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래? 타이밍이 중요하지. 이제 와서? 흥!
우린 본 척도 않으며 화장실로 향한다. 아웃코스가 끝나고 인코스로 들어가기 직전 5대 정도의 카트가 몰려있어 기다려야만 하는 순간이다. 바로 앞 카트의 여자 둘이 카트에 앉은 채 우리를 보고 정말 고마왔어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제대로 못했어요 큰소리로 호들갑이지만 이미 우리의 마음은 싸늘하게 식어있다. 흥! 인사를 받나 봐. 고개 조차 안 돌리고 아니 살짝 째려보기까지 하며 그대로 화장실로 직행이다. 흥!
3번 홀쯤에서였을 게다. 그린 근처에 5번 우드가 커버까지 쓰인 채로 얌전하게 놓여 있는 것이다. 아마 마지막 샷을 5번 우드로 마무리하고 퍼팅을 하고는 그대로 잊었는가 보다. 커버까지 씌운 채로인 것 보니 채를 무척 아끼는 분인가 보다. 앞팀도 노캐디. 우리도 노캐디. 채를 챙겨주는 캐디가 없는 곳에서는 종종 발생하는 일이기에 우리는 그 채를 챙겼다. 그리고 아마 까맣게 잊었나 보다. 노캐디로 채 챙기랴 카트 운전하랴 정신없었으니까. 그들을 만날 수도 없었으니까.
7번 홀쯤에서 우리가 써드 샷을 마치고 그린으로 걸어가는데 그린 옆에서 다음 홀로 넘어가는 언덕길에 앞팀의 남자가 서 있다. 아, 그 채 주인이구나. 좀 멀리 있지만 우린 마구 소리친다. 맨 입에 안돼요~ 하하 우린 웃으며 맨 입에 안돼요~ 마구 외치지만 남자는 꿈쩍도 않는다. 아무 제스처가 없다. 물론 우리도 농으로 한 거지만 그래도 반응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가 카트에서 채를 가져가기까지 좀 뒤에 있는 나랑 S는 계속 웃으며 소리쳤다. 맨 입에 안돼요~ 하하 정말 안 들리는 걸까? 그 남자는 채만 들고 사라졌다.
퍼팅을 하기 위해 그린에 다 모이니 제일 앞서 가던 E가 투덜댄다. 아니 모 저런 사람들이 다 있어? 글쎄 처음엔 여자가 전화를 얼마나 했는데요~ 하면서 화를 내는 거야. 그러더니 남자가 채를 갖다 달라는 거야. 우리도 공을 쳐야 하는데 그게 말이나 돼?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도리어 화를 내다니? 모 저런 사람들이 있어? 에잇 괜히 채 가지고 왔다. 없다고 할 걸 그랬나? 에잇. 정말 기분 나쁘다. 모라고? 여자가 화를 냈다고? 우린 여자는 못 봤는데. 내가 제일 먼저 그쪽으로 갔잖아. 처음엔 여자가 소리소리치더라고. 전화를 얼마나 했는데 그리 모른 척을 하느냐고. 어디로 전화를 했다는 거야? 경기과로 했겠지. 우린 전혀 몰랐잖아. 그래도 그렇지 일단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 아냐? 그래서 우리가 맨 입에 안돼요~ 할 때 아무 반응도 없었구나? 하이고 모 그런 사람들이 있어? 아이 화난다.
앞서가다 도리어 앞팀의 신경질을 받았다는 E의 말에 우리는 그 앞팀에 대한 미움으로 똘똘 뭉쳐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곧 9홀이 끝나고 대기 중 만났으니 우리의 맘과 시선이 고울 리 없다. 흥! 타이밍이라는 게 있는 건데. 흥!!! 흥흥! 우린 그렇게 그들의 인사를 싹 무시하고 화장실로 향했던 것이다. 인사에는 타이밍이 정말 중요해. 깔깔대며 우리는 카트에 돌아와서도 계속 수다를 떨고 있었다. 미움이라는 지저분한 감정을 몽땅 그 팀의 사람들에게 쏟아내니 그렇게 신날 수가 없다. 이구동성으로 함께 남을 욕하는 건 얼마나 재밌는지. 한창 그러고 있는데
드디어 앞팀이 공을 친다. 앗 그런데 카트에 앉아있을 때는 몰랐는데 공을 치러 나오는 여자들 모습을 보니 앗앗앗 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다. 걷는 모습, 티를 꼽는 모습, 채를 드는 모습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꽤 연세가 드신 징표들. 아, 머야. 저렇게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었어? 괜히 죄송해진다. 그러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잖아. 그제야 드는 생각. 사실 3번 홀에서 채를 주웠으면 우리 역시 재빨리 경기과에 연락하던가 무슨 조치를 취했어야만 했다. 채를 잃은 분은 공치는 내내 그 채가 아쉬웠을 테니까 말이다. 우리가 까맣게 잊고 도리어 전화를 몇 번이나 했다는 당연한 말에 흥분해서 째려보고 흥체피를 날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나중엔 부드러운 손짓까지 했건만 우린 싹 무시하고 당신들 싫어욧 태도를 취했으니.
어느새 마지막 홀이다. 언제나 아쉬운 마지막 홀. 앗 그런데 티그라운드 앞쪽에 떡하니 꼽혀있는 티. 동그란 마스코트가 매달려 있는 아주 예쁜 티다. 앞팀에서 또 흘리고 간 것이다. 하하 연세 많으신 분들이 맞다. 이것저것 다 흘리신다. 그런데 그 동그라미 마스코트에는 선명하게 GOOD MANNERS라고 적혀있다. 아니 굳 매너라는 걸 가지고 다니면서 그렇게 굳 매너를 안 하셨을까? 하하 깔깔 푸하하하 우리는 웃음을 쏟아내며 그래도 앞팀의 그분들께 그 티를 전달해드리기 위해 서두른다. 기꺼이 가져다 드리리다. 하하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참 편치 않다. 연세가 꽤 드신 걸 보고 마구 죄송한 마음이 든 건데 어찌 되었건 마음을 돌리고 나니 그제야 우리의 실수도 보이고 어르신 그들에게 잘해드리고픈 마음도 퐁퐁 생겨난다. 누구나 실수는 있을 수 있다. 그걸로 그 사람들을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여러 홀을 그 채 없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드디어 우릴 보니 먼저 화가 났을 것이다. 나중에 고맙다고 마구 인사한 것 보면 그때야 채를 챙겨준 우리에게 고맙단 인사조차 제대로 안 한 게 생각나셨을게다. 우리가 그제야 경기과에서 수도 없이 했을 연락조차 무전기 다루는 게 서툴러 못 받고도 도리어 그들에게 흥체피를 날리며 미워한 게 죄송하듯이 말이다. 타이밍은 개뿔! 넷이 카트 안에서 앞팀에 대한 미움으로 똘똘 뭉쳐 낄낄대며 신나게 흉보다 보니 우리만 정의롭고 우리만 잘났더라. 앞으론 그러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