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이천 원에 정신이 번쩍!

울산 C.C. 울산 컨트리클럽

by 꽃뜰

2021년 새해 들어 첫 라운딩이다. 노캐디 노 식사 노 샤워. 모여 떠들지를 못하니 너무 아쉽다. 네 명 이하는 식사가 가능하다기에 조별로 뚝뚝 떨어져 앉아서라도 식사를 하기로 한다. 대신 아무 회의도 할 수 없고 전체적으로 말할 수는 더더욱 없다. 그냥 밥만 조 별로 먹고 회비로 나중에 총무가 계산하기로 한다. 그것만 해도 어딘가. 뚝뚝 떨어져 앉아도 저 멀리 얼굴이라도 보는 게.



오늘은 8시 36분 티오프다. 딱 출근 시간에 걸리므로 난 아주 일찍 집을 나선다. 혹시 차가 막혀도 늦지 않도록. 그런데 사방이 뻥뻥 뚫려 쌩쌩 달리니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한다. 한 시간 동안 무엇을 할까? 그렇지. 퍼팅 연습을 하자.



평소 집에서 연습할 수 없는 긴 거리 퍼팅을 빵빵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길게 길게 쳐대며 연습을 했더니 아뿔싸! 실전에서 나의 공은 얼마나 멀리멀리 나가는지 하이고. 그린까지 잘 와 놓고도 거의 쓰리 펏을 해 더블 보기가 된다. 집에 와서 투덜투덜 그 이야기를 하니 남편 왈, 롱 퍼팅을 해도 공치기 전엔 정교한 숏 퍼팅을 연습해야지 한다. 바보. 연습을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되었다.



오늘은 모두 H의 롱 치마에 꽂혔으니 어때? 편해? 괜찮아? 따뜻해? 어디서 샀어? 얼마야? 속사포로 쏟아내는 질문들. 그 많은 말들의 끝은 '너무 예쁘다~ '하하


겨울 같지 않게 포근한 날씨. 비록 해님은 없어 우중충하지만 바람 한 점 없어 공치기 딱 좋다. 시퍼런 잔디가 샛노란 잔디가 되고 그게 다시 파랗게 되고 그렇게 세월은 흘러간다. 노캐디! 노 샤워! 노 식사! 에서 서클당 배정된 노캐디는 한 팀. 오랜만에 첫 팀을 제외한 나머지 팀은 노련한 캐디와 함께 라운딩을 한다.



떡 좀 해오려니 이미 누가 맡았다네~ 다음엔 잽싸게 말해야겠어. 그 무엇이고 도움이 되고파 안달인 Y가 말한다. 오늘 떡은 H가 일인당 두 개씩 그야말로 겉빠속촉인 구운 듯 말랑말랑한 찰떡을 후원했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고 온 우리는 맛있게도 냠냠 라운딩 중 짬 날 때마다 먹는다. 게다가 마치 무슨 ~ 향처럼 생긴 넙대덕한 귤. 그런데 정작 레드향이 따로 있었으니 마지막 홀에서 나눠 먹은 레드향은 그 향이 얼마나 진하며 맛있던지 와우 역시 우리 J의 과일 고르는 실력은 으뜸이야! 감탄하며 그녀가 후원한 귤과 레드향을 아주 맛있게 먹는다.



누구는 어프로치가 잘못되어서. 누구는 쓰리 펏을 해서. 누구는 벙커에 빠져서. 저마다의 이유로 우리는 첫 홀에서 몽땅 더블보기를 한다. 그런데 캐디가 계산을 잘못했는가 몽땅 보기로 기록한다. 우리 서클이라 확실히 적어야 하는데. 어떡하지? 이미 보기로 적어놓았네. 계산이 틀려서일까 아니면 의례 첫 홀은 타수 상관없이 올 보기를 적는 관행 때문일까. 에잇. 이미 적은 것! 할 수 없다. 올 보기! 그리고 쉿 쉿 쉿 쉿! 우리끼리 오프 더 레코드 손가락 걸고 쉬! 쉬! 약속했건만 그걸 내가 요렇게 까발릴 줄이야. 푸하하하



쉿 쉿! 한 게 재밌어서. 우리들 만의 공통 거짓말이 생겨서. 무언가 동지애를 느끼며 더욱 게임은 스릴 있어진다. 그 예쁘던 단풍이 이렇게 쪼그라들었어. 세월이 그래~ 쪼골쪼골해진 단풍을 보며 우린 휙휙 지나가는 빠른 세월을 탓한다.



아, 하늘 좀 봐. 어쩜 저렇게 멋있을 까? 저 구름 사이로 빛이 내려오는 것 봐. 마치 신이 강림하시는 것 같아. 와우 정말 멋져요~ 우리는 공치랴 하늘 보랴 바쁘다 바빠. 그래도 이 멋진 하늘을 놓칠 수는 없지.


쓰리 펏도 하고 냉탕 온탕 정신없던 우리가 후반부에 정신을 다잡기로 했다. 돈내기를 하기로 한 것이다. 9,000원씩 내고 바로 전 홀의 1등과 4등이 한 편, 2등과 3등이 한 편 되어 이긴 팀 두 명이 각각 2,000원씩 가져가기다. 뽑기 할 필요도 없고 전 홀에서 팀이 결정되니 미리 하이파이브하며 팀웤을 다질 수도 있다. 하하



너무 돈에 예민한 거 아니에요? 그럴 수 있냐며 나를 째려본다. 내가 몽땅 싹쓸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하 툭하면 쓰리 펏을 해 스코어를 까먹던 내가 돈내기를 시작하자 원펏으로 땡그랑 거리더니 심지어 칩 인 버디까지! 와우! 진작에 돈내기할 걸~ 푸하하하



비록 누런 잔디지만 게다가 한창 추워야 할 1월 말이지만 날씨는 포근하여 봄이 오는가? 우리들 마음을 설레게 한다. 봄. 아, 봄이 빨리 오면 좋겠다.



앗. 이게 뭐야? 쌍화차요 쌍화자! 요건 어디 소속? JH가 가져왔어요. 그러나 쉿. 쉿 쉿. 우리 팀만 먹는 거예요. 오호 그래? 일단 촬영하고. H가 준 찰떡과 함께 먹으니 그 궁합이 대단하다. 찰떡과 쌍화차. 아 너무 멋진 조합 아닌가? 맛있게도 냠냠 정신없이 먹는데 말하지 마라 한 것 까지 쓸걸 아마? 나를 제외한 E, H, JH가 웃으며 속삭인다. 푸하하하 그렇다. 나는 지금 우리끼리 몰래 먹는 거예요. 말하지 마세요! 까지 몽땅 적고 있다. 히히



막내 JH가 오늘 언니들이랑 치니 영 실력 발휘를 못하네. 빵빵~ 장타를 자랑하는 그녀가 세컨드 샷에서 자꾸 실수하니 우리들 마음이 더 안타깝다. 그러던 그녀도 돈내기를 하면서 돌아온다. 푸하하하 우린 모두 내기에 강해. 단돈 이천 원에 정신이 번쩍! 땡그랑! 땡그랑! 볼도 잘 넣는다. 하하 얼마나 듣기 좋은 소리인가. 쫄쫄쫄쫄 굴러서 땡그랑! 하하 아 좋아.



아, 모야. 한 바퀴만 더 구르지. 땡그랑땡그랑 잘도 들어가더니 아슬아슬 딱 붙어 멈추고야 마는 JH의 안타까운 볼. 가라. 가라. 조금만 더 가. 조금만 조금만 더. 훅! 바람 한 번 불어주면 들어갈 것 같아~ 아, 아쉬워.



누런 잔디에 그린만 새파란 누리끼리 겨울 골프장. 뒷팀이 나무 사이로 보인다. 잘 쳐요~ 괜히 우리는 소리한 번 질러본다. 푸하하하 좋은 거다.



앞팀이 아직 세컨드샷을 안 했다. 기회는 요때닷. 어차피 기다려야 하는 것. 나와 이리들 나와~ 여기 앉아서 저기 페어웨이가 쫘악 나오도록. 하하 네~ 네네~ 앞 팀이 세컨드샷을 치기 전에 사사삭 재빨리 들 모인다. 우리의 캐디는 한 술 더 떠 뒤를 보세요 앞을 보세요 뒤를 보고 고개만 돌리세요 푸하하하 주문도 많다.



힘을 쫙 빼고 나의 본능에 맡기며 목표점만 바라보고 빵! 빵빵! 저 멀리 쓔우우웅 날아가는 공. 우아아아아 페어웨이 한가운데 멋지게 안착. 하하 바로 이 맛에 골프를 하지.



우리 서클에 사람이 많은 것 같아 무언가 도움을 주려고 그때 총무였던 P에게 내가 좀 빠져줄까? 하니 언니 비회원은 나가면 안 돼요. 비회원이 많아야 점수가 높아요. 해서 남는 게 돕는 거라는 것 알았다 하니 곁에 있던 E가 가세한다. 흠... 비회원인 우리. 고개 좀 빳빳이 들어볼까? 하하 넵 그래요~ 터지는 웃음. 네네~ 귀하신 비회원님들.


언제나 푸르른 솔나무. 그 아래 누렇게 펼쳐진 긴 페어웨이. 세월이 하도 빨라 어느새 2020년은 다 저물고 2021년 새해가 밝았고 그 한 달도 이미 저물어가고 있다.



언제 어찌 될지 알 수 없으니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하자. 네~ 이렇게 오래오래~ 우리 함께요~



언니 김치볶음 수육 정식 너무 맛있어요 꼭 드세요~ 제1조의 H가 우리 조 Y에게 속닥속닥 말해주었다는 비밀 정보를 접하고 네 명 전원 이걸 선택한다. 아, 정말 맛있다. 회의는 없이 뚝뚝 떨어져 앉아 조 별로 밥을 먹는 것으로 21년 새해 1월 라운딩이 모두 끝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