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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Jun 23. 2019

왜 그렇게 살이 쪘어요?

그 말 한마디에



모처럼 산행이다. 친하게 지내는 세 부부가 9시에 우리 집 앞에 모여 함께 차를 타고 산으로 간다.  김밥에 토마토에 참외에 쵸코렛에 양갱에 에이스에 막걸리까지 많은 걸 산행 책임자가 준비한다. 의외로 우리도 준비할 게 많다. 모자에 마스크에 손수건에 거울에 휴지에 산행 방석에 등산복에 등산화에 배낭에 지팡이까지. 아침밥을 두둑이 먹고 나가기로 한 우리는 재첩국 한 사발에 부추를 동동 띄워 팍팍 퍼 먹고 우리 담당인 커피, 원두커피와 믹스커피까지 마련하느라 시간이 간당간당 마구 서두른다. 그래도 커피만은 정성껏! 원두커피를 내리고 남편들을 위해 믹스커피도 준비한다. 우리 애들 어릴 때 소풍 가면 엄마들을 위해 마련하던 대로 냄비에 물을 팔팔 끓인 후에 믹스 커피를 넣고 잘 저은 후 그걸 다시 끓여 정말 뜨겁게 한 후  팔팔 끓는 물을 부어 덥힌 보온병에 담는 작업을 너무 정성껏 하다 보니 살짝 늦는다.



등산은 골프와는 또 다른 맛이다. 푸르름이 우거진 산속을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고. 아무 생각 없이 발 끝만을 보며 힘을 잘 조절한다. 정상까지 가야 하니까. 커다란 바위가 나타나면 앉아 가져온 먹거리를 하나씩 풀어 먹으며 먹다 쉬다 가다를 반복한다. 푸아~ 숨도 크게 내쉰다. 요가에서 배운 복식호흡을 살짝 해본다. 흐읍~ 숨을 들이마실 때 똥배를 앞으로 불룩하게 내밀고,  흐욱~ 숨을 내쉴 때 똥배가 찰싹 등에 붙도록 들이밀면서 열심히 올라간다. 정상까지 힘들게 그러나 즐겁게 올라갔다 거의 다 내려올 즈음일 게다.


왜 그렇게 살이 쪘어요?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헉, 내가? 함께 산행한 세 부부 중 나보다 6살쯤 어린 그녀가 나를 보며 말한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하긴 옷이 좀 꽉 끼기는 해. 살이 쪘다는 게 팩트예요. 울퉁불퉁 심각해요. 아, 그래? 신경 써야겠구나. 했지만 엉엉, 그때부터 나의 기분은 엉망이 된다. 그런가? 정말 그렇게 많이 살이 쪘는가? 어떡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나를 사랑하기. 과연 그게 가능할까? 상쾌한 산행을 하고도 마음은 엉망진창. 그리고 보니 나는 요즘 무척 뚱뚱해진 것 같다. 흘낏흘낏 도로에 주차한 자동차들의 새카만 창에 비춰보니 그야말로 울퉁불퉁 매우 살이 찌고 아주 못나 보인다. 나 자신은 아침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습이겠지만, 그 마음은 천지차이다. 누군가의 말에 의해 또는 길가의 거울에 의해 나의 마음은 오르락내리락한다. 정말 바보처럼, 비치는 모습이 예쁘지 않을 때는 팍 기가 죽는다. 무언가 예뻐 보일 때는 기분이 하늘을 날 듯하고 꽤 잘난 여자 같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변한 게 아니라 거울이 어떤 것은 예뻐 보이고 어떤 것은 못나 보인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렇게 보이는 데 따라 기분이 좌우되고, 또 그냥 툭 뱉는 상대방의 말 하나에 심하게 좌절되기도 한다. 정말 그럴 필요 없는데 아직도 나는 그렇다.

게다가 이제는 나이도 들어 웬만해선 이뻐 보이지 않는다. 그때마다 그럼 기가 팍팍 죽을 것인가? 기가 죽는 것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학과 자포자기에 들어간다. 촌음을 아껴가며 무언가 생산적인 것으로 바쁘던 나는 이런 상태에 빠지면 책이고 뭐고 읽히지도 않고 써지지도 않는다. 상대방이 무심코 던질 수도 있는 그 한마디에 나의 마음은 아주 크게 반응한다. 왜 아직 그럴까? 좀 삶의 여러 현상에 느긋하게 대처할 수는 없을까? 분명 그런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님 간헐적 단식을 한다고 종종 굶는 훈련을 하여 나는 밥을 보면 많이 먹게 되는 것일까? 간헐적 단식은 잘못하면 요요현상으로 더욱 살이 찌게 된다는 그런 것일까? 본래 나는 다이어트니 이런 거 전혀 생각 않고 나의 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간헐적 다이어트 입네 하고 함부로 16시간 굶기를 자꾸 하니 밥 먹을 때 실컷 먹어야지 하는 본능이 나타나는 걸까?  요즘 들어 난 부쩍 과식을 한다. 헉헉 숨쉬기 조차 힘들 정도로 가득가득 뱃속에 먹거리를 채워 넣는 미련함이여. 아, 싫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과연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 살이 찐다고, 나이가 든다고, 그렇게 난 의기소침해야만 할까? 이참에 의기소침 사전이나 찾아보자.


 기운

 꺼질

잠길


기운이 없어지고 풀이 죽은 상태.


그러나 점점 자신감이 없어지는 것만은 사실이다. 엉엉



자, 어떻게 할 것인가? 나의 의기소침은 이상한 데로 빠진다. 즐겨보지 않던 TV를 켜놓고 쏘파에 누워 그냥 하염없이 본다. 내가 아까워하는 시간이 휙휙 흘러간다. 혼자 막 쓸모없는 인간으로 만들어놓고 나는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야. 그렇게 자학한다. 멍청하게 시간만 막 흘러가게 한다. 머리도 띵해진다. 무언가 글을 쓰고 또 읽고 해야지, 책을 봐야지 하던 건전한 생각은 어디로 다 사라지고 별 볼일 없는 인간 되어 멍청해진다. 머리도 안 돌아간다. 참 억울하지 아니한가. 그 멋진 산행을 하고도 그냥 무심코 내뱉은 상대방의 한마디에 이렇게 자신을 엉망으로 만든단 말인가. 왜? 나의 삶인데 왜?


뚱뚱? 내가 그리 뚱뚱한가? 요즘 무얼 많이 먹어 조금 똥배가 나왔다치자. 마침 좀 끼는 옷을 입어 울퉁불퉁했다 치자. 그래서 뭐? 옛날에 그런 말이 유행한 적 있다. "그래서 뭐? 네가 나 뚱뚱해지는데 보태준 거 있어?" 자신만만하게 내뱉던 그런 말을 부러워한 적 있다. 난 그런 식의 말을 못 한다. 실제 내 키에 그렇게 뚱뚱한 것도 아니다. 옛날처럼 똥배가 하나도 없어 쏙 들어가면 좋겠다 하는 정도지 그렇게 비만도 아닌데 난 TV에 나오는 모델을 꿈꾸는가. 그렇게 날씬해지려 애쓰는가? 너무 자학할 필요 없다. 그래도 많이 마르면 날씬하고 예쁜 것은 사실이다. 여자는 일단 날씬하고 볼 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흉하게 뚱뚱한 건 아니다. 그런데 왜 자학을 못해 난리인가.

 


왜 그렇게 살이 쪘어요?


그 말을 한 그녀는 지금 그 말한 것조차 잊었을 게다. 그런데 왜 난 그 말에 충격을 받고 이 난리냐 말이다. 팩트. 내가 살찐 게 팩트란다. 아,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런데 잘 생각해보자. 뚱뚱해서 아니 똥배가 좀 나오고 조금 통통하다 해서 그게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가? 그때 미국 여행 때 루레이 동굴에서 우리를 안내하던  허벅지가 정말 뚱뚱했던 그녀. 그러나 얼마나 자신만만하던가. 그 자신만만은 그녀의 뚱뚱한 몸 자체도 매우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그렇다. 문제는 나의 자신감이다.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나의 삶의 태도가 중요한 거다. 문득 내가 그런 말을 해주던 때가 생각난다. 교보문고에서였다. 화장실 손을 닦는 곳에서 예쁘게 화장을 한 여고생 정도밖에 안돼 보이는 한 어린 소녀가 거울을 보고 머리를 묶었다 풀었다 정신없었다.  사람도 꽤 많았었는데 대뜸 나에게 묻는 게 아닌가. 머리 묶는 게 예뻐요, 푸는 게 예뻐요?  남자 친구 만나러 가거든요. 하하 너무 귀여운 그녀. 그런데 내가 보기엔 어떻게 해도 참 예뻤다. 내게 진지하게 묻는 그녀에게 진지하게 대답한다.  사실 머리 묶고 푸는 거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묶어도 풀어도 정말 예뻐요. 참 예쁘니까 그건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 남자 친구와의 대화에 집중하도록 해요. 하하 나도 참, 어떻게 그런 대답을 했을까? 아니나 다를까 별로 자기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보다. 그러니까 묶을까요 풀까요? 하하 그녀는 그 답만을 원했다. 아,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묶고 풀고 가 아니다. 얼마나 남자 친구와의 대화에 집중하여 서로 잘 통하게 되느냐 일 텐데.


그런 대답까지도 했던 내가 지금 도대체 웬 바보 같은 짓이란 말이냐. 뚱뚱? 그게 뭐 어때서? 아니 그건 아니야. 그래 몸무게에 신경은 써야 해. 그러나 그것이 주가 되어서는 안 돼. 배가 고프면 먹는 거고. 아니, 밤에는 먹지 말도록 하자. 아니 난 언제고 먹을 수 있다. 내가 원하면 먹는다. 그런데 조금씩 한 번에 조금씩 먹자. 그리고 속이 거북하니 밤 되도록이면 7시 이후에는 먹지 않도록 노력하자.  그래 단순히 그렇게 정해놓자. 그리고 절대로 누가 뚱뚱하다 라거나 오늘 매우 피곤해 보이네요 라거나 오늘 안 좋아 보여요 라고 하더라도 그런 말에 충격받지 말자. 그냥 그러려니 하자.



다만 기억할 것은 나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그런 류의 말은 하지 말자. 설령 오랜만에 보는 누군가가 놀랄 정도로 살이 쪘다할지라도 절대 이 말 만은 하지 말자.


왜 그렇게 살이 쪘어요?


그래. 힘을 주는 말을 하며 살기에도 짧은 인생이다. 좋은 말만 하도록 노력하자. 나 스스로도 상처 받을 필요 없다. 모질게 마음먹지 말자. 그냥 부드럽게 밤에는 되도록 안 먹고 매 끼니 과식 않기.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 자신 있게 집중하기. 그리고 그 어떤 일이 생겨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기. 그래, 난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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