딩으로, 그리고 내가 가는 하얀 타일 빌딩으로. 밑에 빨간 카네이션의 한일은행이 있는 하얗고 깨끗한 높은 빌딩. 학교에서 집에 가는 버스가 이 곳을 지나가 매일 보며 저런 멋진 빌딩에 근무하면 참 좋겠다 했는데 오늘 내가 바로 그곳으로 출근한다. 안에 들어가니 엘리베이터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다. 드디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예쁜 유니폼 속 예쁜 아가씨가 상냥하게 인사한다. 줄 서있는 사람들을 태우고 몇 층 몇 층 말하는 대로 엘리베이터 단추를 눌러준다.


10층요~


나도 말하는데 두근두근 쿵쿵 쾅쾅! 층마다 사람들을 내려주고 드디어 10층! 많은 분들과 함께 내려서 보니 오른쪽에 종합기획실, 왼쪽에 경영관리실. 종합기획실로 오라 했겠다~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니 드넓은 곳에 직원들이 꽉꽉이다. 맨 앞에는 여사원 그 뒤로 남자사원 또 남자 그 맨 끝에는 아주 커다란 책상 그리고 좀 나이 드신 분들이다. 높은 분들 같다. 맨 앞의 여사원에게 묻는다.


홍보팀이 어디예요?


고개를 돌려 뒤쪽 먼 곳을 가리키며 칸막이 뒤로 가라 한다. 가라는 대로 가니 거기 또 널찍하게 직원들이 꽉꽉이다. 왼쪽 맨 앞에 빈 책상, 뒤에 남자사원 그 뒤에 남자사원 그런 줄이 또 네 줄인가 다섯 줄인가 꽉꽉 있는데 여긴 여사원이 한 명도 없다. 맨 앞자리까지도 모두 남자들만 앉아있다.


빈자리 뒤에 앉아있던 예술가처럼 장발에 까칠하게 생긴 분이 ooo 씨냐고 묻더니 반갑다고 인사하고 그분 뒤에 앉은 배차장이라는 분께 인사시킨다. 배차장님은 나를 데리고 들어오는 입구에 있던 커다란 본부장님 방으로 간다.


아, 홍보팀 신입사원?


하시더니 앉혀놓고 이것저것 물으신다. 온 정신을 집중하여 자신 있는 목소리로 정성껏 대답한다. 많이 웃으신다. 잘했다. 배차장님은 그 방에서 나를 데리고 나와 그 종합기획실의 줄줄이 책상들 맨 끝에 있는 커다란 책상의 좀 나이 드신 분들께 일일이 인사를 시킨다.


홍보팀 신입사원 ooo입니다!


크게 이름을 외치며 고개 숙여 인사한다. 너무 크게 했나? 모두들 웃으신다. 나의 자리는 남자들만 있는 칸막이 뒤쪽으로 들어 가 맨 앞 빈자리. 내 뒤의 예술가 모습 장발의 이대리님이 나를 데리고 회의실로 들어가 우리 팀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해주신다. '다이너마이트'라는 그룹 사보와 달력과 그룹 카탈로그 등을 만드는데 18개의 그룹사가 있고 각 그룹사에는 주재기자가 한 명씩 있단다. 그분들과 접촉하여 원고를 요청하고 그 회사들의 기사를 받고 잘 검토하여 인쇄소에 넘기고 사진식자를 교정하고 책이 다 만들어지면 수령하여 각 계열사에 가져가서 주재기자를 통해 나누어주는 것 까지가 나의 업무란다.


우선 내가 해야 할 일을 가르쳐주시는데 너무 단순하고 시시하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아주 열심히 만든다. 무엇이냐? 스카치테이프의 가운데를 먼저 책상 모서리에 쫙 길게 붙인다.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또 아래에서 위로 접어 아주 가늘게 양면테이프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길게 좁혀 말아 둔 것을 가위로 잘게 잘라 편집할 때 사진 식자를 편의대로 붙이기 위한 것이란다. 열심히 테이프를 말아 여러 개 만들어 놓는다. 나의 직속 상사 이대리님께서 작업할 때 잘게 잘라 쓰실 수 있도록.


그뿐인가. 놓여있는 책상 모습 그대로 그려진 조직도를 주시며 종합기획실의 그 많은 사람들 직함과 이름을 몽땅 외우라 하신다. 재밌게도 이름 밑에 출신 고등학교와 대학교가 적혀있다. 이대리님은 알고 보니 나의 대학 선배님이시다. 누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가 한눈에 쫙 들어온다. 하하 재밌다. 아하 저분이 어느 고등학교 어느 대학을 나오셨구나. 슬쩍슬쩍 실물을 훔쳐보며 달달 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