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쨍~ 지독한 햇빛이다. 공원 입구가 너무 밀려 남편은 나만 떨구고 저 멀리 주차할 빈 곳을 찾아 휑하니 떠나버린다. 커다란 남편의 테너 색소폰 가방과 나의 알토 색소폰 그리고 두툼한 악보 가방을 양 손에 재주껏 나누어 들고 낑낑대며 공연장으로 간다. 아~ 하늘 위 땡볕은 지글 지글이고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엉엉
그런데 사실 거의 언제나 이렇다. 내가 짐꾼. 왜냐하면 남편은 항상 주차를 하러 아주 먼 곳까지 가야만 하기에. 매주 모여서 연습하는 곳도 차가 붐벼 입구에 나만 내려놓고 간다. 결국 지하 연습실까지 낑낑 내가 짐을 다 옮긴다. 그런데 오늘 역시 사람들이 무더위에 다 몰려온 듯 번잡하여 주차 때문에 그는 멀리 가고 나만 홀로 그 무거운 짐들을 이고 지고 양손에 겨우 나누어 들고 땡볕 속을 걷고 있다. 헉헉. 아 너무 힘들어.
난 은퇴한 남편과 색소폰을 분다. 섹스폰? 쎅스폰? 아, 너무 야하잖아. 사실 정확히 이 악기 이름을 부르게 되기까지 오래 걸렸다. 내가 직접 이 악기를 불기 전까지야 쎅스폰으로 대충 이름도 꽤 야하네 하는 정도였으니까. 야, 뭐? 섹스폰을 분다고? 섹스? 왜 그리 야해? 친구들에게 말할 때마다 놀림을 받는다. 그래서 사전을 찾았다. Saxophone으로 우리말은 색소폰이다. 오호 색! 소! 폰!
남자들만 북적거리는 이 곳에 용감하게 참여하고 있다. 그 세월이 어느새 꽤 되어간다. 은퇴 후의 삶을 위해 우리 부부가 고른 게 색소폰이다. 와이? 바이올린이나 첼로 클라리넷 플륫 같은 악기는 학창 시절부터 해야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데 유독 색소폰만은 무언가 나이 들어 시작해도 쉽게 즐길 수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헉 양귀비! 너무도 예쁜 꽃이 사방에 피어있다. 그것도 모르고 난 낑낑 짐이 무겁다고 투덜대고만 있었던 것이다. 무거운 악기들을 잠시 내려놓고 꽃에 집중한다. 아~ 그리고 보니 연주장 가는 길이 너무 예쁘다. 꽃이 그야말로 천지 빼 깔이다. 하하
나도 색소폰 불었는데....
의외로 그런 분들이 많다. 한 일 이년 하다가 장롱 속에 처박아두었노라고. 낑낑대며 커다란 악기를 옮길 때 마주치는 많은 분들이 그렇게 말한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연주하는 곳에 들어가 매주 연습을 하다 보니 색소폰이 장록 속에 들어가 처박힐 일은 없다.
공연장에 도착하니 관중석 위에만 거대한 천막이 쳐져 해를 가리고 있고 무대 위에는 아무 가리개가 없다. 작열하는 태양을 그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원색 티셔츠에 청바지 복장만 정해줬지 선글라스를 가져와라 모자를 가져와라도 없었다. 일부 대원은 모자와 선글라스로 무장하고 있다. 지정해준 것만 해야 하는 줄 안 우리가 너무 순수했나? 잠깐만 서 있어도 땀이 뻘뻘 나는 무시무시한 태양 아래 마이크를 설치하고 의자를 가져다 놓고 보면대를 놓고 단원들 모두 연주를 위한 준비를 한다. 햇빛은 정말 심하게 내리쬔다. 아, 더워.
휘리링 보면대에 받쳐놓은 악보가 바람에 날아간다. 나의 무대 파트너가 날아간 악보를 집어 내 보면대에 놓고 노란 고무줄을 껴 악보를 고정시켜준다. 무대 파트너? 푸하하하 24시간 남편과 함께 하지만 색소폰 불 때만은 그야말로 체인징 파트너다. 일단 이 곳에만 오면 남편은 트롬본 파트라 저 멀리 맨 위로 가고 나는 알토 파트라 맨 앞줄이다. 나와 같은 파트인 무대 파트너는 악보대 접어주기 생수 챙겨주기 날아간 악보 집어주기 등 평소 남편이 해주었을 많은 일을 해준다. 그리고 살짝살짝 대화도 나눈다. 게다가 이분 키도 크고 멋지다. 하하 내가 어디서 체인징 파트너를 해보겠는가. 푸하하하
점점 사람들은 많아져 빈 의자 하나 없이 가득 찬다. 빵빵 큰 소리가 나고 수십대의 색소폰이 번쩍거리니 호기심 만발일까? 어린이도 어른도 더 어른도 모두 모두 몰려온다. 관중이 많으면 흥이 난다. 휘이잉~ 또 거세게 바람이 분다. 드러머가 큰일 났다. 악보가 정신없이 날아간다.
누구 애인이나 가족 온 분 없습니까?
악보를 붙들고 넘겨줄 분이 필요해요~
즉석에서 악보지기가 정해지고 빠방~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 연주를 시작한다. 공원에서 산책하던 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몰려온다. 이미 꽉 찬 객석이 더욱 꽉꽉 찬다. 지휘자는 땀을 뻘뻘 흘리고 가리개 없는 우리 머리 위에서는 그야말로 땡볕이 지글 지글이다. 행여 악보가 날아갈까 조마조마하면서 뿡뿡 빵빵 연주를 한다. 흥겹고도 익숙한 멜로디가 연주되니 관중석에서 누군가 벌떡 일어나 덩실덩실 더덩실 흥겹게 춤을 춘다. 급기야 무대 바로 앞까지 와서 사람들을 리드하며 정말 기가 막히게 춤을 춘다. 악보를 보면서 지휘자를 보면서 힐끗힐끗 그 중년의 아저씨를 보는데 리듬 감각이 대단하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음악에 맞춰 절묘하게 몸을 움직인다.
아리랑이며 울고 넘는 박달재며 사십여 명의 색소폰 소리에 둥둥 두둥둥 신나게 드럼 소리가 곁들여지자 문득 황홀해진다. 내가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청중이 아닌 연주자로! 와우! 쿵쿵 쾅쾅 가슴도 방망이질을 한다. 짝짝짝짝 리듬 맞춰 들려오는 흥겨운 박수소리에 나의 색소폰 운지를 누르는 손가락도 날아갈 듯 가볍다. 어깨춤이 더덩실 그들처럼 나의 손가락도 색소폰 위에서 춤을 춘다. 공원의 꽃잔치가 한창인 날, 휘이익 불어대는 바람, 쏟아져 내리는 햇빛, 휘~익 날아가 버리는 악보, 악조건 속에서도 흥겨운 관객과 함께 그야말로 신명 나는 연주를 마친다. 꽃들이 방글방글 잘했어요~ 손을 흔든다.
악보 챙기랴, 보면대 챙기랴, 의자 챙기랴. 연주가 끝나고는 또 이리저리 손길이 바쁘다. 그 빵빵하던 열기 속의 태양도 밀려오는 땅거미에 슬그머니 자리를 내준다. 집으로 가는 발길을 서두른다. 이래저래 지루할 수 없는 우리의 일상이다. 악기 하나 남편과 함께 하기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