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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Jul 21. 2019

독후감
그렇게는 안되지

사노 요코





브런치 작가 욜롱이님을 통해 처음 만난 사노 요코. 그리고 나는 그녀의 책 속에 빠졌다. 참 재미있다. 그냥 남의 일상을 엿보는 느낌이랄까. 아니 그냥 나의 삶 같기도 하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 같고 바로 나의 이야기 같고 나의 느낌 같다. 그래서 그녀 책을 한가득 가져다 놓고 짬이 날 때마다 읽는다. 그런데 나는 책 읽는 습관이 좀 묘하다. 한 가지 책을 집중해서 읽지 못한다. 즉, 화장실에도 한 권, 거실에도 한 권, 식탁 위에도 한 권, 안방에도 한 권, 곳곳에 책을 두고 그곳에 갈 때마다 다만 몇 페이지 씩이라도 본다. 그러니까 한 번에 한 책을 집중해서 다 끝내 는 게 아니라 이 책을 읽었다 저 책을 읽었다 한다. 나의 남편은 절대 그런 걸 또 이해 못한다. 뒤죽박죽 섞여서 그게 제대로 읽히겠냐고. 남편은 오로지 한 권을 가지고 화장실 갈 때도 거실에 갈 때도 자기 방에 갈 때도 들고 다니며 그 단 한권의 책이 끝날 때까지 읽는다. 딱 한 권으로. 그 책을 다 읽어야 다음 책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는다. 사방팔방에 책을 두고 잠깐 이 책 읽었다 또 잠깐 저 책 읽었다 가는 곳마다 있는 각각의 책을 펼쳐 든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모든 게 정 반대다. 우리가 늘 하는 이야기지만 우리 둘을 믹서에 넣어 갈아서 다시 두 인간으로 만든다면 아마도 완벽한 인간이 나오리라. 하하







책의 제목으로 나와있는 '그렇게는 안 되지'를 한 번 볼까?


x월 x일
오전 중에 스카이라크에 동화 원고를 쓰러 갔다. 
옆자리에 엄청나게 얼굴이 긴 할머니와,
얼굴이 동그란 아줌마가 와서 앉았다. 
동글이와 길쭉이가 함께 인 거다. 


하하 시작부터 너무 재미있지 아니한가. 모녀인 줄 알았던 이들 관계는 이모와 조카였다. 조카에게 하는 이모의 말을 사노 요키가 곁에서 몰래 듣고 옮겨 적는 것이다. 이모는 억척스레 딸을 관리하는 분 같다. 딸의 연애를 모두 감시하며 나서서 갈라서게 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어느새 딸은 쉰이 넘었고 아직도 떼어놓고 있는 그 딸의 엄마인 긴 할머니, 이모의 이야기다. 

 

내가 뒤를 밟았어.
뒤를 밟았다고요?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역에 내려서 두리번두리번

이모는 어디 서서 지켜봤는데요?
기둥 뒤.

저런, 마치 탐정이네요.
후후후 어쩔 수 없잖아, 딸인데. 

그대로 돌아온 거죠?
그렇게는 안 되지. 


그렇게는 안 되지. 이모는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딸을 불행이 불보듯 뻔하다며 나서서 적극 갈라놓는다. 그 유부남의 부인까지 찾아가서. 이 남자는 이래서 안 되고 저 남자는 저래서 안 되고, 이모는 딸을 위해 너무나 열심히 관리를 하지만 여기서 사노 요코의 기분은 팍 상한다. 볼까?


이모 지금까지 몇 명이나 떼어놨어요?

떼어놓다니, 남이 들으면 뭐라겠니?
내가 아주 나쁜 사람인 줄 알겠다.
엄마가 돼서 자식의 행복을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잖니. 아~ 틀니가 영 안 맞네. 

얼굴이 긴 할머니는 커다란 입을 우물거렸다.
그 애는 여태 눈물범벅을 하고 울고 있어.

긴 얼굴의 할머니는 커다란 입에
립스틱을 덕지덕지 바르고
콤팩트를 들여다보면서 입을
꾸욱 다물고 옆으로 늘렸다.

저 나이에 아직도 립스틱을 바르다니.
동화를 쓸 기분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엄마는 자식을 위한 거라지만,  딸을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지만, 그러나 이렇게 조금만 떨어져서 보아도 딸의 나이 50 되기까지 딸의 행복을 위해 이런 저런 사람 모두 떼어놓은 그 엄마가 옳지않다는 것이 빤히 보인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게 이렇게 상대에게는 큰 피해가 될 수도 있다는 어떤 교훈을 준다 할까. 여하튼 그냥 일상인데 그녀의 책은 이렇게 무언가 각 수필마다 그 어떤 큰 느낌을 준다. 그래서 참 좋다. 그것도 아닌 듯 하면서 슬그머니 크게 느낌이 오니까 말이다. 





이제 '그 사람'이라는 것 하나만 더 볼까?


그 사람은 내가 연애한 사람과 결혼했다. 나한테 "얼굴 같은 거 신경 안 써"라고 말한 사람과. 난 울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아 그래. 어쩔 수 없지. 글쎄 그렇게 예쁜걸 뭐. 게다가 다정한 눈을 하고 있었는걸. 그리고 얼마 지나서 울었다. 아주 조금. 아무도 밉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쓸쓸해서 울었다. 


그  후 세월은 흘러 흘러 20년이 지나고야 처음으로 다시 그를 보게 된다. 아, 이 장면은 직접 보아야 한다. 그대로 옮겨야겠다. 


오늘 나를 버린 사람을 지하철에서 봤다. 너무 나이가 들어 보여서 깜짝 놀랐다. 머리가 반은 벗어졌고 머리털이 듬성듬성 있었다. 그래도 한껏 팔자걸음을 걷고 있었다. 그 옆에, 하얀 돼지 같이 펑퍼짐하게 살이 오른 여자가 있었다. 팔과 목에 주렁주렁 금줄을 걸고,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다. 턱 주름이 굵고 깊게 파여 있었다. 
  그 사람이었다. 


2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우연히 자기를 버린 그 사람을 보게 되는 이 장면. 20년이라는 세월. 그런데 그 뒤가 더욱 기가 막히다.  볼까?


나는 상대가 나를 볼까 봐서가 아니라, 내가 상대를 알아봤다는 것을 그 사람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아서 기둥 뒤에 숨었다.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전철이 한 대 오고 사라질 때까지 나는 눈을 감고 기둥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상상해보라. 20년 동안 어쩌면 가슴 저 한편에 남아있을 수도 있을 그녀를 버린 그 사람. 한동안 연애했던 그 사람. 그 사람을 뺏아간 그녀의 친구까지 함께 보았는데 너무 나이 들고 흉하게 변해버린 모습에 그가 자기를 볼까 봐가 아니라  자기가 그들을 알아보았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기둥 뒤에 숨는 그 장면을 생각해보라. 이렇게 사노 요코의 소설은 뭐랄까 그 감정표현이 참 적나라하다. 마치 나의 속을 들키는 것처럼 깜짝 놀라며 읽기도 한다. 그야말로 자유분방한 마치코의 이야기도 참 재미있다. 욜롱이님 덕에 사노 요코를 알게 되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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