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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Jan 31. 2019

역지사지易地思之

상대방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易 바꿀 역 

地 땅 지 

思 생각 사

之 갈 지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함.



오홋. 자리가 꽤 괜찮아. 흠흠... 잘 골랐어. 암 그렇구 말구. 햇빛 동선까지 따져가며 고른 좌석인데. 아무렴. 최고지. 흐흐. 실실 미소를 지으며 서울로 향하는 KTX 7호차 한 가운데 좌석번호도 럭키 쎄븐. 외투를 얌전히 개켜 선반 위에 올려 놓고 자리에 막 앉으려는 찰나!!! 젊은 남녀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 내 옆에 서더니, 우리가 따로 표를 사서 그러는데 좀 바꿔주시겠어요?  헉. 어떡하지? 그녀가 가리키는 자리를 본다. 앗.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는 길이니 오른 쪽이 동쪽. 오전 중이니 동쪽에서 해가 들 것이며.... 나름 연구하여 해가 안드는 서쪽, 즉 왼쪽 한가운데 자리를 번호까지 럭키 쎄븐으로. 이런 저런 걸 다 따져서 고르고 고른 나의 자리를 내 놓고

해가 무지막지 드는 동쪽의 그것도 저~ 끝자리로 가라고라... 내참. 


음... 난 점잖게 목소리를 가다듬고... 차분히 말한다. 음... 저기요, 바꾸어 달라 할 때는 좋은 자리를 내주어야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저 끝자리 분에게 이쪽으로 가주시겠느냐고 묻는 것이 더 먼저 일 것  같은 데요.

오자마자 당연한듯 허겁지겁 말한 여자와는 달리...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는데 여자보고 그냥 끝에가서
앉으라 했는지 어쨌든 난 그래도 끝까지 바꾸어달라 하면 바꾸어줄 태세는 하고 있었는데 이 남자. 그냥 내 옆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그렇게 서울까지 왔다.


뭘까. 무언가 찜찜하다. 연인도 아니고 부부도 아니고 회사원이었을까? 남자는 내내 무슨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고, 여자는 그렇게 뒤로 간 후 단 한번도 이쪽에 오지 않았다. 남자도 단 한번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냥 생각해본다. 혹시... 여자는 함께 앉고 싶어했고 남자는 함께 앉고싶지 않았던 건 아닐까?



여기서 난 역지사지라는 말이 생각났으니 몇년 전 85세 엄마를 모시고 서유럽 여행 떠날 때다. 비행기 이코노미석 가운데 맨 앞자리에 엄마 그리고 나랑 남편은 거기서 세 줄 뒤였다. 마침 엄마 자리 옆에 젊은 여자가 앉았기에 엄마가 연세가 있으셔서 곁에서 좀 돌봐드려야할 것 같아 그러는데 저랑 자리 좀 바꾸어주시겠어요? 물었었다. 단호하게 거절하는 여자. 그때 무척 섭섭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여자도 일부러 발이 편한 앞자리를 인터넷으로 고르고 골라 힘들게 자기 자리를 확보했겠구나. 그런데 덜렁 바꾸어달라하니 기가막힐 수 있었겠구나 싶다.


바꿀 역 

땅 지 

생각 사

갈 지 


항상 섭섭함 뒤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더라. 상대방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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