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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r 12. 2024

고등학교 때 서클하던 남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10)

그 반짝이던 글씨는 가까워지면서 서서히 보였는데 어쩌고 저쩌고 베이커리로 보였었다. 그런데 가까이 가보니 베이커리가 아니라 페어리라고 쓰여있다. 페어리? 모지? 일단 안으로 들어간다. 카운터 몇 명의 아가씨들이 환하게 웃으며 맞이한다. 그리고 보니 커피 머쉰이 곳곳에 있고 옆 진열대엔 빵도 보이고 흡사 카페 모습이다. 아, 그러나 설마 이 거대한 빌딩이 몽땅 카페라고? 의심쩍어 물어본다. 여기 카페인가요? 하하 맞단다. 세상에 이 커다란 빌딩 모두가 카페란다. 호기심 천국 내가 더 물어본다. 페어리가 뭐예요? 아, 요정이라는 뜻입니다. 즉각 뒤적뒤적 핸드폰으로 영어사전을 찾아본다. 아하 Fairy! 요정! 외국을 많이 다닌 그 애도, 영어공부 열심히 한 나도 Fairy가 요정인 줄 몰랐다. 하하 Fairy! 요정! 그 애도 나도 그 단어를 익히며 그 거대한 카페를 둘러보는데 오호 날씨가 험악해서인지 그 넓은 곳에 딱 한 자리 대여섯 명의 젊은이들이 시끌시끌 대화중일 뿐이다. 이 거대한 건물이 몽땅 카페라면 난 2층으로 가야지 하며 우선 커피를 주문하려는데 그 애가 커피는 내가 쏠게 하며 나선다. 노노노! 오늘은 내가 해주는 환영식. 커피까지 내가 쏜다! 엣헴! 그래? 좋아. 그럼. 다음에 내가 거하게 쏘지. 하면서 그 애가 물러선다. 무엇을 마실까? 내가 요즘 푹 빠져있는 흑당버블라테 아이스 그런 게 있으려나 뒤졌지만 없다. 할 수 없이 늘 하던 거 바닐라 라테 뜨거운 거를 주문하고 그 애는 별 고민도 없이 레몬진저티 뜨거운 거를 주문한다. 빵도 할까? 무슨! 지금 너무 배부른 걸. 해서 그냥 차만 두 잔 시키고 계산한다. 우리 2층 가자 하는 나의 말에 그 애는 차 나오면 가지고 갈 테니 먼저 올라가 있으란다. 오케이. 그런 면들이 무언가 세련되었다. 무거운 건 그 애가 들고 간다는 그런 마인드 하하. 그래서 차 나오면 2층으로 와~ 하면서 나 먼저 그 거대한 카페 2층으로 발을 옮긴다. 오호 넓고 넓은 카페. 왼쪽 오른쪽으로 나뉘어있는데 왼쪽은 자리가 몽땅 바다를 향해 나있고 오른쪽엔 가운데 테이블을 두고 양쪽으로 거대한 쏘파들이 자리하고 있다. 우선 양쪽으로 앉는 자리로 가본다. 그런데 그 바로 뒤에 젊은 세 커플이 무언가 재밌는 대화인 듯 내 느낌에 그저 시끌벅적이다. 그래서 일어나 바다를 향한 조용한 자리로 간다. 그 애가 커피를 들고 오기 전 자리를 잘 잡아두어야지. 그 젊은 커플들과 멀리 떨어져 바다를 향해 나있는 기다란 소파에 앉아본다. 우아 좋네. 그러나 그 정면에 나의 모습이 고대로 드러난다. 낮에는 바다가 쫘악 펼쳐지겠지만 그러나 지금은 깜깜한 밤. 밤바다는 거울 되어 반대쪽 카페 모습만 환히 비칠 뿐이다. 음. 이건 아무래도 어색하겠네. 아직 그 애는 도착하지 않고 있다. 발딱 일어나 다시 아주 환하고 테이블이 가운데 있고 양쪽으로 쏘파 있는 곳으로 옮겨간다. 아 그러나 작은 테이블에 소파는 너무 거대하고 그리고 한가운데 턱 차지하고 있는 젊은 커플들의 시끌벅적도 거슬린다. 그래. 조용하니 아까가 낫겠어. 다시 발딱 일어나 바다를 향한 자리로 온다. 하하 그 넓은 곳에 그 젊은 커플들 말고는 텅텅 비어있어 자리를 마냥 옮겨 다닐 수 있다. 그렇게 바다를 향한 아니 밤바때문에 거울 같아진 창을 통해 우리가 주문한 걸 쟁반에 받쳐 들고 올라오는 그 애가 보인다.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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