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마다 신문. 그렇다. 난 새벽에 일어난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신문을 가지러 문 앞으로 나간다. 배달된 신문을 들고 들어오며 아, 어떻게 하나. 마음이 복잡하다. 읽지도 않으면서 끊어야지. 그러나 끊기가 여간 어려워야지. 전화하기도 힘들고 아 귀찮아 그냥 두어. 그런데 정말 신문으로 손이 안 간다. 그렇게 집에 신문은 쌓여가고 매주 분리수거하는 날에 우리의 짐이 되고 있다. 한 달 정도 모으면 아주 가득이다. 남편이 그걸 노끈으로 단단히 묶어 분리수거 장소에 내놓으면 요즘 신문 안보는 사람이 많아서일까.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가 즉시 가져간다.
새벽마다 신문 보기를 참으로 즐겼었다. 가끔은 그렇게 다시 신문을 열심히 읽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하루하루 이제는 신문과 멀어지고 있다. 그래서 무언가 다시 읽고자 하는 맘에 불을 지피고 싶어 난 이 글을 쓴다. 저걸 그냥 매일 받아만 놓을 수는 없지 아니한가.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랬다. 죄책감으로 신문을 살짝 들치지만 곧 TV로 유튜브로 쉽게 뉴스를 접하게 된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신문이 우선이었다. 두 시간 정도 아주 꼼꼼히 읽고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면 무언가로 단단히 무장된 듯한 그 흐뭇함이 좋았다. 신문을 쫘악 펼쳐놓고 공부하듯 읽고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자도 빼놓지 않기 위해 빨간 색연필로 쭈욱쭉 읽은 걸 표시해가며 읽은 적도 있다. 물론 그때 남편은 현직으로 새벽같이 출근해 회사의 신문을 읽을 때니까 우리 집 배달 신문은 내 맘대로 붉은 줄 쳐가며 엉망으로 만들어도 되었다.
어릴 때로 돌아가면 그땐 소년한국 그런 어린이 신문이었다. 난 오빠 하나 남동생 하나 삼 남매였는데 그 신문을 제일 먼저 읽고 싶어 신문도 오기 전 꼭두새벽에 일어나 신문 오기까지 대문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 기다리다 대문 안으로 툭 떨어지는 신문을 기쁨으로 홀로 독차지하고 읽었다. 그렇게 나의 신문에 대한 열정은 오래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4학년 취업준비 그땐 기본적으로 일반상식이라는 두꺼운 책을 공부해야 했다. 시험과목에 그게 있었다. 방송국이며 신문사며 언론사가 목표였던 나에게 그러므로 신문 읽기는 필수였다. 교과서 공부하듯 신문을 깡그리 읽었다. 그러다 결혼 적령기가 되어 선을 보았는데 그 푸근한 아저씨 같은 나의 상대는 만날 때마다 신문을 읽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고 손에는 신문이 들려있었다. 짬만 나면 신문을 읽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정말 모르는 게 없었다. 여기 쿡 저기 쿡 호기심 천국인 나의 질문에 막히는 게 없었다. 그는 매일 신문을 받으면 그냥 무조건 맨 첫 장 맨 꼭대기부터 줄줄줄줄 읽어나간다 했다. 광고까지 몽땅. 아, 저렇게 신문을 달달 읽으면 만물박사가 되는구나. 그때부터 나도 무조건 신문을 맨 첫 장 맨 꼭대기부터 마지막 장 맨 아래까지 광고까지도 샅샅이 다 읽고자 애썼다. 그러나 신문을 그렇게 몽땅 읽어내는 것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남자는 지금도 어디선가 신문을 읽고 있을 것이며 아마도 만능박사를 뛰어넘어 그 이상이 되어있을 것만 같다. 신문을 그런 식으로 깡그리 계속 읽었을 테니까 말이다.
결혼해서 애들과 정신없을 때 그때도 난 신문 읽기를 계속했다. 그러나 방법을 달리 했다. 신문이 오면 일단 사설이 있고 칼럼들이 있는 곳만 빼 손안에 쏙 들어오게 접어들고 다니며 짬 날 때마다 읽고 또 읽었다. 전철에서도 버스에서도 걸으면서도 난 손안에 쏙 들어오게 접은 사설과 칼럼들을 읽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신문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럴 새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과감히 끊어보려 했다. 그러나 끊겠다고 끊어지는 신문이 아니었다. 일 년간 무료로 넣어줄 테니 계속 보라고 한다. 맘 좋은 아저씨의 구수한 부탁에 네~ 알겠어요~ 그러면 일 년이 무료로 오고 그리고 다시 새 구독이 시작된다. 끊어야 하는데 끊을 수가 없다. 일 년 공짜였던 만큼 무조건 일 년은 또 봐야 한다. 신문값도 오르고 물가가 올라 이젠 2 개월만 무료로 넣어준단다. 전엔 상품권도 주고 일 년을 무료로 주고 경제지도 주고 그랬는데. 그렇게 또 세월은 간다. 그리고 매일 새벽 우리 집 앞에는 신문이 배달된다. 자, 어떻게 할 것인가?
신문사에 안 걸리는 전화를 계속 돌리고 싶지도 않다. 우리 집 배달되는 신문 보급소에 전화 걸어봤자다. 끊을 수 없다. 그렇다면? 할 수 없다. 옛날로 돌아가 다시 신문을 샅샅이 공부하듯 읽어보자. 그래. 파이팅! 그것만이 내가 이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하하. 신난다. 나는 다시 신문으로 무장할 것이다. 얏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