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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r 11. 2024

고등학교 때 서클하던 남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9)

이야기하다 보니 언제인지 모르지만 저 안쪽에 있던 젊은 커플은 이미 사라졌고 그 작은 초장집엔 그 애와 나 그리고 홀로 모든 걸 하는 듯한 그 집주인뿐이다. 할머니 같기도 하고 아줌마 같기도 하며 절대 웃지 않는 무뚝뚝한 주인의 피곤해 보이는 얼굴에선 어서 우리가 나가주었으면 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요즘 장사가 너무 안돼 힘들다는 말을 묻지도 않았는데 우리에게 한다. 날씨가 험악해서인가 봐요. 나의 추임새. 사람이 없으면 더 힘드시죠. 그 애의 추임새. 거기서 기다리며 택시를 부를 수도 있었지만 힘든 그녀가 빨리 퇴근할 수 있도록 우린 일단 나가기로 했다. 밖으로 나오니 캄캄하다. 이 집만 끝난 게 아니라 바닷가 전체가 끝났나 봐. 그러게. 어쩜 이렇게 아무도 없을까? 그 애도 놀라고 나도 놀란다. 가게란 가게는 모두 다 문을 닫았다. 그런데 저 멀리 반짝반짝. 앗 저기 뭘까? 카페일까? 무어라 쓰여있는데 보여? 글쎄 무슨 베이커리 같기도 한데 잘 안 보인다. 일단 가보자. 그래. 커피는 한 잔 해야겠지? 하하 우린 그곳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아, 그런데 너무 춥다. 빗방울까지 살짝 비치는 듯하다. 일단 봄이라고 옷을 그렇게 따뜻하게 입지 않았는데 그 애도 보니 그리 두툼하게 입지 않았다. 얇은 누비 사파리를 양복 겉에 걸쳤을 뿐이다. 난 백수니까 괜찮지만 일하는 넌 감기 걸리면 안 될 텐데 그리 두껍게 입은 것 같지 않네. 추워? 했더니 으스스 몸을 움츠리며 어허 춥긴 춥네 한다. 지금이라도 그냥 택시 부를까? 아니, 참을만하다. 저 불빛까지 가자. 그래? 그럼 춥지 않게 뛰자. 하하 그래서 우린 그야말로 달밤에 체조하듯 달려라 달려 깜깜한 바닷가를 뛰기 시작한다. 줄지어 서있는 고깃배들을 다 지나 바다로 연결되어 있는 방파제 끝 빨간 등대가 보이는 곳까지 가니 드디어 그 화려한 불빛의 거대한 3층 건물이 나온다. 모지? 카펜가? 호텔인가?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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