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대상

세월따라 변해가는

by 꽃뜰

아르헨티나의 고기 잘 굽는 아이, 시애틀의 사진 잘 찍는 아이, 서울의 산 잘 타는 아이, 시카고의 글 잘 쓰는 아이 네 명은 나의 초등학교 동창이다. 나는 그 애들에게 글을 좀 써보는 게 어떻겠냐 했고 시카고의 글 잘 쓰는 아이가 그 말을 잘 들어 드디어 제1편부터 이야기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어제 제3편을 보내왔다. 그 애가 계속 글쓰기에 취미를 붙일 수 있도록 난 그 애 글을 여기 소개한다.




우린 태어나면서부터 항상 공포 의대상과 함께 해왔다. 기억이란 걸 하게 된 아주 어린 시절엔 병원이 그랬다.

나의 의견은 싹 무시되고 일방적으로 맞게 되는 주사는 보기만 해도 울음부터 터지는 공포였다. 조금 커 학교에 다닐 때쯤엔 원래의 사용방법과 반대로 쥐고 춤을 추던 엄마의 빗자루 총채. 게으름이나 거짓말이 들통 나는 순간 위에 언급한 청소용구를 엄마가 거꾸로 들면 공포의 분위기가 쫘악 깔렸었다.


머리가 조금 커 그것들이 공포에서 벗어나는 중고등학교 시절엔 골목길에서 물침 뱉으며 건들거리던 양아치 깡패들(요즘 말로 일진). 그 당시엔 그나마 요즘보단 신사적이어서 돈이나 물품을 배지는 않고 툭툭 치며 장난치는 정도였지만 시달리는건 역시 공포였다. 근데 이상한 건 꼭 하는 질문은 누나 있냐는 거였다. 나에겐 누나가 둘 있었지만 항상 없다고 했다. 이런 건달시키들과 누나가 보게 될까 봐 머리를 가로저으며 상상하기도 싫어서. 그럼 누나도 없는 재수 없는 넘이라며 훜과 니킥 두어 방 맞아야만 그 자리를 피할 수 있었다.


하여간 그 공포도 성인이 되는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사라지는가 했더니 새로운 공포가 생겼다. 그 당시는 장발과 데모가 유행이었는데 장발단속 데모 진압하던 막무가내 경찰이 새로운 공포로 나타난 것이다. 난 데모는 별로 안 했지만 괜히 옆에 있다가 휩쓸려 잡혀가고 길가다 머리 길다고 종로 3가 파출소에 끌려가 강제로 머리 깎이고. 탑골공원 입구 옆 파출소가 제일 악명이 높았는데 감방 안엔 전문 이발사가 상주하고 있었다. 대강 귀가 드러나게 듬성듬성 자르고 구둣솔로 털어내고 500원 내야 나올 수 있었다. 돈이 없는 친구는 빠따 5대. 암튼 군대 가기 전까진 그랬다.


군대 내에선 누구나 경험해서 비슷할 거 같아 생략하겠다. 이것까지 읊으면 일박이일 써도 모자랄 듯. 학교 졸업 후 직장 다닐 때는 새로운 공포가 나타났다. 항상 못마땅한 표정의 이 부장님. 출근하면서부터 찡그린 표정과 퍼붓는 질책. 결재서류는 무조건 reject! 하도 빠꾸를 당해서 어느 날은 고치라는 대로 토씨 하나 안 틀리게 올렸더니 창의성 없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노예근성이라나 뭐라나. 어휴...


직장을 그만두고 만사가 힘들어 늦은 나이 50에 미국으로 이민길에 올라 이제는 겁날 거 없다 했더니 악명 높은 시카고 사우스 지역의 흑형 갱들. 두어 번 털려 질렸다가... 이제 나이 60이 넘어가니 다 안 무섭고 심지어는 죽음도 무섭지 않은데 딱 남은 마지막 공포의 대상은 단 하나!! 자기 할 말만 닥치는 대로 퍼붓는 와이프 포함 한국 아줌마들!!! 무조건 피하세요. 핏볼보다 더 무서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