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밭 갈고

by 꽃뜰


우리에겐 조그만 땅이 있다. 그냥 내팽개쳐두었는데 남편이 은퇴하면서 노후에 밭 가는 게 좋다는 말에 칡으로 뒤덮여 엉망인 그곳을 포클레인으로 재정비하고 나무를 심기로 한다. 해마다 봄에 열리는 나무 시장에 가는 것부터 시작이다. 미스코리아처럼 자태를 뽐내며 줄 서있는 많은 나무들 사이에서 맘에 드는 걸 골라 계산하면 삽을 들고 나무를 돌보던 아저씨들이 뿌리가 마르지 않도록 묘목의 위를 자르고 검은 비닐봉지에 잘 싸서 준다.


조심조심 차에 싣고 우리 땅으로 와 미리 공부한 대로 노끈으로 길게 줄을 늘여 4미터씩 간격을 두고 구덩이를 판다. 남편이 삽으로 푹푹 흙을 떠서 구멍을 내면 내가 호미로 살살 부드럽게 다듬어 예쁜 구덩이를 만든다. 한 구덩이를 완성하고 일어나면 내 궁둥이에 달려 의자 역할을 톡톡이 하던 재밌는 농업용 스티로폼 의자가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따라 일어난다. 그리고 4미터 지나 다음 구멍에서 그가 삽으로 푹 흙을 퍼낼 때 그 옆에 철퍼덕 앉으면 궁둥이에 달린 그 둥근 스티로폼 통이 다시 의자 되어 나를 잘 모신다. 그렇게 편하게 앉아서 남편이 삽으로 퍼내는 거친 구멍을 호미로 살살 예쁘게 다듬어 간다.


아, 그런데 이 호미질 쉬운 거 아니다. 물론 삽으로 퍼내는 작업은 더 힘들겠지만. 점점 나의 오른팔은 저리다 못해 아파온다. 흙을 호미로 팡팡 파내는 일이라니. 반복된 그 동작이 오른팔에 많은 무리를 준다. 그래서 왼손으로도 해보고 궁둥이를 들었다 놨다 앉았다 일어섰다 별 짓을 다해 본다. 그래도 팔이 너무 아프다. 아, 힘들어.


거기서 끝이 아니다. 잘 만들어진 구덩이에 이제는 나무를 심을 차례. 감나무 묘목을 구멍 한가운데 넣고 꽉 붙들고 서있으면 남편이 삽으로 흙을 그 안으로 퍼 넣는다. 그러면 난 흙이 뿌리에 잘 섞이도록 살살 흔들면서 호미로 나무에 흙을 덮어준다. 그리고 물을 주어야 한다. 그것도 아주 듬뿍. 물을 주기 전에 해야 할 일. 일단 심어놓은 나무 주위로 도톰하게 흙을 쌓아 흠뻑 주는 물이 하나도 새 나가지 않게 해야 한다. 이것 역시 호미질이 심하게 필요하였으니 남편이 주변 흙을 삽으로 퍼서 나무 주위로 가져다주면 난 열심히 호미질을 하여 도톰하게 둔턱을 만든다.


헉헉 헉헉. 아 너무 힘들어.
이리 줘봐. 내가 할게.


나의 어리숙한 호미질과 달리 남편은 쓱쓱쓱쓱 아주 쉽게 한다. 그의 손길이 가면 금방 둔턱이 예쁘게 만들어진다. 삽으로 주변 흙을 떠올리고 호미로 쓱쓱쓱쓱. 와우 지치지도 않는가. 힘차게 삽으로 흙을 떠내는 그가 젊은이로 돌아간 듯 아니 우리의 청춘일 때처럼 문득 멋지게 다가온다. 집에서 빌빌? 하하 책 읽고 TV 보고 밥 먹고 음악 듣고 그야말로 조용하던 그가 씩씩하게 아니 힘차게 팍팍 파팍 삽질하는 모습이라니. 게다가 지치지도 않는다. 어디서 저런 열기가? 아, 멋있다. 하하 호미질에 지쳐 부직포 위에 뻗어있던 나는 한참 그를 올려다본다.


여보 멋있다. 청춘 같아.


하하 그가 씩 웃는다. 오홋 더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