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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Jun 02. 2019


6시 이후엔 절대 안먹을래

차라리 결심을 말걸

"여보~ 나 꼬시지 마. 나 안 먹어."


그리고 나는 주방이 아닌 안방으로 향했다. 문을 꼭 닫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런 저녁시간은 꽤 괜찮다. 우리는 성가대를 끝내고 오는 길이다. 7시부터 9시까지 성가대 연습을 하고 온 우리, 이미 시간은 밤 10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저녁 어떡할까?"

"배고프지 않은데. 샌드위치 먹었잖아."

"그런 건 밥이 안돼."


그렇다. 성가대 연습 중 쉬는 시간에 커다란 샌드위치랑 탄산음료가 제공되어 우리는 그걸 다 먹었다. 그런데 샌드위치는 비싸기도 하고 크기도 하니까 반 씩 잘라 한 통의 것을 둘이 나눠먹게 했었다. 두 쪽이면 모를까 한 쪽 먹고는 영 배고프다는 남편은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저녁으로 무얼 먹을까 고민한다. 그런데 떡이고 라면이고 다른 것보다는 밥을 먹어야만 편안한 남편. 그러나 이제 집에 가서 밥을 해 먹는다면 밤 10시도 넘고 밥 다 먹으면 11시는 될 텐데 다음날 아침 일찍 교회 성가대에 서야 하는 우리로서는 무리 아닌가. 그래도 남편은 밥을 포기 못한다.


밥이 워낙 까다로운 남편은 밥상이 다 차려지고 바로 그때 새로 갓 지은 따끈한 밥이 대령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 집엔 아직도 전기밥솥이 없다. 전기밥솥 밥을 제일 싫어한다. 오죽하면 애들이 전기밥솥을 나의 생일선물로 했을까. 엄마 밥에서 해방되라고. 물론 금방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버렸지만. 그럼 밥을 어디에 하는가? 휘슬러 압력밥솥 밥 전용 납작한 거 있다. 거기에 꼭 15분 담근 쌀과 서리태 콩을 넣어 밥을 안치고 치지직 소리가 난 1분 후  불을 아주 약하게 줄여 3분 30초 후 불을 끄는 것이다. 게다가 매 끼니 2인분 차려내는 게 쉬울까? 매일 밥이 남고 찬밥은 취급 안 하고 남겼다 모라 하고 3분 30초 더 지난 것 같다 하고 밥이 질다 하고 되다 하고 너무 오래 둔 것 같다 하이고~ 그렇게 밥이 까다롭다면 직접 하셔! 어떻게 초까지 다투며 밥을 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매 끼니. 그래서 밥이 그에게 넘어갔고 어느 순간부터 밥만은 그가 담당이다. 공대생답게 정확히 자로 잰 듯 매 끼니 딱 2인분의 밥을 기가 막히게 같은 솜씨로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사방팔방에 밥은 내가 다한다고 소문내는 사람이다. 어쨌든


점심때 먹은 된장찌개도 있고 총각김치 깍두기 배추김치 오이소박이까지 줄줄이 밑반찬도 있겠다 그가 새로 따끈히 밥만 지어 준비된 반찬을 꺼내 먹기로 한다. 


"여보 나의 이 똥배 봐. 이제부터 6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안 먹을 래.  절대 나 꼬시지 마."


해놓고 나는 안방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덜그럭 덜그럭 그가 밥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나갈 필요는 없다. 밥은 그가 나보다 훨씬 과학적으로 잘하니까. 그런데 사실 밥 준비는 같이해야 한다. 그걸 살짝 피했는지도 모른다. 똥배 운운하며. 영악한 나. 


"여보~ 나 그냥 잘 까 봐"

"여보~ 나 6시 이후에는 안 먹기로 결심할래."


미안하니까 무언가 혼자 밥하게 하는 게 걸리니까 계속 여보~ 여보~ 불러대며 내가 방 안에 가만히 있는 이유를 있는 대로 갖다 붙인다. 그렇게 단 한 번도 나와보지 않고 있는데 그가 저녁 먹는 소리가 들린다. 그동안 나는 글을 썼다. 그대로 끝까지 나와보지 않고 그냥 침대로 갔다면 성공이었다. 6시 이후엔 아무것도 안 먹기. 밤에 안 먹어야 똥배가 들어갈 테니까. 그런데 일단 글 쓰기를 마친 나는 밖이 궁금도 하고 흑 나와보게 되었던 것이다. 솔솔 향기로운 밥 냄새 하며 그리고 밥상을 보니 갑자기 배가 고파지고. 먹어 안 먹어? 계량에 정확한 남편은 이미 밥은 1인분만 했을 테고. 그런데 밥상에 밥이 남아있다. 내가 분명 먹으러 나올 것이라 짐작하고 2인분을 했단다. 그리고 결심도 아랑곳없이 난 밥상으로 달려들었으니 


"여보 아주 조금만 딱 한 숟갈만 먹는 건 괜찮겠지?"


하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시작을 안 해야지 일단 발동이 걸리면 멈출 수가 없다. 결국 남편이 남긴 밥 한 알도 남김없이  너무너무 맛있게 다 먹어치웠다. 그리고 금방 후회한다. 아, 먹지 말걸. 6시 이후 먹지 말자 결심하니 더욱 나의 마음이 그런가 봐. 새벽에 일어난 지금 난 후회하고 있다. 아, 난 왜 그게 안될까. 왜 저녁에 안 먹으리라는 결심이 절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일까. 못 지키면 어때. 작심삼일이면 그때 또 결심하면 되지. 하는 마음도 품을 수가 없다. 작심삼일은커녕 작심 두 시간도 못 가니 말이다. 한심한 나. 


그리고 오늘 아침. 교회 가기 전, 또 아침식사로 갈등하고 있다. 어젯밤 가득 먹은 밥으로 배는 더부룩한데 여기서 왜  이런 생각이 들까? '아침은 꼭 먹어야 한다던데. 다이어트의 기본이 아침밥 먹는 거라던데. ' 


아침은 밥이 아니다. 쑥절편을 굽고 사과를 깎고 달걀을 반숙하고 토마토를 우유 넣고 갈아 놓는 것. 꽤 간단한 아침이지만 그래도 밥은 밥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남편의 아침을 차려놓고 나도 먹을까 말까? 난 또 고민하고 갈등한다. 그러나 아침은 먹어야지. 하하 식탁으로 간다. 그래! 할 수 없다. 이게 내 캐릭터다. 도대체 왜 배고플 때만 먹자. 요런 것도 지켜지지 않는 걸까. 배는 부른데 왜 자꾸 꾸역꾸역 먹는 것일까. 두려워서 체중계에서 멀어진지도 오래다. 몸무게가 꽤 많이 나갈 것만 같다. 그렇게 난 오늘도 아침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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