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골프

울산 C.C. 울산 컨트리클럽

by 꽃뜰


안갯속을 거니는 것은 이상하다

모든 나무 덤불과 돌이 외롭다.

어떤 나무도 다른 나무를 보지 못한다.

누구든 혼자이다.


헬만 헷세의 시가 생각나는 안개 낀 아침이다. 해님이 활짝 웃는 밝은 대낮에 하던 서클인데 그렇게 좋은 시간에 하는 건 비회원들에게 전혀 할인이 적용되지 않아 배려 차원에서 우린 아침 일찍 하기로 룰을 바꿨고 오늘이 그 첫날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벌건 대낮에 칠 땐 절대 경험해보지 못한 안개가 자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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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위엔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았고 춥다. 이 또한 경험해보지 못한 추위다. 해님이 있고 없고는 차이가 크다.


같은 조가 되어야 수다 좀 실컷 떨 텐데.
글쎄 말이야. 다음엔 우리 같은 조 해주어요~

나의 친구 은경과 함께 총무님께 특별 부탁을 한다. 코로나 때문에 노캐디! 노 샤워! 노 식사! 함께 하는 식사시간이 없어 같은 조가 아니면 단 한 마디 나눌 기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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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낀 울산 C.C. 옛날 동양화를 보는 느낌이다. 춥다. 그러나 너무 아름답다. 저 깊은 산속에서 안개가 모락모락 피어 나오고 있다. 모락모락 하하 나와 함께 라운딩 할 2조 멤버 중 막내의 안경에 뽀얗게 서리가 내려앉았다. 눈에 뵈는 게 없다며 빵! 빵! 얼마나 잘 치는지. 하하


저는 그때 그 언니 티칭이 많이 생각나요~

도대체 그리 잘 치는 비결이 모냐 하니 몇 달 전 라운딩 중 받은 게스트로부터의 레슨을 이야기한다. 오호 그래? 우린 라운딩 중 레슨은 잘못되기 십상이라 말은 못 하고 혹시 역효과가 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대개 공을 못 치게 하려면 라운딩 중 코치하라는 말이 있듯이 아주 잘 친다는 게스트로 온 분이 아예 우리 막내에게 들러붙어 내내 코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뒷조에서 그 모습을 보며 우린 걱정을 했었다. 저렇게 해서 잘 치기 힘들 텐데. 혼란이 올 텐데. 그런데 그건 우리 선입관이었다. 그때 레슨의 효과를 이렇게 감사하고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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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캐디! 노 샤워! 노 식사! 마스크로 중무장한 우리 멤버들.


자~ 들들 서봐. 내가 예쁘게 찍어줄게.

마스크 한 채로 중무장한 채로 잠깐 포즈를 취하게 한다. 내가 응차 앉아서 위로 향해 찰칵 찍으며 다리가 길게 나오도록 하하.


안개가 보이도록!

옆으로 돌리니 J가 놀라서 외친다.

안돼요 안돼. 저쪽으로요!

그렇지 그렇지 앞자리는 날씬한 분 차지. 휘리릭 오른쪽으로 나의 발을 돌려 약간 똥똥한 J를 끝으로 가게 해 날씬하게 만든다. 사진의 앞과 뒤 얼굴 크기와 몸 크기는 정말 차이가 크기 때문에 조금 똥똥한 사람은 반드시 위치를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오케이! 하하


P와 H가 따끈따끈 가래떡을 보여주며 찰칵. 내가 새벽에 떡집에 가 찾아온 말랑말랑 가래떡에 H가 가져온 조총을 찍어서. 하하 우리의 아침이다. 그 이른 아침엔 배달 안 해준다 하여 일부러 떡집 가서 찾아왔음을 살짝 생색내며. 푸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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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동양화가 따로 필요 없는 풍경이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자~ 자~ 이제 공을 칩시다~ 안갯속 촬영을 마치고 앞 조는 티그라운드로 뒷팀은 카트로 돌아간다. 항상 벌건 대낮에 시작했는데 비회원을 배려한 따뜻한 마음이 전달된 걸까. 처음으로 이른 아침 시작한 날 너무도 아름다운 안개 낀 모습을 선물 받는다. 우아 너무 예뻐~ 어쩜 이런 풍경이~ 모두들 감탄하느라 입을 다물지 못한다. 추운데 하하. 게다가 안개는 공이 안 보여 라운딩에는 최악인데 말이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은 그 모든 불안을 제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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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드디어 둥근 해님이 솟아오르며 아름다운 안개를 황급히 거둬들인다. 사사삭 사라지는 안개. 흠 그럴 줄 알았어. 우리가 공칠 땐 안개 몽땅 거둬가 주실 줄 알았어~ 하하 둥근 해님은 환하게 온 땅을 비추며 모든 안개를 깡그리 거둬가 주신다. 울산 C.C. 여 깨어나라~ 하하 해님은 점점 그 영역을 넓혀간다. 기지개를 켜는 울산 C.C. 아름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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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둘헛둘 라운딩 전 운동 시작. J 따라 힘차게 하나 둘셋넷. 휙휙 잘도 꺾어지는 J. 엇둘엇둘 자~ 이제 예쁘게 마무리~ 우리도 같이 해요~ 우리 조 P와 H가 합류. 엇둘엇둘. 운동시켜주는 캐디가 없는 노캐디! 우리가 알아서 준비운동을 해야만 한다. 안개는 서서히 걷혀간다. 해님이 나오시면서 날씨는 견딜만한 추위로 변하며 공치기 꽤 좋은 날씨가 된다. 얏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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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골프. 그린 위에 떨어진 공은 통통 굴러 밖으로 튀어나가고 또로로 구르는 공엔 하얀 서리가 뽀얗게 앉는다. 그래서 우린 하나씩 주어진 수건을 바지 뒤에 차고 직접 공을 닦으며 퍼팅을 준비한다. 해님은 나무들을 환하게 비추고 있지만 여전히 그린 위엔 하얗게 내린 서리가 그대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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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버도 빵! 멋지게 날리고 쎄컨 샷도 써드 샷까지도 아주 잘 쳐 그린 근처 왔건만 에고 벙커에 폭 빠지고 만다. 보기 플레이를 하며 간간이 파도 기록하며 스코어를 꽤 괜찮게 만들어 가고 있던 중 벙커에 빠진 이 공을 제대로 빼내지 못해 트리플 보기를 한다. 아흑. 한번 무너진 리듬은 다음 홀에도 그다음 홀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 어떤 일이 벌어지건 그 홀로 끝내고 새 출발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 내가 거기서 왜 그랬을까? 에 사로 잡히니 엉망이 된다. 깔끔하게 지난 홀은 잊고 새롭게 집중해야 한다. 골프에선 그 어떤 불상사도 일어날 수 있지만 그 홀로 끝내야 한다. 거기 얽매이면 끝이다. 여전히 집중의 세계는 힘이 들다. 정신 바짝 차려야만 계속 집중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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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인 곳엔 안개가 여전하여 마치 스키장 같기도 하다. 아, 그런데 안개 낀 골프장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이 멋진 자연 속에서 좋은 동반자들과의 라운딩이라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질 수 없는 행복이다.


아니, 의사쌤이 이래도 됩니까?

의사일 하기도 벅찰 테니 살림 아무것도 못해도 될 텐데 의사인 막내는 직접 만든 생강차라며 따라준다. 우린 놀라서 의사는 이런 거 못해도 된다고 한 마디씩 한다. 아, 그런데 정말 맛있다. 피로가 싹 풀리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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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님은 점점 그 기세를 떨치며 모든 서리를 깡그리 녹인다. 그리고 우리도 따뜻해진다. 너무 껴입고 왔나 봐. 우린 벗고 또 벗는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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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홋. 어프로치를 어쩜 이렇게 잘해?


들어갈 듯 말 듯 딱 붙인 H의 기막힌 어프로치에 우린 모두 짝짝짝 박수를 보낸다. 함께 공을 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가.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달에 한 번은 함께 할 수 있는 서클이라는 것. 하하 푸하하하 별 일 아닌 것에도 까르르 웃음이 쏟아진다. 그 누가 같은 조가 되어도 그저 좋고 즐겁다. 세월이 휙휙 지나가는 만큼 정도 파팍 쌓여만 간다. 지금 이대로 우리 오래오래 즐겁게 공을 칩시다~ 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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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캐디 깃발을 휘날리며 우리는 달린다. H가 캐디 보다도 더 숙련된 모습으로 카트를 운용한다. 스코어 올리는 건 내가 맡았는데 H의 동작이 얼마나 빠른지 아님 내가 너무 느린지

이제 스코어를 적어볼까~

하면 어느새 다 기록되어 있곤 했다. 하하 동작 빠른 H 동작 느린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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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고급 퀄리티 울산 C.C. 붕어빵! 현장에서 구워 파는 따끈따끈 붕어빵을 버디를 한 H가 우리 모두에게 버디 턱이라며 한 마리씩 쏜다. 쌀쌀한 날씨에 앗 뜨거워 붕어빵 너무 맛있다. 깔깔 푸하하하 웃음을 쏟아내며 각자에게 배당된 붕어빵을 순식간에 작살낸다. 아, 맛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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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초록이던 무성한 잔디가 몽땅 누르딩딩 빈약한 잔디로 변해버린 겨울. 그래도 폭신함은 살아있다. 빵 빵빵! 공을 날리며 멋진 기분을 만끽한다. 하얀 공. 네 거기 있거라. 내가 멀리멀리 보내주리라. 하하


눈에 뵈는 게 없을 땐 빵빵 잘 쳐지더니 눈에 뵈는 게 많으니 잘 안쳐지네요~

푸하하하 막내가 서리가 말끔하게 사라진 안경을 가리키며 툴툴댄다. 그러게 눈에 뵈는 게 없을 땐 그렇게 멋지게 공을 날리더니 지금 뒤땅이야. 하하 우리도 덩달아 깔깔댄다. 잘 쳐도 못 쳐도 그저 즐겁다. 폭신폭신 잔디를 밟으며 걷고 또 걷는다.


노캐디! 노 샤워! 노 식사! 우리의 서클은 이렇게 끝난다. 함께 모여서 맛있는 것 먹으며 즐기는 왕창 수다가 빠지니 무언가 나사가 빠진 듯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코로나를 이기기 위해선 우리 모두 조심해야 한다. 모두 함께 모이게 될 그날까지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