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왜 버려?
헉. 이게 무슨 말이지? 그걸 왜 버려? 그럴 줄 알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아니 정말 그럴 줄은 몰랐다.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것 같다. 어떻게 할까? 나의 고집을 내세우며 대치 대결로 가? 좋은 게 좋다고 그냥 그가 하자는 대로 내버려 두어?
며칠 전 함께 밤늦게 TV를 보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던 중 홈쇼핑에서 멈추었다. 커다란 거실용 쏘파가 특별 세일 중이었기 때문이다. TV 자체를 또 홈쇼핑을 거의 안 보기에 어쩌다 돌린 TV에 쫘악 진열된 소파를 보는 순간 나는 딱 손이 멈추었다. 그리고 점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브라운 코코아, 그레이, 모카로 널찍한 소파가 3인용 4인용 6인용으로 나오는데 그것도 이태리제 가죽인데 특별 세일을 한다는 것이다. 나의 눈은 고정되었고 그리고 우리 집 소파! 그걸 노려보기 시작했다. 통하지 않아 절대 통하지 않아 포기하고 있던 새 소파에 대한 마음이 다시 몽글몽글 솟아났고. 우리 저걸로 바꾸자. 이태리제라잖아. 고급 가죽이라잖아. 저렇게 싸게 파는데. 별로 부담도 안되고. 이 참에 오래된 이 쏘파 좀 바꾸자. 모두들 오면 모라 하잖아. 소파 좀 바꾸라고.
공감도 아니요 반대도 아니요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앞에서 온갖 말로 설득하며 부드럽게 나는 착 착 진행하고 있었으니 색깔은 무엇이 좋을까? 우리 집이 모두 짙은 브라운 톤이니까 브라운 코코아가 낫지 않을까? 아니 그럼 집이 너무 어두워 밝은 색으로! 오홋. 그에게서 나온 대답. 얼렁뚱땅 색깔에 집중하게 하고 또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에 서두른다. 방송 중에만 저기 저 탁자랑 보조 의자랑 준대잖아. 방송 끝나면 저거 없어. 그러니까 지금 빨리 결제해야 해. 이 쏘파 이참에 바꾸자. 저 하얗게 튼 것 좀 봐. 그러면서 재빨리 카드를 꺼내 결제에 성공하였으니 드디어 우리 집 거실을 떡하니 지키고 있는 저 낡은 소파를 없애게 되었구나.
그 소파가 무엇이냐. 1990년대 초반이니까, 요 거이 몇 년이냐 지금 2020년이니까 아, 무려 삼십 년 전이다. 그때 당시 오백만 원이 넘는 고급 천연 가죽 소파였으니 그는 그야말로 오달 달달 떨면서 그걸 구입했다. 그때 유행하던 시뻘건 가죽소파다. 나무가 이런 나무가 없다며 소파에 대한 사랑이 기가 막히다. 그렇게 삼십 년이 흘러 소파는 허옇게 튼다. 그렇다면 리폼? 그러나 최신형 소파 값과 맞먹는 리폼 값. 난 정말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밑이 이미 푹 꺼져있고 절대 편치 않은 소파.
언니! 저 쏘파 좀 바꾸어요! 정말 왜 그러고 살아요?
그렇게 나의 후배들은 우리 집에 올 때마다 투덜댄다. 그런데 난 그가 너무나 아끼는 소파임을 잘 알고 절대 그것을 없애지 않을 걸 알기에 몇 번 시도하다 에잇 포기하고 산다. 자연스럽게 인테리어니 그런 것에도 관심을 딱 끊게 된 것이다. 일단 저 낡은 소파가 사라져야 인테리어고 뭐고가 통할 텐데 남편이 그리 변치 않으니 어쩌랴. 물론 심하게 싸우면 가능할 수도 있다. 남편 말 무시하고 이런 건 여자가 하는 거야! 하면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그의 말을 따르는 게 흥이 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리폼도 아니다. 그렇게 또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걸 왜 버려?
오늘 오후 새 소파가 도착한다는 전화를 받고 집에 있는 그 시뻘건 30년 된 소파를 밑에 내려놓자 하니 그에게서 나온 답이다. 세상에. 그걸 왜 버려? 그는 이 소파를 버릴 생각이 없었단 말인가? 그럼 왜 새 소파를 사는데 오케이 했을까? 자기는 절대 오케이 한 적이 없단다. 내가 혼자 설쳐대며 그랬단다. 저 낡은 소파를 어디 싸안고 있으려고? 바꾸고 싶어 하는 나의 맘도 충족시키고 간직하고픈 그의 맘도 충족시키기 위해선 그냥 어디고 다른 방에 쑤셔 넣어야 한다. 아, 맥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