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국 이야기 1

12개의 이민가방 끌고 미국 공항에서

by 꽃뜰


"10화까지 쓰면 책을 낼 수 있어. 한 번 해봐!" 그렇게 나는 시카고에 있는 글 잘 쓰는 아이를 압박했다. "일주일에 무려 세 편을? " 엄살 피던 친구가 그래도 한 번 해보겠다며 보내왔다. 17일까지 3편을 받아 10편을 채워 브런치 북을 발간해 응모하는 게 우리 목표다. 그렇게 시카고에서 도착한 글을 올린다.





난 비교적 늦은 나이인 50세에 미국으로 이민 왔다. 이미 반백년을 한국에서 살아왔는데 이민을 결정한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어릴 적부터 동경의 대상이던 미국이란 곳을 더 이상 늦기 전에 경험해보고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주변에선 너무 늦은 나이라고 만류도 하였지만 한번 맘먹으니 밀어붙이자고 결심하고 십여 년 전에 드디어 시카고에 이민을 왔다.


미국 이민이라면 누구든지 익숙한 뉴욕이나 L.A를 나도 생각했지만 그쪽은 이미 한국사람으로 도배되어있어 한국생활이나 마찬가지로 애도 한국애들끼리만 어울리게 되어 영어도 안 늘고 경우에 따라선 못된 애들 만나 클럽이나 다니고 마약에나 빠지게 된다고 겁을 줘서 비교적 교육환경이 좋다고 하는 그리고 처형네가 살고 있는 시카고를 택한 것이었다.


이민 올 당시인 2006년도에는 우리 아들은 중3이었고 이민 준비를 하면서 영어를 좀 점검해야겠다는 생각에 나 역시 영어회화학원에 등록은 했지만 사업을 핑계로 다니는 둥 마는 둥 다니고 아들도 간단히 교과서로 테스트를 해보니 단어는 좀 아는데 문법은 영 엉망이었다. 너 이러면 미국 가서 왕따 된다면서 두어 달 내가 옛날 과외선생처럼 손바닥 때려가며 가르치고는 드디어 2006년 4월 16일에 이민 비행기를 탔다. 가재도구를 다 정리하고 서류. 귀중품. 옷가지와 기본생활용품만 챙겼는데도 큰 이민가방 12개 분량이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습관대로 나는 양복 정장 차림으로 대한항공 747을 탔는데 하필이면 만석인 데다 가운데 통로 자리인 5 열좌석 가운데 나. 마누라. 아들 세명이 낑겨앉게되어 영 불편하였다.


처와 아들은 모든 걸 나만 믿고 쳐다보는 눈치였고 난 가장으로서 믿음을 보이려고 비행기 안에서의 매너와 흉이 안되게끔 단단히 교육을 시킨 후 지루한 12시간 비행 후 드디어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 내렸다. 몇 년 전에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누나네 잠깐 들르느라 미국 공항 경험은 있었지만 그땐 여행객이었고 지금은 이민 온상태라 경우가 조금 달랐다. 우선 짐 찾고 세관 검사할 때까진 비슷했는데 세관직원이 짐이 많으니까 이민 왔냐고 하길래 그렇다고 하니까 저쪽을 가리키며 그쪽으로 가라고 한다.


12개의 이민가방을 하나하나 챙겨서 큰 리프트에 옮겨 싣고 가리키는 쪽으로 가니 옷도 대충 성의 없이 입은 젊은 흑인 직원이 손가락으로 까딱까딱하며 이리오란다. 긴 여행에 지친 데다 이민가방 하나하나 짐 검사를 마치고 난 뒤라 양복차림의 난 벌써 땀범벅이 되어있었는데 이 친구 뭐라고 묻는데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분명 영어로 묻는데 우물우물하며 낮은 톤으로 너무 빠르다. 귀를 쫑긋하게 세우며 아는 대로 I beg your pardon? 만 계속하니깐 그 친구가 더 답답한 듯 연신 못 알아듣는 질문만 하고. 넥타이는 더 조여오는 듯 진땀은 억수로 쏟아지고 입은 마르고 머릿속은 하얘져서 아무것도 생각 안 나고 그저 나오는 건 yes.no.ok. 이세 단어. 그래도 명색이 학창 시절 10년 동안 영어를 배웠다는 놈이 이 허름해 보이는 흑인 젊은 친구 앞에서 쩔쩔매고 있으니.


마누라는 어떻게든 해보라고 옆구리 쿡쿡 찔러대고 영어 못한다고 손바닥 맞던 아들 녀석은 믿었던 아빠가 정말 허물어지니까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마치 동네 깡패한테 맞고 믿었던 태권도 5단 아는 형한테 일러 같이 갔는데 깡패들을 다 혼내줄 줄 알았던 형이 더 흠씬 두들겨 맞는 꼴을 본듯한 표정. 암튼 손짓 발짓에 필담까지 동원하여 뭘 물어본 건가 했더니 cash는 얼마나 갖고 왔냐는 거였다.ㅎㅎ 난 마누라한테 3만 불이라고 들어서 웃으며 아.. 그거였어? 하곤 쉽게 3만 불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갑자기 마누라 안색이 훽 변하면서 내 옆구리를 아까보다 더 쑤신다. 왜?.. 하고 물으니 귓속말로 6만 불이란다. 굳이 귓속말로 안 해도 되는데.


이건 또 뭔 소리? 믿을 놈 없다더니 나모르게 3만 불을 꼬불쳐온 것이었다. 에휴. 암튼 허위로 말한 셈이 되어 다른 진실의 방(?)으로 옮겨졌다. 그곳에는 우리말고도 2팀 가족이 있었는데 멕시칸으로 보이는 가족 아내는 벌써 눈물 콧물 흘리고 있고 분위기 영 안 좋았다. 좀 있으니 좀 높아 보이는 백인 여자가 다시 천천히 묻길래 영어가 서툴러 잘못 말했다고 내 나름은 미안한 표정이지만 백인 여자가 보기엔 아주 불쌍한 표정을 지으니 확실하냐며 봐주었다.


암튼 지옥 같은 상황을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오면서 마누라한테 어찌 된 거냐 추궁을 하니 장모님 심부름이라고 누가 들어도 아닌 말을 하길래 그냥 비상금이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암튼 공항 밖으로 나오니 처형네가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이민 첫걸음을 한 우리는 새로운 곳에서 새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2편에서부터는 우리가 막연하게 알았던 미국 교포들의 생활과 나의 영어 에피소드. 생활 에피소드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