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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y 25. 2024

악역은 네가 담당해.

그랬다. 나는 가끔 엄마 집에 오는 남동생에게 악역을 담당하라 했다. 애들 어릴 때 누군가 악역을 맡아야만 했듯이 이제 서서히 아가 같아지는 엄마에게도 악역이 반드시 필요하다 생각했다. 논리상 하지 말아야 하는 건 절대 하지 말아야 하니까. 예를 들어 일하러 오는 아주머니를 끊임없이 의심한다든가, 정리 또 정리 또 정리한다고 하염없이 개키고 싸고 꽁꽁 묶어 어딘가 숨긴다든가, 화장실 물 안 내리고 나온다든가, 금방 한 거 까맣게 잊고 다시 한다든가 등등 갑갑하고 갑갑해 소리 지를 일은 끝도 없이 생겨난다. 그때마다 악역 즉 소리치며 따끔하게 엄마 교육시키는 일을 남동생에게 맡겼었다. 그래서 남동생은 엄마랑 함께 있을 때 어머니! 그렇게 하시면 안 되지요! 그건 아니라고요! 구구절절이 소리치며 엄마를 바로잡기에 열심이었다. 누나. 악역 하기 정말 힘들다 해가면서도 우린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계속 기억시키고 아닌 건 아니라고 주입시키고. 그러던 차에 한국보건복지인재원 장기요양치매전문교육 요양보호사과정을 공부하게 되었다. 난 흐르는 열풍 따라 꽤 오래전에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도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따놓았는데 거기 치매 전문 교육을 더 받아두기로 한 것이다. 치매가 되어가는 엄마를 어떻게 돌봐드려야 하는지 나 스스로 정말 궁금했으니까. 그렇게 공부를 하다 보니 악역 그거야말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우린 엄마에게 올바른 것을 끊임없이 주지 시켜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절대 금기사항이란다. 그저 다 받아들이고 논리적 설명도 필요 없단다. 그냥 엄마가 편안하게 그 순간 행복하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단다. 그래서 이제 악역 없이 동생이고 나고 무조건 엄마가 행복해하는 쪽으로만 케어하기로 했다. 모르고 열심히 하면 도리어 해가 될 수도 있는 거였다. 공부하길 잘했다.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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