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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y 11. 2019

은퇴한 남편의 취미생활

남편 친구들만 모여있는 그곳에 씩씩하게 함께 참여~


"같이 갈래?"


남편의 요구에 나의 머리는 휙휙 재빨리 돌아간다. 갈까 말까? 아내들이 모이지 않는다는데 나만 홀로 괜찮을까? 에서부터 그가 없는 금요일 밤의 자유를 누려보고픈 맘까지. 아~ 갈까? 말까? 모처럼 음악 속에 푹 빠져보고프기도 하고 어떤 아름다운 소리가 날까 궁금하기도 하고 그러나 남자들만 모이는 그곳에 홀로 참석하는 게 쑥스럽기도 하고 나만의 자유시간을 갖고 싶기도 하고 그러나 음악에 풍덩 빠지고도 싶고... 하이고


무엇이냐. 남편에게는 음악을 즐기는 친구들이 있다. 가끔 부부가 모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남자들끼리 모인다. 모여서 음악 듣고 스피커가 무엇이고 엠프가 무엇이고 저역이 어떻고 고역이 어떻고 케이블이 어떻고 분명 음악을 듣고 있는 그들인데 정작 음악이야기보다는 오디오 기계 이야기에 더 열을 올리는 이상한 사람들. 어쨌거나 그 사이에서 나는 주야장천 그들이 틀어주는 이런저런 음악을 마냥 듣는다. 기계 이야기는 흥미도 없고 들어도 모른다. 그러므로 케이블을 이리 꼽고 저리 꼽고 바쁜 그들 사이에서 꼼짝 않고 나는 음악만을 듣는다. 이 아름다운 소리를 이렇게 마냥~ 그것에 행복해하면서. 


즐겨하던 그들이 많이 뜸해졌다. 이젠 나이가 들어서인가보다. 열정이 사라져서일까 옛날엔 번쩍번쩍 들어 올리며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고 하던 스피커의 바꿈도 사라지고 모여서 듣는 음악 시간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러던 차에 새로 알게 된 한 분이 함께 음악을 듣자 했는가 보다. 


낭만이 현실을 이겼다. 하하 음악 듣고픈 맘이 혼자의 자유시간 맘껏 책 읽고 글 쓸 수 있는 그 시간을 이겼다. 그래서 난 크게 답한다. 오케이 가잣!!! 


의사 선생님이란다. 음악시설이 사무실에 있단다. 빌딩 전체가 거의 병원인 곳이라 늦은 밤 거의 캄캄한 빌딩에 우리는 들어선다. 이미 셔터가 내려진 그곳으로. 캄캄한 곳에 빠꼼히 새어 나오는 불빛. 그곳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의사 선생님. 제2진료실로 쓰려던 곳을 아파트 층간 소음 때문이기도 하고 당신의 귀가 점점 안 좋아지는지 자꾸 크게 틀으니 소리 좀 줄이라는 아내의 잔소리가 싫어 아예 기기를 모두 사무실로 옮겼단다. 꽝꽝!!! 불 꺼진 캄캄한 병원 건물에서 밤새도록 맘껏 들을 수 있다면서. 


안으로 들어가니 아주 작은 방에 음악기기가 가득이다. 그리고 낡은 안락의자 하나. 짬이 나면 이 곳에서 이렇게 혼자 음악을 즐기는 가보다. 사람들 앉으라고 진료 때 쓰는 듯한 동그란 의자들을 후다닥 어디선가 가져다 놓으며 앉으라 하신다. 그리고 이제 음악 감상의 시작이다. 물론 음악이 시작되고 얼만 안 있어 남편과 그 친구들은 케이블이 무엇이냐 스피커가 무엇이냐 이것저것 기기들을 묻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만지고에 빠져들었지만 난 계속 틀어지는 음악만을 맘껏  감상한다. 아, 정말 소리 좋다. 마치 연주하는 그곳에 지금 내가 가 있는 듯 섬세하게 들려오는 현을 뜯는 소리. 댕~ 끝없이 이어지는  피아노 소리의 여운. 

캬~ 이 곡이 이들 손에 선곡되다니. 까마득한 옛날 이대 앞 카페 그때로서는 획기적인 싸이폰으로 내려주는 커피가 있고 음악 신청을 받던 특별한 그곳에서 친구랑 나는 항상 이 곡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 을 신청하며  빰빠~ 빠 라라라 경쾌하고도 힘차게 시작하는 그 멜로디를 너무나 사랑했다. 힘들고 지쳐가던 우리의 청춘에 번쩍~ 눈이 떠지도록 힘을 팍팍 실어줬다고나 할까. 


음악은 이런 맛이 있다. 그 곡을 즐겨 듣던 바로 그 당시로 나를 마구 데려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마냥 친구와의 추억에 젖어있을 때 남자들은 여전히 오디오 이야기로 바쁘다. 고역이 어떻고 저역이 어떻고 파워가 어떻고... 난 흥미도 없고 관심도 없고 지식도 없다. 그냥 조용히 틀어진 음악을 듣기만 한다. 아, 소리 정말 좋다. 

이것저것 장르를 넘나들며 음악은 바뀌어 간다. LP 판에서 CD로 또 최근 유행이라는 네트워크 음악까지. 그래서 BTS의 최신곡까지 이 멋진 기기들을 통해 맛본다. 물론 나의 "혹시 BTS 곡을 들을 수도 있나요?" 조심스러운 요구에 흔쾌히 응해준 의사 선생님 덕이지만. 하하 남편을 비롯한 친구분들 여기서 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BTS 곡을 접하며 "와 좋네~" 감탄한다. 하하


은퇴한 남편과 함께 하는 24시간, 취미생활을 공유하며 함께 즐기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새 인생을 잘 보내는 한 방법 같다. 함께 가길 참 잘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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