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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y 26. 2024

내가 이렇게 살림을 잘했나?

그럼 그럼. 네가  어릴 땐 일하는 언니들 꽉 잡고 여기 조기 깔끔히 도 시켰다. 내가 그랬단다. 책상정리도 제일 잘해서 엄마아빠 불심검문에 오빠랑 남동생이랑 혼날까 봐 내가 대신 다 정리해주고 했단다. 그렇게 난 정리 정돈 살림을 참 잘하는 아이였단다. 그런데 난 살림하는 게 나의 가장 취약점으로 알고 있었다. 엄마가 하도 깔끔하셔서 집이 어때야 한다는 거를 아는데 뒤죽박죽 엉망진창인 나의 집을 보며 난 언제나 살림을 제일 못하는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엄마가 우리 집에 오시니 자연스럽게 살림주기가 되어버렸다. 나의 바빴던 그 모든 스케줄은 동결되고 두 시간마다 넣어드려야 하는 약과 함께 세 끼니 식사 그 후의 약 등등 집 안에서 꼼짝 못 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 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내가 이렇게 살림을 못했나? 우리 집에 오면서 우선 방 바꾸기부터 실행되었다. 남편과 함께 낑낑대며 안방 바로 옆의 그의 서재 안 책상을 복도 끝 화장실 옆 큰 방으로 옮기는 작업에서부터다. 손님을 위한 그 방에는 커다란 침대와 3인용 소파가 있었는데 남편 책상을 그 소파 자리에 넣고 그 소파를 엄마방으로 옮겨놓았다. 그러면서 시작된 정리 정돈. 세상에. 이런 걸 왜 그리 쌓아두고 살았을까. 옷장 정리 한다고 한가득 내어놓고 그래도 언젠가 쓸 것 같아 결국 버리지 못하고 있던 것들. 환한 대낮에 코스트코 빨갛고 커다란 사각 통에 한 열세 자루는 가득가득 넣어 날랐다. 커다란 의류수집통이 꽉 차 더 이상 넣을 수 없을 지경까지. 왜 못 버렸을까? 엄마~ 나 또 버리고 올게~ 하면서 한 통을 가지고 나갔고 와서는 또 엄마 나 또 버리고 올게~ 그렇게 열세 번을 했다. 처음이 힘들었지 과감히 의류 버리는 통에 넣기 시작하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 이걸! 입지도 않는 걸! 이걸 왜 쌓아두고 있었어. 버리자 버려! 아, 이 잠바는 그래도 새로 사놓고 안 입었는데. 비싼 건데. 몇 년 안 입었으면 절대 안 입어. 누군가 가져다 입겠지. 그래. 버려. 눈 딱 감고 버려라 버려 신나게 버렸다. 아, 버리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 통쾌하다. 집에 뭐 또 버릴 거 없나? 그래. 난 공간을 사리라. 너저분한 옷 들대신 화려한 시원시원한 멋진 공간을 사리라. 파이팅! 게다가 저녁땐 김치도 담갔다. 모든 스케줄 동결하고 집에만 있으니 절로 드는 생각. 내가 이렇게 림을 잘했나? 호홋.


(사진: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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