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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y 27. 2019

은퇴한 남편과 색소폰

취미생활을 함께~

땡볕 땡볕 지독한 햇빛이다. 공원 입구가 너무 밀려 남편은 나만 떨구고 저 먼 곳 주차할 빈 곳을 찾아 휑하니 떠나버린다. 와우~ 어마어마하게 커다라 남편의 테너 색소폰이 든 가방과 나의 알토 색소폰이 든 가방, 그리고 악보 가방. 무척 무거운 세 개의 짐을 양 손에 재주껏 나누어 들고 낑낑대며 땡볕 땡볕 무지막지한 땡볕 속을 걸어간다. 우리들의 색소폰 공연장을 향하여. 아~ 땡볕은 심하고 갈 길은 멀고 엉엉


그런데 사실 거의 언제나 이렇다. 내가 짐꾼. 왜냐하면 남편은 항상 주차를 하러 아주 먼 곳까지 가야만 하기에. 매주 모여서 연습하는 곳도 차가 붐벼 입구에 나만 내려놓고 간다. 결국 내가 짐을 다 옮긴다. 그런데 오늘 공연은 공원이다 보니 사람들이 무더위에 다 몰려온 듯하다.




난 은퇴한 남편과 색소폰을 분다. 대개 남자들만 북적거리는 이 곳에 난 용감하게 남편과 함께 참여하고 있다. 그 세월이 어느새  꽤 되어간다. 은퇴 후의 삶을 위해 악기 하나 정도 꼭 해두는 게 좋다 하여 함께 고른 게 색소폰이다. 와이? 바이올린이나 첼로 클라리넷 플륫 같은 악기는 학창 시절부터 전문적으로 해야 할 것 같고 색소폰은 무언가 우리 같은 은퇴한 사람들이 쉽게 적응하여 즐길 수 있는 것 같았으니까.    



헉 양귀비! 난 왜 이렇게 양귀비만 보면 사족을 못쓸까? 낑낑 짊어지고 오던 악기들을 잠시 내려놓고 꽃에 집중한다. 아~ 그리고 보니 연주장 가는 길, 너무너무 예쁘다. 꽃이 그야말로 천지빼깔이다. 하하



"나도 색소폰 불었는데.... "  의외로 그런 분들이 많다. 한 일 이년 하다가 장롱 속에 처박아두었노라고. 우리가 낑낑대며 악기를 옮길 때 마주치는 많은 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연주하는 곳에 들어가 매주 연습을 하다 보니 색소폰이 장록 속에 들어갈 여가가 없다.



헉. 공연장에 도착해보니 관중석에만  거대한 텐트가 쳐져있고 무대 위에는 아무 가리개가 없다. 작열하는 태양을 그대로 받아내고 있다 게다가 복장만 원색 티셔츠에 청바지 그렇게 정해졌지 선글라스를 가져와라 모자를 가져와라 도 없었다. 잠깐만 서 있어도 땀 뻘뻘 나는 무시무시한 태양열 아래 우리 모두는 서 있다. 마이크를 설치하고 의자를 가져다 놓고 보면대를 놓고... 연주를 위해 단원 모두 열심히 일한다. 쨍쨍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 아래서.


휘리링  겨우 보면대에 받쳐놓은 악보가 바람에 그대로 날아간다. 옆에 분이 노란 고무줄을 껴준다. 조심조심 악보를 고무줄에 고정시킨다. 넘길 때가 문제다. 이리저리 연구한다. 객석에 관중이 모여 온다.  빈 의자가 빽빽이 사람들로 가득 찬다. 오며 가며 빵빵 번쩍번쩍 색소폰들을 들고 설쳐대니 호기심 발동인가 보다. 어린이도 어른도 더 어른도 모두 모두 몰려온다.


관중이 많으면 흥이 난다. 휘이잉~ 또 거세게 바람이 인다. 드러머가 큰일 났다. 악보가 정신없이 날아간다. 누구 애인이나 가족 온 분 없습니까? 악보를 붙들고 넘겨줄 분이 필요해요~ 우리 가족 악보 볼 줄 모르는데.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바리톤 색소폰 케이스를 가져와라. 바람을 막자. 이런저런 대응책이 강구되고.



빠방~ 어쨌든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도 연주를 시작하니 공원에서 산책하던 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관중석으로 몰려든다. 지휘자는 땀을 뻘뻘 흘리고 가리개 없는 우리 머리 위에서는 그야말로 땡볕이 지글지글 내리쬐고 눈으로 손으로 행여 악보가 날아갈까 조마조마 그러면서 우리는 뿡뿡 빵빵 연주를 한다.



클래식 소품 메들리가 우리 첫곡이다. 흥겹고도 쉽고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오니 관중석에서 누군가 벌떡 일어나 덩실덩실 더덩실 멜로디따라 리듬 따라 흥겹게 몸을 흔든다. 급기야 무대 바로 앞까지 와서 청중을 리드하며 정말 기가 막히게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악보를 보면서 지휘자를 보면서 힐끗힐끗 그 중년의 아저씨를 보는데 정말 리듬 감각이 기가 막히다. 온몸이 리듬 따라 꼭 꼭 맞게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유명한 백댄서처럼 음악에 맞춰 절묘하게 움직인다.  



아리랑이며 울고 넘는 박달재며 사십여 명이 제 파트대로 불어대며 곡이 만들어질 때, 둥둥 두둥둥 신나게 드럼 소리가 곁들여질 때 문득 드는 황홀감. 내가 이 사람들 속에서! 청중이 아닌 연주자가 되어 있는 이 기분은 참 묘하다. 쿵쿵 쾅쾅 음악이 내 목소리 되어 멀리멀리 울려 퍼진다. 박수를 쳐대며 흥겹게 몸을 움직이는 관중과 함께 한다. 나의 색소폰 운지를 누르는 손가락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아니 어깨춤이 더덩실 그들처럼 나의 손가락들도 색소폰 위에서 춤을 춘다.



공원의 꽃잔치가 한창인 이 날, 휘이익 불어대는 바람,  쏟아져 내리는 햇빛,  휘~익 날아가 버리는 악보. 악천후속에서였지만 흥겨운 관중과 함께 그야말로 신명 나는 연주를 마친다. 꽃들이 방글방글 잘했어요~ 손을 흔든다.


악보 챙기랴, 보면대 챙기랴, 의자 챙기랴. 연주가 끝나고는 또 이리저리 손길이 바쁘다. 어느새 열정적이던 태양은 기울어 그 굉장한 기세를 꺾는다. 우리도 집으로 가는 발길을 서두른다. 이래저래 지루하지 못할 우리의 일상이다. 악기 하나 서방님과 함께 준비 해두길 참 잘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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