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대체 난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한가한 토요일 저녁. 남편과 나는 수변공원산책에 나섰다. 선선한 날씨. 알맞은 바람. 적당한 사람. 산책하기 꼭 좋은 밤. 잘 나왔지.저물어가는 가을 "잘 가라 가을~" 확실히 가을 배웅 중인데 앗.
울려 퍼지는 노래 그리고 색소폰 소리. 모지? 음악을 따라 걸어가 보니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누군가 노래하더니 다른 누가 색소폰 연주하고 또 다른 누군가가 노래하고 또 다른 누가 색소폰 연주하고. 그 어떤 프로그램에 따라 차례로 연주하는 듯했다.
재밌어서 한참을 보고 있는데 "산책 나왔어요?" 누가 반갑게 인사한다. 색소폰 오케스트라 멤버다. 오늘의 행사 주관자란다. "한 곡 부시죠." "아이. 무얼요. 연습도 안되어 있고." 그냥 하는 소리려니 하고 있는데 연주자가 두 명이나 펑크를 내 빈자리 어찌하나 하던 중이란다. "연습도 안 했고, 안됩니다." 딱 잘라 선을 긋는 남편과 달리 나의 마음속에선 '해보고 싶다.'가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었으니.
"우리 그냥 불어 보면 안될까?"슬그머니 말해보나 완벽해야만 움직이는 남편. "연습도 없이. 안돼!!!" "우쒸 저렇게 곤란해하는데." 난 훽 돌아서서 집으로 냅다 달렸다. 악기를 들고 왔다. 주최자 그분. 너무나 좋아하신다. 남편은 없다. 걷고 있나 보다. 흥!!!
이미 사회자의 멘트가 들린다. "이번엔 여자분입니다. 색소폰 오케스트라 멤버로서..." 쿵쿵 쿵쿵 쿵쿵 '이미 저질러진 일, 어쩔 거야.' 남편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그래. 씩씩하게!!!' 노래 가사가 멋진 배경 사진과 함께 나오고 있는 커다란 스크린과 밝은 조명. 반주기, 마이크가 설치된 무대로 용감하게 돌진. '이 순간을 즐기자고!!!!'
쿵쿵 쿵쿵!!!! 정신없이 뛰고 있는 나의 가슴이여. '으앙. 어쩔 거야.' 밝은 조명 아래 서니, 앞에 앉아 있는 관객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사방이 깜깜할 뿐. 아. 일단 정성껏 고개 숙여 미소 지으며 인사를 한다. 박수소리. '아흥. 어떡해.' 쿵쿵 쿵쿵 쿵쿵
드디어 시작되는 전주. 빠바 바바바~ 음. 쿵쿵 쿵쿵 쿵쿵쿵 쿵쿵쿵 노래에 집중하는 거야. 정성껏. 가사에 집중. 그래!!!! 할 수 있어!!!! 쿵쿵 쿵쿵 쿵쿵 쿵쿵쿵 쿵쿵쿵 '멀어져 가는~ 저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가사에 집중하며 조심스레 첫 음을 낸다.
까만 밤. 악보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깜깜절벽에 오로지 나 혼자 뿐.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느낌이랄까. 저 뱃속에서 올라오는 저력으로 한 음 한 음 정성껏 뽑아낸다. '아~ 다시 올 거야 너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그렇지 그렇지. 잘하고 있어. 여기선 좀 간드러지게 흘려버리고 '아 나의 곁으로 다시 돌아올 거야~' 점점 강하게 '그러나 그 시절에 너를 또 만나서 사랑할 수 있을 까~' 서서히 크라이 막스로. 아주 저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으로....
이 멋진 느낌은 무얼까? 아무도 없이 혼자. 맘껏 토해내는 가을밤 수변공원 색소폰 연주. '너를 또 만나서 사랑할 수 있을 까~' 있는 힘껏 클라이 막스로 치달으며 느껴지는 이 황홀감이라니. 나는 용감했다. 용감하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