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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y 24. 2019

은퇴한 남편과 나무 키우기

작년에 실패하고 금년에 제대로



는 S를  후배라고 부다. 같은 학교를 나오지도 않았는데 왜 후배라고 부르냐 하면 나보다 두 살 어리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만났을까? 나는 작은 아들, S는 외동아들이 같은 학교를 다녔고 그때 학부모로 만난 우리는 함께 학교 일을 하면서 친해진 사이다. 아이들은 이미 학교를 졸업하고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열심히 일하고들 있지만 그때 애들이 고등학교 시절 학부모였던 우리들은 여전히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밥을 먹으며 우의를 다져가고 있다. 그중 한 명이 S이며 우린 함께 작은 땅을 하나 샀었다. 그때 그 시절 애들이 학교 다닐 때. 그 땅에 누군가 농사를 짓게 하며 일 년에 쌀 반가마씩 얻어먹기만 하고 내버려 두었었는데 나의 남편도 은퇴하고 S의 남편도 은퇴하자 반짝 드는 생각.



"우리 거기 나무 심자!"


즉각 실행에 옮겼고 우리는 보기 좋게 실패했고 포기하지 않았고 다시 시작했다. 요렇게.


https://brunch.co.kr/@heayoungchoi/188


그리고 오늘 주변 권유에 따라 처음으로 나무에 농약을 쳤다. 농약 상회에서 말해주는 대로 희석하여 등에 짊어지고 농부들 하듯이 쏴아 쏴아 벌레가 가득한 나무에 농약을 쳤다. 우린 그냥 나무만 심어놓으면 될 줄 알았다. 그래서 골라낸 나무들, 아주 쉽다는 나무들. 사과, 복숭아, 감, 대추, 자 그리고 음나무까지. 자랑스레 우리가 심은 나무들을 보여주자 나무 좀 심어 본 사람들의 조언이 빗발친다. 농약을 쳐야 돼. 이미 좀 늦었어. 조금 빨리 쳤어야 하는데. 등등. 우리는 천연 무공해 식품으로 먹을 건데... 했다가 된 통으로 야단만 맞고 농약을 사 온 것이다.


우리가 몰라도 한참 몰랐구나. 그래서 배 과수원 사과 과수원 포도 과수원 그렇게 농장들이 따로 있는 거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으니 농약이 나무 종류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약이 개발되어 모든 과일나무에 듣는다는 비범한 농약을 사 오게 되었다. 앗, 그런데 밭에 나가니 지난번 포클레인으로 갈아엎을 때 가녀린 자그마했던 쑥이 마치 무슨 덤불처럼 큼직큼직하게 무더기를 이루고 있다. 이런 걸 잘 아는 후배 S는



언니 이거 먼저 뜯자. 이걸로 쑥떡 해 먹으면 정말 맛있어. 절대 쑥은 아무거나 사 먹으면 안 돼. 어디서 딴 건 줄 알고. 여기 이 깨끗한 쑥을 뜯어가자고.


무당벌레가 곳곳에 있는 청정지역. 논두렁 물엔 청개구리가 뛰어다닌다. 그래서 농약 치기 전 우리는 재빨리 커다란 쑥 나무 하하 맞다 쑥 나무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크다. 사사사삭 윗부분만 똑똑 끊어 봉지에 담는다. 가녀린 처음 이 세상 땅에 나오는 앳된 쑥을 캘 때와 달리 이 커다란 쑥은 그냥 쓱쓱쓱쓱 재빨리 봉지가 채워진다. 어린 쑥 캐는 데 젬병이었던 나도 재빨리 봉지가 채워진다. 음하하하



그리고 남편들이 농약을 쏴아 쏴아 뿌리는 동안 나랑 S는 거대하게 자란 풀을 뽑기로 한다. 사사사삭 낫으로 베고 호미로 팍팍 잡초 끝을 베어 내고. 농부들은 새벽에 일한다는데 아침 8시에 시작한 우리는 너무 늦었나 보다. 해님의 위력이 대단하다. 헉헉 조금만 일해도 얼마나 땀이 비 오듯 흐르는지 모른다. 아~ 힘들어.



그래도 오마 낫, 사과가 열렸다. 그런데 주변에 벌레가 많다. 진드기란다. 그걸 없애주어야 사과가 탐스럽게 익어간단다. 어쨌거나 우리가 심은 나무에 열매가 열리다니. 하하 만져보고 감상하고 보고 또 보고. 아, 나무 주변에 잡초는 정말 무시무시하다. 절대 뿌리가 손으로 뽑아서는 빼낼 수가 없다. 내 이놈들을 발본색원하리라 하면서 호미로 팍팍 그 뿌리를 끊어내느라 안간힘을 쓰는 나를 보며 이런데 능숙한 S가 혀를 끌끌 찬다.


언니, 그렇게 힘 뺄 필요 없어. 내가 낫으로 삭삭 베어 갈 테니까 그렇게 뿌리 깊은 건 그냥 놔두어. 베고 또 베고 자라면 베고 그러면 돼. 살살 손으로 뽑히는 것만 뽑아요.


그러나 한번 칼을 뽑았는데 그럴 순 없지. 난 있는 힘껏 뿌리를 뽑아낸다. 땅강아지가 놀라서 도망간다. 풍뎅이 같은 것도 보인다. 손가락만 한 커다란 벌레들이 땅속에서 혼비백산 흩어진다. 하이고 무서워라. 나는 호미를 들었고 능숙한 S는 낫을 들었다. 삭삭삭삭 S의 손놀림은 대단하다. 난 뿌리 하나에 집착하고 있다. 진도가 훨씬 뒤처진다. 그래도! 드디어 뿌리를 캐냈다. 우아 어쩜 이렇게 단단할까? 그러니까 잡초지 언니.



앗, 여기 또 열매! 복숭아인가? 대추인가? 복숭아가 이렇게 맨질맨질? 아, 예쁘다. 새빨간 색이 너무 예쁘다. 힘든 일에도 불구하고 농부의 희열이 바로 이런 것일까? 반질반질 빛나는 잎 하며 새빨간 열매 하며 잎이 무성한 것 하며 그 모두가 그냥 막대기 같은 것 푹 박아놓은 얼마 전에 비하면 얼마나 감개무량인가.



농부가 되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풀을 뽑았다. 어느새 1시 반이 되어있다. 이 땡볕에 절대 전문 농부들은 일하지 않는단다. 언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흉볼 거야. 이 땡볕에 일한다고. S는 농부들의 세계를 이야기해준다. 해뜨기 전 아주 이른 새벽일을 시작하고 땡볕 되기 전에 끝낸다고. 다음엔 좀 더 서둘러 와야겠다. 그래도 이번엔 실패 아닌 것 같다.



모든 것 끝내고 식당에서 마시는 시원한 맥주 첫 잔. 캬~ 차가운 맥주가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하하. 무척 힘이 들지만 무언가 뿌듯한 이 마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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