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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Jun 07. 2024

92세 엄마에게 혼나다.

넌 시어머니 계셨으면 혼났어. 이게 뭐냐 어른이랑 안 살아서 그렇구나. 살림에 신경 좀 써. 92세 울 엄마는 남편 앞에서 나를 막 야단쳤다. 처음에 엄마가 오셨을 땐 작은 그릇에 한 끼 먹을 것마다 덜어 예쁘게 상차림을 했지만 곧 우리 하던 대로 그냥 락앤락 채로 식탁 위에 놓고 먹게 되었다. 반찬도 특별할 것 없이 우리 먹는 대로 고기반찬보다는 가끔 오는 아들왈 푸성귀위주 그런 식사가 되었다. 아니 좀 억울한 면도 있다. 우린 오늘 저녁을 먹었다. 모처럼 엄마와 함께 코스트코에 가서 실컷 장도 보고 거기서 새로 선 보인 떡볶이와 불고기 피자와 콜라까지도 먹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제일 많이 먹고 남편과 엄마는 배가 부르다며 그렇게 많이 드시지 않기는 했다. 그래도 난 선언했었다. 그때가 저녁 6시 다 되어가고 있기에 이거 오늘 저녁입니다. 저녁 없어요~ 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 저녁 약을 눈에 넣어드리고 뇌영양제와 도네피질과 타나민도 드시게 했다. 나의 의무를 모두 끝내고 수요일 밤이면 행해지는 핸드폰 웨일스로 하는 책 읽기 모임을 신나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 밖이 소란하긴 했다. 10시에 끝나고 방에서 나가보니 남편과 엄마가 식탁 위에 김치등을 차려놓고 다정하게 식사를 하고 있다. 분명히 엄마를 재워드리고 난 방으로 들어갔는데. 배가 고파 잠이 안 온다 하셨단다. 떡을 드시겠냐 했더니 밥을 드시겠다 하여 남편이 냉장고 속 락앤락을 통째로 꺼내놓았던 것이다. 엄마는 찬 밥을 뜨거운 물에 말아 김치랑 해서 맛있게 드시고 계셨다. 남편도 무언가 출출하다며 엄마와 함께 식사 중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김치만 해서 드시다 엄마의 야단이 시작되었다. 반찬이 이게 뭐냐. 너희들 식단이 엉망이다. 그렇게 부실하게 먹고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느냐. 식사에 신경 써라. 등등. 사실 억울하긴 하다. 엄마는 매우 잘 드셨다. 나름 잘 차려드렸는데 그거 잊으신 듯하다. 아니 또 한편으로 그건 사실이기도 하다. 난 살림보다는 딴 거에 더 정신이 팔려있으니까. 학창 시절 나태해져 스스로도 이렇게 공부 안 하면 안 되는 건 알겠는데 공부모드로 돌아가기 힘들 때 엄마 아빠에게 실컷 야단맞고 나면 무언가 후련해지며 제 페이스로 돌아갔던 기억이다. 지금이 딱 그렇다. 그래 반찬에도 살림에도 좀 더 신경 쓰자 이렇게 반성모드가 되었다. 라면 좋겠지만 난 나를 잘 안다. 금방 또 나의 페이스 살림보다는 책 읽고 글 쓰고 공부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돌아갈 것이다. 하하 그러면 어떠랴 느꼈을 때 반성하고 다시 최선을 다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할 수 없지. 어쨌든 잠시 살림주기로 돌아간다. 하하 엣헴!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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