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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Jul 09. 2019

독후감 어쩌면 좋아

사노 요코

성격은 많이 달라 보이지만 왠지 사노 요코라는 동화작가도 생각났어요. 

브런치에 올린 내 글에 올라온 욜롱이님의 댓글이다. 그런데 헉!  나는 사노 요코가 누군지 모른다. 그래서 마침 도서관에 있던 나는 재빨리 가서 검색한다. 사노 요코. 음 동화작가구나. 그의 많은 책들은 대부분 어린이 열람실에 있다. 아하 종합열람실에도 있네. 일단 이 곳에 있는 사노 요코 책을 몽땅 가져와 본다. 하하




그중 내손에 딱 걸린 어쩌면 좋아 그 첫 이야기. 치매의 88세 엄마와 63세 그녀의 이야기다. 못생긴 게 싫어서 거울 안 보았는데 이제 보니 못생긴 거는 문제도 아니다.  나이가 드니 원판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 원판 파괴의 현장을 보고 싶어 요즘은 거울을 본다는 그녀. 60이나 80이나 어린 그녀에게는 그냥 모두 똑같이 태어날 때부터 할머니인 것 같았는데 어느새 그 나이가 되어버렸다. 억울하다. 


그런 내용의 이야기가 술술술 참 잘 읽힌다. 어떻게 이렇게 꼭 같을 수가. 내가 지금 우리 세는 나이로 63이고 나의 엄마가 87이다. 내가 엄마랑 이야기하듯 그녀와 엄마의 이야기를 순식간에 읽는다. 다만 그녀의 엄마는 치매가 아주 심하고 우리 엄마는 아직 건강하다. 


"거짓말, 이게 나야?" 하고 흠칫하는 순간을 제외하고, 혼자 있을 때 나는 도대체 몇 살일까.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면 세계는 어릴 때와 다름없이 나와 함께 있다. 예순 살이든 네 살이든 '내'가 하늘을 보고 있을 뿐이다. 별안간 거미집이 얼굴에 달라붙었을 때 놀라는 마음은 일곱 살 때나 마흔 살 때나 지금이나 다 같아서 그냥 내가 놀라는 것이다. 


글이 참 재밌다. 그리고 비유들이 신선하다. 나무들은 앙상한 할머니들이 벗은 몸으로 목욕 순서를 기다리는 것처럼 나란히 서 있지만, 하하 한겨울 앙상한 나무들을 목욕 순서 기다리는 옷 벗은 할머니로 비유하다니 내참. 그런데 매우 쉽게 읽히며 잔잔한 일상이 참 재미있다. 나무는 봄에 다시 태어나지만 인간은 안된다. 지난가을에 뼈만 남아 있던 할머니에게 갓 태어난 아기 같은 싱싱한 피부가 다시 돛아나는 일은 없다... 더 할머니가 될 뿐이다. 하하 그렇지. 그렇지. 곳곳에서 나는 그렇지!를 연발한다. 하반신만 유령... 90도 꺾은 할머니의 총총걸음 하하 푸하하하 운전하다 머리털이 꼿꼿이 서는 장면인데 다리만 보여 유령인가 했는데 늙은 할머니가 허리가 굽어 몸통을 아예 반을 꺾어 걸어가니 상체는 안보였던 것이다. 나같이 아무렇게나 누워 뒹굴며 와이드 쇼를 보면서 땅콩을 먹거나 하지 않는다. 하하 나처럼 가끔 게을러지기도 하지만 그럴 때 영락없이 이렇게 자학과 후회를 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살고 있다. 사는 동안은 살아가는 것 말고는 달리 없다. 산다는 건 뭐냐. 그래, 내일 아라이 씨네로 커다란 머위 뿌리를 나눠 받으러 가는 거다. 그래서 내년에 커다란 머위가 싹을 낼지 안 낼지 걱정하는 거다. 그리고 조금 큰 어릴 꽃대가 나오면 기뻐하는 거다. 언제 죽어도 좋다. 하지만 오늘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여기 이 일본에서.


그냥 삶의 이야기다. 60여 년을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 예순네 살의 할멈은 이제 남자도 여자도 아닌, 할멈이라는 생명체다. 하하 어쩜 여자도 남자도 아닌 할멈이라는 생명체라니. 에고. 후네라는 고양이의 죽음. 한 달간 매일 지켜보며 인간은 난리 치며 죽는데 정말 조용히 죽어가는 동물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하는데 읽는 나는 참 슬프다. 우리는 늙어가고 있으며 그래서 누구에게나 죽음이 가까이 다가온다. 앞으로 계속 산다는 것은, 내 주위의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계속 떨어져 나간다는 것이다. 늙는다는 것은 그런 외로움인 거다. 아주 어릴 때부터의 친구 코짱의 죽음에 많은 충격을 받는 그녀. 그래도 매우 담담하게 글을 써 내려간다. 난 그 글을 읽으며 여전히 많이 슬프다. 한 달 전에는 바닥을 두드리며 울었는데, 지금 나는 텔레비전의 바보 프로그램을 보며 큰 소리로 웃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잔혹하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계속 웃는다. 




일본 그림책의 명작이라는 '100만 번 산 고양이'를 비롯해 '아저씨 우산'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 등 수많은 책을 낸 사노 요코. 불행하게도 2004년 유방암에 걸린다. 그래도 '사는 게 뭐라고' '죽는 게 뭐라고' '시즈코 씨' 등을 쓰고 2010년 72세에 하늘나라로 간다. 엉엉. 그녀의 많은 수필을 찬찬히 다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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