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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y 31. 2019

은퇴한 남편 직장동료들 부부 골프

포항 C.C. 오션뷰 C.C. 오션 비치 골프&리조트



남편이 은퇴했다. 남편의 상사도 은퇴했다. 남편의 동료도 은퇴했다. 모두 모두 은퇴했다. 그런데 직장 상사며 동료며 회사 다닐 때 함께 일했던 이들은 은퇴하고도 다시 만난다. 그 끈은 골프, OB라는 이름이다. 거기에 아내도 합류한다. 그렇게 부부가 함께 이런저런 한창 시절을 회상하며 나이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모아놓은 회비로 2박 3일 포항 C.C. 와 오션뷰 C.C.로 원정경기를 떠난다. 밥도 빨래도 청소도 안 해도 되는 이런 나들이를 우리 아내들은 너무 좋아한다.




그런데 하필! 바로 그날 비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진다. 게다가 돌풍 강한 바람까지. 총무를 맡은 나의 남편은 새벽부터 일어나 골프장에 전화를 걸어 옵션 여부를 체크하지만 아직은 모르겠단다. 그냥 빨리 출발하겠다는 분들도 계시고 우왕좌왕이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멘트를 날리고 다시 전화를 돌리고 일기예보를 확인하지만 어째 공을 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결국 2부 타임까지도 모두 옵션이 걸린다. 공을 안 치는데 숙소에 가서 잘 필요가? 해서 전화를 돌리지만 숙소는 당일 펑크를 내면 전액 물어내야 한단다. 골프텔인데 골프를 못 치는데 그래도 그 숙소에서 자야 하다니 에고. 이럴 때 총무는 많이 힘들다. 그래도 숙소 비를 전액 환불하느니 일단 저녁 6시까지 모이기로 한다. 어차피 저녁식사도 예약이 되어있으니까. 달리는 내내 비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지고 잠깐 휴게소에 나가보는 데도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분다. 하필 날씨가 이렇담. 에고.


다행히 숙소가 아주 괜찮다. 우리가 치게 될 골프장이 바로 앞에 쫘악 펼쳐져있고 그 뒤로는 바다가 쫘악~ 와우. 날씨 때문에 꿀꿀했던 마음들이 활짝 핀다. 두 부부 씩 총 네 집에 8 부부가 모인다. 공은 못 치고 빗속에 달려와 짐을 푼다. 직장으로 맺어진 인연이지만 이렇게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다. 오래오래 만나며 함께 일하며 정이 들어 제2의 가족 같은 분위기다. 직장에서 굳어진 팀들이기에 배려 서로 배려 남을 먼저 신경 써주는 아량으로 누군가 실수를 해도 곳 감싸안는 따뜻한 곳이다.


비가 여전히 쏴아 쏴아 쏟아지지만 숙소에 짐을 푼 우리는 이미 예약된 횟집으로 향한다. 수족관 속 고기들이 놀라지 않도록 살짝 사진을 찍는다. 우리가 먹을 고기들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니 점점 회가 싫어진다고들 한다. 그리고 보니 나도 좀 그런 것 같다. 회가 옛날처럼 막 당기고 먹고 싶고 그러지는 않는다.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이날 그래도 우린 바닷가에 왔으니 회로 식사를 한다.



맛있게 회가 마련된다. 직장 때 최고 상사였던 분은 항상 무언가를 베푼다. 이 날도 와인을 여러 병 가져오셔서 아내들이 신나게 마신다. 어디 여행 갈 때마다 푸짐하게 와인을 준비해주신다. 비는 부슬부슬 하염없이 내리고 이제는 은퇴한 왕년의 산업의 역군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그 한창때를 이야기한다. 그때 그랬지. 어쩌고 저쩌고 남편들끼리 모여 앉아 이야기가 많다. 여자들 수다 보다도 더한 것 같다. 그렇다고 우리 여자들이 가만있을까. 우리는 회사는 모르지만 그 즐겁던 사택 시절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줄줄줄줄 끝날 줄을 모른다. 그때 모래시계 기억 나? SBS가 오로지 서울에서만 방송되던 시절, 서울 사는  친구가 매 회 비디오녹화해 보내주 한 집에 모두 모여 그 드라마 보던 거. 하하 그때 정말 너무 재미있었어요. 바게트 빵이니 커피니 먹거리를 잔뜩 준비해놓고 윗집 아랫집 회사에서 밤늦도록 일하는 남편들 빼고 학교에서 공부 한창인 아이들 빼고 우리 여자들끼리 한 집에 모여 얼마나 울고 웃으며 그 드라마를 보았던가. 하하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옛날 옛날이야기가 우리들 마음을 한껏 적신다.



어느새 횟집이 문을 닫아야 할 시간. 내일 새벽에 공치러 나가야 하지만 헤어지는 게 너무 섭섭해 숙소에 오자마자 또 한 방에 모여 추억의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그 어떤 이야기를 해도 모든 게 추억이고 그립고 재밌다. 방은 4개 예약되어있는데 한 방에서 헤어질 줄 모른다. 가자. 가. 내일 공쳐야지. 겨우 사람들이 흩어진다. 정이란 그런 것이다. 세월 갈수록 깊어지는 것. 그냥 함께 해도 자꾸 웃음이 나오고 흐뭇하고 안심인 그런 .



드디어 바다가 보이는 포항 C.C. 에서의 라운딩이다. 아, 다행히 오늘 날씨는 너무 맑다. 어제의 돌풍 비바람 때문일까 하늘은 쪽빛 아주 파랗고 구름은 새하얗다. 그리고 공을 칠 때 저 멀리 바다가 보인다. 바다, 아 바다. 어떻게 바다가 저렇게 눈 앞에?



그리고 여기 사람들 말로 그야말로 천지 빼 깔로 피어 있는 예쁜 꽃들. 빵빵~ 공은 좀 안되어도 좋다. 가슴이 탁 트이는 것만 같다. 본래 2박 3일을 계획한 우리는 첫째 날은 남자팀 여자팀 둘째 날은 부부팀 셋째 날은 다시 남자팀 여자팀 이렇게 조편성을 해놓았었다. 그러나 비바람 때문에 첫날이 취소되자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여자들끼리 쳐요~ 한다. 그래서 부랴부랴 오늘 본래는 부부팀인데 남자팀 여자팀으로 재편성해 우리는 지금 여자들끼리 치는 중이다.




왜 여자들끼리? 부부팀이 되면 우리 모두는 서방님들의 잔소리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미 어드레스를 하고 있어도 남편들의 잔소리는 튀어나온다. 방향이 틀렸잖아. 좀 더 앞으로. 좀 뒤로. 어쩌고 저쩌고에서 시작해 땅 뒤땅이라도 치고 나면  어깨 힘 빼라는데 힘주어서 그렇다 어떻다. 하이 고오~ 그런데 그거 나만 느끼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모두들 속마음엔 남편의 잔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그걸 잔소리로 듣는다고? 남편들은 펄쩍 뛰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자끼리가 깔깔대며 아주 편하게 칠 수 있어 웬만하면 여자들끼리 치려고 한다. 좀 더 잘 치게 하려는 남편들 맘이야 우리가 잘 알지만 그것이 라운딩 중에 되겠느냐 말이다. 그래도 남편들의 코치는 계속된다. 하며 코치라는 것을 원포인트 소중한 레슨이라고 강조하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여전히 잔소리일 뿐이다.


오죽하면 처음 3조 열두명일 때 그때는 남자팀 하나 여자팀 하나 그리고는 꼭 부부팀이 있어야만 했다. 매번 정기라운딩이 끝나면 두구두구 당당 뽑기가 진행되었으니 남편이 총무인 나는 예쁜 가방 안에 바둑알을 검은색 4알 하얀색 2알 준비해 가 두루 돌며 모두 한 개씩 바둑알을 눈을 꼭 감고 집어내게 하고 손에 꼭 쥐고 있다가 두구두구 당당 자~ 펼치세요~ 하면 손을 쫙 펼치는데 그때 부부팀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면 부부팀 결정된 팀은 싫어하고 여자팀 당첨은 좋아하고. 하하 그 투표의 시간이 얼마나 설레었던지.


두 부부가 새로 들어와 남자 8 여자 8 명이 되면서 더 이상 투표할 필요가 없어졌고 의례 우리는 여자팀 남자팀 나누어 여자들은 룰루랄라 스코어 별 상관없이 즐기고 있으나 가끔은 그때 투표하던 그 두근대던 그 장면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어쨌든 우리의 골프는 계속되며 우리의 정도 깊어만 간다. 아, 곳곳에 바다가 펼쳐져있다. 포항 C.C.  너무 아름답다.


앗, 저게 뭐야? 꿩인가? 아니 오리 같아. 공을 치고 있는데 갑자기 쪼로로록 무언가 지나간다. 뭐지? 커다란 닭 같은 거 그리고 그 뒤로 코딱지만 한 아주 작은 새끼들 대여섯 마리가 쫄쫄쫄쫄 줄지어 서서 아주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하. 어디로 가나? 이 연못 속으로 급히 퐁당퐁당 들어가는데. 하하 그러니까 꿩이 아니라 오리가족이 맞는 것  같다. 두둥실 흘러가는 구름 아래 평화로운 오리 집. 집으로 가나보다. 오리 식구가 헤엄쳐가는 연못이 평화롭다.



앗, 그런데 이것이 무엇이냐. 저 멀리 푸른 바다가 보이는 가운데 호랑이 네 마리가 떡 버티고 있으니 와우. 우리는 달려가 호랑이를 쓰다듬어주고 그리고 바다를 바라본다. 하하 공치는 순간순간에 이렇게 멋진 곳의 등장이라니. 호랑이 한 번 보고 빵! 오홋 호랑이님의 기를 전달받았는가. 멋지게 날아가네~ 와우 하하 푸하하하



호랑이님~ 잘 칠게요~ 쓸쓸히 바다를 지키고 있는 네 마리의 하얀 호랑이님들과 작별인사를 한다. 우리는 공을 쳐야 하니까. 집중! 집중의 문제다 공이 잘되고 안되고는. 정성껏 한 타 한 타 온 정신을 집중하여 빵! 샷을 할 때 그 볼은 정말 멋지게 날아간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정신이 흐트러지면 소중한 한 타를 잃게 된다. 남편이 제일 싫어하는 게 한 타의 소중함을 모르고  아무렇게나 휙휙 쳐는 것이다.



호랑이님들~ 안녕~ 못내 떠나기가 아쉬워 자꾸자꾸 호랑이님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엣 헴. 공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이 번 샷이 내 생애 첫 샷인 듯이. 정성껏 정성껏. 나 혼자만이 공 앞에 있는 듯 무아지경의 기분으로 오로지 목표만 바라보고. 오예!!!



아, 하늘이 너무 예쁘다. 그 하늘로 쭉쭉 뻗은 나무들도 아름답다. 나의 정신은 또!!! 멋진 자연으로 달아나려 한다. 꽉 붙들어야 한다. 공에 집중해야 한다. 오로지 나 혼자만의 싸움. 나 스스로 견뎌내야 하는 정신집중의 세계. 그런데 그 집중을 노력하다 보면 그건 또 다른 무아지경의 세계. 홀로 공과 싸우는 그 순간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른다.



연못에선 물이 퐁퐁. 공은 꼭 맘대로 잘 되지 않는다. 한번 무너지면 와르르 무너져 곱게 진행하던 홀을 엉망진창으로 냉탕 온탕 난리를 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그다음 홀로 향할 땐 그 엉망의 마음을 모두 내던져야 한다. 새로운 첫 샷을 하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새롭게 임해야 한다. 이건 삶에도 적용이다. 매일 새날 새 하루를 살듯이. 아무리 엄청난 불행의 일을 겪었을 지라도. 새날 지금 이 순간 새롭게. 온 집중을 다하여.



왜 문득 여기서 히드 클리프가 생각까? 폭풍의 언덕 이야기를 한참 한다. 외롭고 고독하고 포악하고. 하하 우리의 이야기는 그렇게 들쑥날쑥, 학창 시절 읽던 책에서부터 남편 회사생활, 애들 키울 때 이야기까지 그야말로 무궁무진이다. 남자들도 이렇게 옛 추억을 이야기하며 라운딩 할까? 하하 별게 다 궁금하다.



아, 이제 마무리를 해야  시간. 언제나 인코스 마지막 홀은 아쉬움이 남는다. 좀 더 집중할 걸. 아, 그렇게 치지 말 걸, 아. 말걸... 말걸.. 말걸의 연속이다. 그 아쉬움이 있기에 다음을 기약하고 다시 오게 되는 것 같다. 3 온 3 펏이라니. 5 온에 1 온한 A는 차라리 마지막 펏이 멋지게 성공하여 좋아 팔짝 뛰지만 버디 찬스에서 보기도 아니고 더블보기가 되어버린 나는 마음이 울적하다. 아이... 왜 첫 펏을 그렇게 엉망으로 했을까. 좀 쫌 쫌!!! 집중하지!!!!



모든 아쉬움을 뒤로한 채 푸카푸카 시원하게 샤워하고 작전상 그냥 이 곳 클럽하우스에서 식사를 한다. 초계탕이라는 것을 먹어본다. 시원한 냉면 같은 것에 닭가슴살이 동동 떠있. 청국장을 시키고 해물된장을 시키고 각자 취향에 맞게 종류대로 시켜 점심을 먹고 이곳까지 나온 김에 영덕 해맞이 공원 기로 한다. 기진맥진이지만.



"내가 이렇게 젊은 엄마들이랑 공치러 다닌다고 하면 막들 부러워해. 내 나이에는 이렇게 다니지 않거든." 연세가 많으신 사모님은 항상 그렇게 우리와의 모임을 즐거워하신다. 남편이 직장 다닐 때 최고 높은 상사였던 분이다. 이제는 모두 하나 되어 웃고 떠들고 하지만 위계질서 확실한 직장 때는 모두 어려워하는 분이었을게다. 그런데 80을 코앞에 둔 우리의 사모님, 함께 18홀 완주한 것도 어딘데 그런데 우리 따라 2차 해맞이공원 블루로드 산책에 나다. 파이팅!!!



아무래도 힘드시겠지요? 바다가 보이는 정자에 앉아 기다리시게 한다. 우리가 돌아 나올 때까지 여기 앉아 계세요. 그리고 우리는 출발이다. 사모님 서방님도 출발이다. 핸드폰 차에 두고 오셨다는데 뭐 금방인데 전화 쓸 일 있을까 그냥 출발한다. 그러다 아차 한다. 핸드폰도 없이 괜찮으실까. 잠깐일 줄 알았던 블루로드 해안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막 걱정이 되어 되돌아가야 하나 뒤를 돌아보니 앗! 사모님께서 걸어오고 계시다. 와우.


아무래도 불안해서 따라 내려왔어. 하시는 사모님. 휴~ 안심이다. 어떡할 뻔했어요. 잠깐일 줄 알았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어 우리도 그러잖아도 갈등 중이었어요 돌아가야 하나 어쩌나. 아, 사모님 참 잘 오셨어요. 갑자기 등장한 사모님이 우리는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아, 정말 다행이어요. 어서어서 우리는 양쪽에서 호위하며 사모님을 막 격려한다. 그렇게 우리의 단합은 바닷가에서 또 이루어진다.



앗, 엉겅퀴!  바닷가에 피어있는 온갖 꽃들을 보며 또 추억의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나이가 들면 그렇게 추억을 먹고사는 걸까. 보는 족족 온갖 이야깃거리를 퐁퐁 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보랏빛 엉겅퀴는 정말 이쁘다. 난 사실 이것이 엉겅퀴인 줄도 몰랐다. 어르신네들이 엉겅퀴라 하고 이걸 약초로 쓰던 온갖 이야기를 하는 통에 아하 엉겅퀴구나 요렇게 알았을 뿐. 그런데 정말 예쁘다. 보라색이 얼마나 예쁜지.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드넓은 바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우리가 내려온 만큼의 절벽에 피어있는 온갖 꽃과 약초들, 저건 인동초다. 얼마나 향이 좋은 줄 아나. 위태위태 가파른 곳에 올라가 따주려는  남편들. 조심해라 가지 마라 위험하다 난리 치는 아내들.  캬~ 향기가 너무 좋다. 결국 따다 준 인동초에 코 박고 좋아하며 걷고 또 걷는다. 사모님 괜찮으세요? 종종 소리쳐 안부를 확인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바다를 따라 나있는 둘레길을 걷는다.


손가락 걸고 약속하는 듯한 모습의 약속 바위를 한참 바라본다. 정말 바위에 손목도 있고 손가락도 있고 어떻게 그렇게 손의 형상을 갖추고 있을까. 약 2억 년에 걸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형태라니 와우... 2억 년이라. 그걸 찾아내 약속 바위라 이름 지은 것도 신기하고. 처얼썩철썩 파도 부딪는 소리가 온몸을 상쾌하게 한다. 철썩철썩 철썩



와우 내려온 만큼 올라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저 높은 꼭대기에서는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 헉헉 헉헉 사모님이 힘들어하신다. 앞에서 뒤에서 밀어주고 끌어주고 그렇게 겨우겨우 블루로드 해안길 산책을 마친다. 사모님, 완주 축하!!! 라운딩이 끝날 때도 우린 사모님 완주 축하를 한다. 중간에 포기 안 하신 게 어디예요. 그 연세에 대단하세요.





빙글빙글 빙글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다. 짙푸른 바다와 초록 나무 산과 함께 매우 이국적인 모습이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가며 내내 하는 소리. 이 나이에 이렇게 건강하게 얼마나 좋아. 내 친구들은 함께 다닐 친구가 많지 않대. 난 젊은 친구들이 함께 놀아주니까 이렇게 다닐 수 있는 거지. 하시면서 저녁 턱을 내신다.



뽀골뽀골 우럭 매운탕이다. 뱃속이 뜨끈뜨끈 이제는 회보다도 이렇게 팔팔 끓는 게 더 끌린다. 직장에서부터 몇십 년을 함께 해온 분들, 마음은 그때랑 똑같은데 세월이 자꾸 나이를 이상하게 올려놓아  여기저기가 고장 나고 외모가 변한다. 그래도 고장 난 채로도 이 모임에는 오신다. 함께 하하 푸하하하 깔깔 웃다 보면 모든 아픔은  잊힌다. 그러니까 다시 건강해지시는 것 같다. 아팠던 분도 다시 이 모임에 나오며 건강을 되찾고 있다.



횟집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기가 막히다. 황혼이 깃들고 있다. 우리에게도 황혼이 깃들었다. 그래도 마음은 마냥 청춘.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냥 막 좋다. 모두들 참 좋으신가 보다.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아, 우리 방에서 보는 일출 풍경. 어제는 시간을 또 잘못 알아 5시 반에야 일어나는 통에 일출을 놓쳤다. 오늘은 기필코 4시 50분에 알람을 해놓고 일어난다. 아직 해가 뜨지 않고 경계선만 주홍빛으로 물들어 간다. 그리고 한 참을 기다리니 5시 8분에 뽕 그야말로 뽕 수줍게 조금씩 보이던 동그란 해는 뽕~ 솟아오른다. 그 앞으로 탁탁 탁탁 배가 지나간다. 아, 멋있다. 아침잠 많은 서방님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베란다 문을 꼭 닫고 밖에 서서 스 피커에 손가락을 꼭 대고 소리 안 나게 찍는다. 그런데 이런 멋진 광경을 포기하다니 아무리 아침잠이 귀하다 해도 내참.



우리가 라운딩 할 오션뷰 골프장이 침대방에서 그대로 보인다. 오션뷰라더니 바다를 바라보며  치는 홀이 꽤 된다. 그렇다고 오비가 나면 바다에 퐁당! 까지는 아니하하. 지금은 오션뷰가 아니고 오션 비치 골프 & 리조트라고 이름이 바뀌었단다.



날씨 좋고 골프장 좋고 동반자 좋고 공만 잘 되면 금상첨화인데 그러나 공은 잘 되다가도 안되고 안되다가도 잘 되는 것. 마치 우리의 삶과 같다. 잠시 실패했다고 거기 매달려 있다가는 18홀 모두를 엉망으로 만들 수 있다. 골퍼는 그 어떤 상황도 겪을 수 있다. 문제는 깡그리 잊어야 한다는 것이다. 냉탕 온탕 왔다 갔다 하며 스코어를 엉망으로 만들어도, 아쉬움이 너무 남아도, 일단 그 홀을 떠나는 순간 깡그리 잊으리라. 매 홀 정신 집중하여 오늘의 첫 샷을 하듯이 그렇게 리라                                                                                                                                                                                                                                                                        




그러나 골프는 멘털 게임. 그 집중을 18홀 내내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끝까지 집중 집중 그것에 성공할 때 스코어도 아주 좋게 나온다. 집중의 연습. 집중 훈련. 그런데 그렇게 온 정신을 집중하고 나면 상쾌하다 할까 그 기분 또한 참으로 매력적이다. 나 혼자와의 싸움. 집중.



가는 곳곳에서 바다를 살짝살짝 보여주는 오션뷰 골프장. 아니 지금은 오션 비치 골프 &리조트. 경치가 참으로 아름답다. 잘생긴 청년이 우리 캐디인데 그런데 허리가 아픈가 보다. 자꾸 허리를 두들긴다. 그래서인지 빨리빨리 채를 가져다주지도 않고 그리고 그린 위에서 공도 꼭 한 번만 닦아준다. 어떤 땐 그 마저도 닦아주지 않는다. 많이 아픈가 보다. 그냥 내가 쓱 닦고 만다.



아, 여기 오션뷰 C.C. 도 포항 C.C. 만큼이나 꽃이 만발해있다. 봄은 역시 꽃의 계절이다. 알록달록 색색가지 꽃들이 온 곳에서 방실방실 웃고 있다.  활짝 아주 활짝.  그 앞에서 찡그릴 수 있으랴.


사모님이 지쳐간다. 그래도 끝까지 우리들의 파이팅 격려를 들으시며 마지막 홀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하신다. "난 정말 좋아. 이렇게 젊은 엄마들이 나랑 함께 공쳐서." 여전히 사모님은 그 말을 달고 사신다. 주변에 막 자랑한다 하시면서  너무 좋아하신다. 그리고 이미 60이 넘은 우리를 보고 자꾸 젊은 엄마들 젊은 엄마들 하신다. 하하 그래서 우리는 사모님 앞에서는 아주 젊은이가 된다.


비바람이 몰아쳐서 걱정 가득했던 우리의 나들이가 하룻밤 자고 나니 활짝 개어 파란 하늘과 두둥실 떠가는 하얀 구름 아래 화려한 꽃들 속에서 멋지게 진행되었다. 신나게 공을  치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해변가도 산책하고. 아,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든든한가.



멍게 향 가득한 그 유명한 포항물회를 먹는 것으로 우리의 모든 행사는 마무리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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