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뜰 Jun 22. 2019

슈퍼밴드와 TV보기

감동의 프로라도 두 시간 꼼짝없이 보고 나면



졸리다. 자야 한다. 아깝다. 두 시간은 꼬박 브런치에 밀린 글들을 읽고 댓글도 달고 또 내 글도 쓸 수 있었는데. 아깝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 나이 또래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윗 어딘가의 여자는 지겨워 지겨워 나의 삶이 너무 지겨워하는데 난 지겨울 새가 없다. 이렇게 시간이 모자라 졸린 것을 아까와할 정도로. 언젠가 새벽에 일어날 이유가 없어짐에 한탄했던 적이 있다. 무언가 시험공부라든가 항상 할 일이 있어서 새벽부터 일어나야만 했는데 결혼하고 애 키우던 어느 날 새벽에 잠이 깼는데 문득 제시간에 일어나 출근하는 남편 밥 차려주고 애들 학교 가는 거 봐주고 그냥 정해진 대로만 하면 되지 굳이 새벽부터 일어날 이유가 없음에 다시 잠자리에 누우며 얼마나 허망해했던가. 그런데 난 지금 새벽에 일어날 이유도 있고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려 잠을 늦게 잘 이유도 있다. 다름 아닌 바로바로 브런치 때문에. 브런치의 그야말로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남녀노소 그 모든 사람과 무언가 통하는 이야기를 나누는 이 기쁨이라니. 그런데 난 지금 왜 거기 폭 빠질 수 있는 귀한 2시간을 허비했느냐~




4명이 한 조 되어 공을 치고 있던 중이었다. 이때는 온갖 이야기가 다 나오는데 와ㅡ 정말 노래 잘하지 않아? 슈퍼밴드 봐? 그럼 그걸 어떻게 안 봐. 와 정말 대단해. 너무들 잘해. 무명의 가수였던 애들이 무대에서 노래를 하는데 아, 정말  감동 그 자체야. 그렇게 난리들이 났는데 그런데 난 아무 할 말이 없고 공감도 없다. 와이? 우리는 TV를 그리 많이 보지 않는다. 식사 시간에 밥상에 밥을 차려 은퇴한 남편과 둘이 TV 앞에 들고 와 꼭 그렇게 밥 먹을 때만 둘이 통하는 드라마를 TV 다시 보기에서 선택해 보는 것. 그게 전부다. 그러니 언제 예능프로까지 볼 새가 없으므로 그렇게 엄마들이 이구동성으로 TV 예능프로를 이야기할 때 나는 종종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그러나 속으로는 집에 가서 꼭 봐야지... 요케 맘먹는다. 그래서 프로 하는 날을 묻는다. 그들은 내게 몇 번이고 입력시켜주었다. 금요일 9시 JTBC 슈퍼밴드!!!




그러나 그건 그때뿐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오늘도 피곤한 여러 스케줄을 무사히 달성하며 밤이 깊었다. 문득 그래도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은 알아야지? 시계를 보니 9시 3분 전. 거실로 나간다. 여보, 우리가 그래도 9시 뉴스는 봐야겠지?  하여 TV를 틀었다. 항구니 방파 제니 인근이니 알았니 몰랐니 북한선에 대한 가득한 뉴스들. 재미없다. 하는 순간 반짝. 아, 그렇지. 여보 슈퍼밴드라고 꼭 보래! 엄마들이 난리 났어. 그런데 나만 꿀 먹은 벙어리였단 말이야. 해서 틀은 JTBC.  한창 결전이 진행 중이다. 심사평과 곡이 만들어지기까지. 그게 길어지니 남편은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우쒸. 나랑 같이 안 보고. 그런데 그는 그런 게 재미없나 보다. 그래도 난 꿋꿋이 TV 앞을 지킨다. 이번에 만나면 나도 이야기에 동참해야지 하는 생각도 있고. 한참을 더 지나서 몇 번 째팀인가 곡이 시작되는데. 와우. 바이올린을 자유자재로 켜고 물소리를 따러 물가로 가는 것 하며 무엇이고 할 수 있는 젊은이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보는데 아, 너무 멋지다. 아마추어라기보다는 모두 프로의 느낌으로 기가 막히게 멋진 무대들을 연출하고 있다. 고요한 음악은 고요한 대로 신나는 건 신나는 대로 아, 정말 잘한다. 너무 멋지다. 자신만만한 젊은이들이 너무 보기 좋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에 온 힘과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이 아, 너무 감동이다. 우리 때랑 많이 다르지만 그 흥은 같구나. 하, 정말 잘하네.




자기 방에 들어간 남편은 간간이 나와 재밌냐? 쓱 묻기만 하고 내가 아무리 감동이야, 정말 기가 막혀~ 해도 다시 자기 방으로 들어가 자기 책 읽기에 바쁘다. 난 결승팀 만들어지는 것까지, 9명 떨어지는 것까지 다 본다. 그런데 엉엉 언제나 떨어짐은 슬프고 안타깝다. 모두가 함께 하면 참 좋을 텐데 그럴 수는 없을 테니 누군가 떨어져야 하는데 저렇게 함께 음악을 만들다 홀로 얼마나 외로울까, 슬플까, 안타까울까. 그 떨어진 마음을 보듬어주고 싶다. 이거 별거 아니라고. 더 멋지게 성공할 수 있다고. 힘내라고!!! 아, 모두가 끝까지 함께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하 그렇게 엉엉거리다 다음 결선을 기대하게 하며 모든 프로가 마무리됨에 따라 나도 TV를 끈다.




그런데 TV라는 것은 참 이상하다. 아무리 좋은 프로라도 2시간을 헤벌레~ 오직 그것만 지켜보고 나면 무언가 바보가 된 느낌이다. 이렇게  감동의 프로인데도 말이다. 몸은 리클라이너 의자에 길게 쭉 뻗어 지상 최고의 안락한 포즈라도 2시간 꼼짝 않고 그 자세로 있다 보면 허리도 아프고 정신도 멍하고 온 곳이 쑤셔온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11시. 피로가 몰려오며 이젠 잠을 자야 될 시간, 그대로 침대로 가 팍 고꾸라지려니 너무 안타깝다.오늘 그동안 밀린 브런치 글을 읽고 쓰려던 계획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나 할 수 없다. 삶이란 언제나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것이다. 일단 쿨쿨 잠을 자자. 파이팅!!!



                                                                                                                      

매거진의 이전글 은퇴한 남편과 색소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