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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이후엔 안 먹어

by 꽃뜰

"여보~ 나 꼬시지 마. 안 먹어."


그리고 나는 주방이 아닌 안방으로 향했다. 문을 꼭 닫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미 시간은 밤 10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샌드위치랑 콜라를 먹었는데 그건 밥이 아니란다. 밥을 먹어야만 하는 남편. 지금 먹고 나면 11시는 될 텐데 다음날 새벽같이 나가야 하는 우리에겐 무리다. 그래도 남편은 밥을 포기 못한다.


까다로운 남편은 밥상이 다 차려지고 나서야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밥이 대령되길 원한다. 전기밥솥 밥을 제일 싫어한다. 그래서 우리 집엔 전기밥솥이 없다. 오죽하면 애들이 엄마를 매 끼니 밥에서 해방되도록 전기밥솥을 생일선물로 주었을까. 물론 금방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그럼 밥을 어디에 하는가? 휘슬러 납작한 밥 전용 압력솥이다. 거기에 꼭 15분 담근 쌀과 서리태 콩을 넣어 치치칙 소리가 난 1분 후 아주 약한 불로 3분 30초 뜸 들인다. 게다가 매 끼니 딱 2인분이어야만 한다. 찬밥 남는 걸 질색하니까. 질다 되다 남았다 뜸을 더 들였어야지 하이고~


"그렇게 까다롭게 굴 거면 직접 하셔!"


어떻게 초까지 계산해서 밥을 하겠는가 그것도 매 끼니. 그래서 밥이 그에게 넘어갔다. 밥 짓기는 그 담당이다. 공대생답게 정확히 자로 잰 듯 매 끼니 딱 2인분의 밥을 기막히게 같은 솜씨로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사방팔방에 밥은 자기가 다한다며 아내를 묵사발을 만든다. 어쨌든 점심때 먹은 된장찌개도 있고 총각김치 깍두기 배추김치 오이소박이 줄줄이 밑반찬도 있겠다 그가 밥만 지어 준비된 반찬을 꺼내 먹기로 한다. 덜그럭 덜그럭 밥하는 소리가 들린다.


"여보~ 나 그냥 잘 까 봐."

"여보~ 나 절대 7시 이후엔 안 먹어."


미안하니까 무언가 혼자 밥하게 하는 게 걸리니까 계속 여보~ 여보~ 불러대며 내가 방 안에 가만히 있는 이유를 있는 대로 갖다 붙인다. 그렇게 단 한 번도 나와보지 않았는데 그가 저녁 먹는 소리가 들린다. 그동안 나는 글을 썼다. 그대로 침대로 갔다면 성공인데 일단 글 쓰기를 마친 나는 밖이 궁금하여 나와봤다.


솔솔 향기로운 밥 냄새 와우~ 밥상을 보니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먹어 안 먹어? 계량에 정확한 남편은 안 먹는다는 나의 대답에 이미 밥은 딱 1인분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밥상에 밥이 있다. 오홋. 7시 이후엔 아무것도 안 먹겠다는 결심도 아랑곳없이 난 밥상으로 달려들었으니


"여보~ 아주 조금만 딱 한 숟갈만 먹는 건 괜찮겠지?"


밥을 먹기 시작한다. 일단 발동이 걸리니 멈출 수가 없다. 내가 먹으러 나올 것이라 짐작하고 2인분을 했단다. 결국 너무너무 맛있게 다 해치운다. 그리고 후회한다. 아, 먹지 말걸.


(사진:친구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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