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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Aug 24. 2022

따뜻한 착각

난 그걸 '따뜻한 착각'이라고 말하고 싶다. 착각이었지만 받는 그들도 주는 우리도 너무 행복했으니까. 사과로 주고받은 마음이다. 자, 무슨 일이냐.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후배 S부부와 함께 밭에 가서 풀을 베기로 했다. 날이 더우면 일을 못하니까 새벽 5시에 각자의 집에서 출발한다. S도 나도 이런 날은 마치 소풍 가는 듯 먹거리를 싸간다. 그녀는 그녀 특유의 새로 갓 지은 밥에 참기름과 깨소금으로 버무려 특별한 차돌김에 돌돌 말아 열무김치와 함께 먹는 김밥. 나는 또 내 방식의 김밥. 일을 잘 못하는 나는 그 김밥을 싸기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나 준비한다. 밥을 새로 해 식초 설탕 소금에 버무려 초밥 바탕을 만들고 김밥 김을 길게 반으로 잘라 밥 깔고 깻잎 깔고 단무지 스팸 피망 달걀 우엉조림을 넣어 돌돌 마는 꼬마김밥. 썰지 않아 김밥 터질 일도 없고 먹기 좋고 싸기 좋고 난 언제나 꼬마김밥을 만든다. 그리고 각 팀에서 한 병씩 살짝 얼려오는 생막걸리와 과일 그리고 커피. 


이제 해가 짧아져 새벽 5시는 아주 캄캄하다. 그래도 40분은 가야 하니까 우린 한여름에 했듯이 그때 출발하기로 한다. 밭에 도착하니 막 밝아오기 시작한다. 이렇게 시원해야 일을 할 수 있다. 오랜만에 왔더니 완전 정글이다. 그래도 찬찬히 나랑 나의 남편, S랑 S남편이 팔을 걷어붙이고 낫으로 베기 시작하니 순식간에 우리 밭이 모습을 드러낸다. 궁둥이엔 하나같이 동그랗고 빨간 궁둥이 의자가 매달려 있다. 다리에 끼워 궁둥이까지 올리는 이 의자는 참으로 신기하고 편하여 밭일하면서 딱이다. 그런 걸 어찌 달고 일하냐고 한사코 마다하던 남편들도 이젠 그 매력을 알고 손수 궁둥이에 매달고 일한다. 쉭! 쉭! 마치 골프채를 휘두르듯 온 몸에 힘을 빼고 임팩트 순간에만 힘을 주며 낫질을 한다. 풀이 아닌 나무 같은 거대한 잡초가 순식간에 우르르 무너진다. 그게 얼마나 통쾌한지 모른다. 


주변의 농장 전문가들이 예초기를 사라지만 드르르륵 그 기계 사용이 서툰 우리는 겁이나 아직은 직접 낫을 쥐고 풀을 베어나가고 있다. 네 명의 손은 무섭다. 그렇게 엉망이던 밭이 서서히 모양을 갖추어가니 말이다. 손에 물집이 잡힐 지경이 되고 해님도 밝아오니 우린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워낙 일찍 왔으니 그래 봤자 아침 10시가 되었을 뿐이다. 


우리의 디저트로 빨갛게 익은 사과를 먹기로 한다. 남편이 잘 익은 것들로 따주어 내가 팔에 안고 우리 밭 바로 위에 있는 집에 가 닦아오기로 한다. 어느 날 문득 그 예쁜 전원주택이 생겼다. 집 모습과는 달리 자글자글 주름진 할머니가 홀로 살고 계셨다. 우리 밭엔 아직 컨테이너 쉼칸도 없고 수도도 없어 가끔 손을 닦으려면 수돗물 콸콸 나오는 그 할머니 댁의 마당 수도를 이용한다. 위아래 있다 보니 할머니와 친해져 그 정도는 양해해주시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할머니 95세시란다. 세상에 주름이 자글자글~ 할머니구나 했지만 그렇게 연세가 많으실 줄이야. 홀로 마당에 온갖 것을 심는 것은 물론 저 아래 밭농사까지 하고 계신다. 주름이 있고 얼굴이 까말 뿐이지 95세신데 그렇게 정정하실 수가 없다. 귀는 약간 안들리시는 것 같다. 아주 크게 말해야 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주 잘생긴 젊은 남자가 보이기 시작한다. 할머니랑 이야기해보니 막내아들인데 이혼하고 와서 같이 산다고 한다. 지난번 밭일 때 낫질을 하다 난 얼굴을 거대한 잡초에 딱 맞아 상처가 났고 아무 의약품이 없던 나는 무조건 그 집으로 달려갔다. 마침 그 아들이 있었고 내 얼굴에 소독약을 뿌려주어 큰 위기를 면했다. 그래서 잘 알고 있다. 


내가 그 집으로 새빨간 사과를 닦으러 가던 중에 그 아들이 밖에 볼 일이 있어 나가는 듯 외출복 차림으로 나랑 문 앞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약까지 뿌려주었던 분이니 난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있는 대로 활짝 웃으며 "안녕하세요~" 반가움에 소리쳤다. 이 분 역시 정말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는데 앗, 나의 사과를 보며 "아이 뭐 이런 걸 다~" 하면서 정말 맛있게 생겼다며 손으로 받으려는 게 아닌가. 앗 앗 앗. 


"네. 금년 첫 수확이어요. 맛있겠죠?"


얼떨결에 나도 그에 맞는 대답을 하고 사과를 다 드린다. 외출하려던 그분은 "엄마~" 하면서 사과를 들고 안으로 들어간다. 터덜터덜 밖으로 나오니 우리 팀이 보면서 웃는다. 그거 다 드렸어? 그렇지. 얼마든지 착각할 수 있지. 그렇게 한아름 안고 가는데 당연히 주는 걸로 알았겠지. 하하 잘했어요 잘했어. 


사과나무의 열매가 아직 완전히 다 익은 게 아니기에 알맞게 익은 것들은 다 그 집으로 간 셈이 되었다. 우리가 디저트로 맛있게 맛보려던 것들이었는데. 남편이 다시 나무에서 사과를 따서 준다. 새들이 쪼아 먹어 한쪽이 망가졌지만 아주 새빨간 것들로. 그 아드님은 밝게 웃으며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차를 타고 사라졌다. 한아름까지는 아니지만 새가 쪼아 먹은 그러나 새빨간 사과를 대여섯 개 들고 나는 다시 닦으러 그 집으로 향했다. 


집 안에 계시던 할머니가 이번엔 현관문 앞에 나와 밝은 햇살 아래 무언가를 쫘악 펼쳐놓고 다듬고 계시는 게 아닌가. 우리가 드나드는 문은 집 끄트머리에 붙어있어 내가 소리치지 않는 한 할머니는 나를 보기 힘들다. 할머니를 보니 다시 반가움에 잘 안 들리는 귀를 향해 "할머니이~ 안녕하세요~" 소리친다. 내가 오시라고 부르는 걸로 아셨을까? 할머니 그대로 일어나 내게로 재빨리 다가오신다. 앗. 나의 손엔 또 사과가 들려있다. 


"이거 새가 먹은 여기만 잘라내고 먹으면 아주 맛있어."

 

하면서 손으로 나의 사과를 집으시는 게 아닌가. 앗 앗 앗. 분명히 아드님께 받으셨을 텐데 사과를 들고 할머니를 부르니 또 사과를 드리려는 걸로 아셨는가 보다. 하이고. "네. 네. 네. 맛있을 거예요. 맛있게 드세요." 그렇게 할머니께 다시 사과를 몽땅 드리고 문을 나선다. 


하하 푸하하하 모두들 웃음으로 나를 맞는다. 남편이 아직 덜 익은 파란 사과랑 새가 먹은 거 몇 개를 더 따서 준다. 이젠 할머니께 인사하지 않고 슬그머니 수도로 가 사과를 닦아온다. 하하 그렇게 우린 커다란 나무 아래 돗자리를 펴고 김밥이며 막걸리며 싸온 것들을 먹으며 나의 에피소드로 배꼽을 쥐고 깔깔 푸하하하 웃음을 쏟아낸다. 우리가 미리 드리려 하지 못한 것을 죄송해하면서 그건 그럴 수밖에 없었다로 결론지었다. 다음 주에 와야 사과가 모두 빨갛게 익을 것 같다. 비록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아드님도 너무 좋아하고 할머니도 너무 좋아하신다. 하하 우리도 사과는 제일 맛있는 걸 못 먹었지만 기분이 매우 좋다. 그러니 '따뜻한 착각'이라 할 수 있겠다.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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