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여라.

by 꽃뜰

아, 미안하여라. 우린 정말 미안했다. 젖이 탱탱 불은 강아지가 우리 앞에 나타나 지독히도 간절히 먹을 것을 원하는데 마지막 18홀을 딱 두 홀 남겨둔 인코스 7번 홀이었기에 우리에겐 먹을 게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 과자라도 가져올 걸. 그 흔한 과자 한 조각이 없네.
우리 먹을 거 하나도 안 남았나? 아, 어떡해.
그러게. 미안해서 어쩌나.


하염없이 우리를 바라보는데 탱탱 불은 젖을 보니 임산부가 틀림없다. 배가 많이 고픈가 본데 어쩌나. 마침 A가 가져와 나눠준 샤인 머스켓이 몇 알 남았다. 그거라도 휙 던져준다. 아, 그런데 그 아까운 샤인 머스켓을 주었는데 그건 흥! 거들떠도 안 본다. 그런 건 안 먹는가 보다. 과자나 빵이나 떡이나 그런 게 있으면 좋을 텐데 우린 이미 다 먹어치운 상태다. 떡도 있고 빵도 있고 삶은 달걀도 있었는데. 그래도 항상 가방 속에는 과자라든가 쵸코렛이 든가 가 있었는데 오늘따라 정말 아무것도 없다. 아, 미안해. 다음 카트에 부탁해보렴.


어떻게 골프장에 강아지가 있을까? 먹을 걸 못 주는 게 미안하긴 하지만 카트 앞에 떡 버티고 있는 게 나랑 A는 무섭다.


해코지는 안 할 거예요.


B랑 C는 아무렇지 않게 나가 공을 치는데 나랑 A는 강아지가 지키고 있는 카트에서 나가는 거 조차 못하겠다.


B야, 우리 드라이버 좀 꺼내 줘.


나랑 A는 강아지가 지키고 있는 카트 뒤쪽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씩씩한 B에게 채를 꺼내 달라한다. 그리고 강아지를 유인해달라 하여 겨우 카트에서 발을 뗀다. 강아지 보랴 목표지점 보랴 정신없는 가운데 드라이브 샷을 하고 카트로 돌아오려니 여전히 그 강아지는 카트를 지키고 있다. 씩씩한 B가 카트를 운전한다. 나랑 A는 카트로 가는 걸 포기하고 앞쪽으로 뛰어가며


빨리 이쪽으로 와~


조그맣게 소리친다. 아이고 무서워. 강아지는 따라오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있다. 그리고 쎄컨 샷 하면서 보니 뒤 카트에 바로 우리에게 했던 것처럼 카트 앞을 지키고 있다. 먹을 걸 달라는 표정을 하고 있겠지? 제발 거기에는 먹을 게 좀 많이 남아있으면 좋겠다.


C가 이야기한다. 이 홀에만 오면 강아지들이 있다고. 사람들이 일부러 과자 빵 같은 걸 가져다주니까 그걸 바라고 저렇게 카트 앞에 있는 거라고. 어느새 습관이 들은 거라고. 그러나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는 건 아니니까 골프장에서도 놔두는 것 같다고. B랑 C는 아무렇지 않은데 나랑 A는 무서운 게 사실이다. 그래도 무엇이건 그 강아지들이 배부르게 많이 먹으면 좋겠다.


(사진: 꽃 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