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뜰 Nov 19. 2019

은퇴한 남편 대학 동기들

일 년에 두 번 부부 함께 만난다

남편은 대학 동기동창들을 일 년에 두 번 만난다. 봄과 가을에 금요일 저녁식사부터 시작해 토요일 점심까지. 회장은 돌아가면서 맡아 그 해의 일박이일을 모두 책임지고 기획하고 실행하는 형식이다. 그렇게 오래 만나다 보니 진짜 대학 동기들인 남편들 못지않게 그 아내들도 여학생들이라 명하며 매우 친다. 그 이번 가을 모임에 대해 이야기해보련다



우리는 울산에 살지만 거의 모두가 서울이기에 일부러 온양 온천 서울에서 가까운 곳을 택한다. 아침 일찍 나랑 남편은 차에 먹거리를 싣고 온양을 향해 달린다. 우리가 조금 고생하고 대부분 서울인 친구들이 편할 수 있도록 택한 장소다. 이번에 남편이 회장으로 모든 행사 담당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의 가락국수와 떡볶이 그걸 포기할 수는 없기에 들어간 속리산 휴게소. 옛날 가락국수가 있다. 대전 휴게소에서 먹던 그 국수를 회상하며 후루룩 먹는다. 휴게소 밖에는 이렇게 멋진 의자가 있고 나무들이 우거져있다. 갈 길이 무어 바쁘랴. 여보 쉬어가자. 잠깐이지만 노트북을 꺼내 다다다다 두들다. 남편은 곁에서 엇둘엇둘 체조를 한다. 하하



얼마 전만 해도 남자방 여자 방 그렇게 나누어 우르르 몰려서 밤새 수다 떨다 자곤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부부만의 따로 된 숙소를 정말들 좋아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호텔 방 하나씩을 배정한다. 모든 단체 행사 끝나고 부부가 오붓하게 들어가 푹 쉴 수 있도록. 그렇게 남편들이 이제는 대한민국 공식 노인 나이 65세가 넘은 것이다. 국립공원에 공짜로 들어간다고 좋아했지만 일단 대학 동기동창 모두 나이가 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라는 공세리 성당에 간다. 본래 저녁 식사부터 모임의 시작이지만 일찍 오는 사람들은 호텔에 짐을 풀고 산책 삼아 공세리 성당에 다녀오기로 한다. 1894년에 설립된 교회.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수백 년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그 날 비아 돌로로사 예루살렘 길에서 로마 병사들 사람을 쫓았네


'비아 돌로로사~' 남편과 함께 성가대에서 감동으로 부르던 바로 그 노래가 절로 웅얼거려진다. 슬픔과 고난의 예수님 가신 그 길이 성당 주변에 오솔길과 함께 동상으로 그대로 표현되어있다. '비아 돌로로사~' 남편과 나직이 부르며 그 길을 걷는다.  



어느새 해가 꼴딱 넘어가려 한다. 서둘러야 한다. 남편이 회장이니까 저녁식사 이전에 도착해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침 천안에서 공장을 하고 있는 남편 동기가 기회는 이때다 하고 공세리 성당에서 합류한다. 매우 오랜만에 참석하는 친구인가 보다. 모두들 반가움에 악수하고 껴안고 웃고 한다. 동창이란 아무리 오래되어도 그렇게 잠깐의 순간이면 대학시절로 돌아가 서로 이름을 부르고 장난치며 좋아한다. 그게 동창이다. 참 소중한 인연들이다.



65세 넘은 기념으로 전철 공짜로 타고 왔어.  



제일 꽁찌로 등장한 대학 교수는 이렇게 많이 걸릴 줄 몰랐다 하면서도 공짜로 타고 왔음을 막 자랑한다. 하하 이제 모두 모두 우리나라 공식 노인들이다. 공짜로 전철 이용해본 무용담들이 한참 이어진다. 나이가 들면서 변화라면 주류가 많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술을 참 많이들 마셨는데 이젠 거의 모두들 안 마신다. 특히 술을 참 많이 마시는 분이 있었는데 이 분이 술을 딱! 끊음으로 많은 친구들이 술 분위기를 찾지 못한다. 술로 분위기를 돋우던 그분은 그러나 술 안 마시고 사는 말짱한 정신의 삶을 예찬한다. 술에 취해 살 때는 세상의 참 맛을 모르고 살았다며.



너희들 이십여 명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화투 알아?



대학교수인 남편 친구는 이제는 또 우리들에게 재밌는 화투놀이를 알려주겠단다. 직접 편의점에 달려가 화투를 사 오고 아무도 모르는 '월남뽕'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시작하는데 하하 푸하하하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으며 그야말로 밤을 꼴딱 새울 뻔!!! 한다. 월남이 왜 망했는지 이 화투를 하고 나면 알게 된다며 시작된 월남뽕. 캬 얼마나 재밌는지 게다가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함께 깔깔대며 집중할 수 있으니 그게 제일 큰 거다. 맥주와 와인 포도 귤 땅콩 오징어포 등을 쫘악 펼쳐놓고 발을 벗고 지극히 편한 자세 로들 벽에 기대어 앉아 돌아가며 화투패를 돌린다. 배팅? 긴장 속에 화투가 뒤집어지고 하하 푸하하하 돈을 벌기도 깡그리 잃기도 하면서 시간은 휙휙 지나간다. 하하 푸하하하



겨우 끝을 내고 모두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다. 깔끔하고 샤워실에선 온천물이 팡팡 쏟아지고 실로 오랜만에 남편과 오붓한 밤을 갖는다. 하하 일부러야 어디 이렇게 호텔방에 가게 될까. 대학 동창 모임 덕분에 분위기 좋은 호텔방에 오니 호홋 기분이 그야말로 삼삼이다. 하하 자꾸 방금 끝난 화투놀이가 생각나며 웃음이 난다. 즐거운 사람들 좋은 사람들 일 년 치 웃음은 쏟아부은 것 같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지하 거대한 온양온천 특급탕에서 목욕할 사람은 하고 그냥 잠을 더 자겠다는 사람은 잠자고 여하튼 호텔 앞의 또 하나 명물 아리랑 식당에서 각자 취향에 맞는 밥을 시킨다. 남편과 나는 청국장찌개를 주문했는데 뽀골뽀골 뚝배기에 끓여 나오는 청국장찌개가 정말 맛있다. 와우. 그리고 서둘러 현충사로 향한다. 매우 학구적인 남편 동기들은 꼭 해설사를 원한다. 10시에 등장하는 해설사를 기다려 기쁨으로 맞이하고 현충사 역사 이야기 속으로 뿅~ 빠져든다. 





아흔아홉 간 집 이순신 장인 어르신 댁 하하 쟁쟁한 처갓집 식구들의 권유로 본래 문과였던 이순신 장군이 뒤늦게나마 무과로 다시 도전해 최고의 장군이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즐겁게 이어진다. 역시 장가를 잘 가야 해 누군가 빽이 있어서 가능했던 거야. 잘 나가는 처갓집 식구들 아니었으면 그런 정보나 있었겠느냐고. 우리끼리의 토론도 한창 이어진다. 하하 이래저래 학창 시절로의 귀환이다. 



이렇게 열심히 듣는 분들은 처음 봐요


거대한 은행나무. 노랗게 물든 커다란 나무 아래서 가을바람은 솔솔 가을 해님은 반짝 이순신 장군이 살던 곳은 그윽 하하 역사 속으로 푹 빠져드는 우리가 참 신기한가 보다. 해설사가 우리 보고 참으로 열심히들 듣는다며 대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들려드리고 싶다며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해설 시간이 마감되고도 덤으로 더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며 이야기해준다. 하하




이순신 장군이 아내와 함께 살던 집 안으로 들어가 본다. 대청마루가 나타난다. 뒤로는 아름다운 정원이다. 문갑이 있는 옛날 방하며 모든 게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역사 드라마에서 많이 봐 친숙하다. 대청마루에 앉아본다. 우르르 한 무더기의 아이들이 몰려온다. 중학생이려나? 시끄럽게 떠들며 털썩털썩 우리가 앉아있는 마루에 앉는다. 지쳤는가 보다. 젊은 여자 선생님이 열심히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하지만 웃고 떠드느라 바쁜 아이들은 전혀 관심 없어 보인다. 우리도 저랬을까? 지금은 귀 기울여 듣고 있는 그 많은 이야기들이 저 때는 그저 듣기 싫은 공부였을까. 하하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이승길을 하직하고 저승으로 나는 간다. 


헉. 이게 무슨 소리지? 무언가 노랫소리 같은 게 들려 둘러보니 저 멀리 무슨 행렬이 보인다. 달려가 보니 오홋 상여 행사다. 맨 앞에 선 사람이 크게 선창 하면 뒷사람들이 어허어허넘차어하 우렁차게 소리친다. 오홋 요 거이 웬 횡재? 줄줄줄줄 따라가며 꽃상여 행사를 본다. 사람들마다 몰려들어 찰칵찰칵 사진 찍으랴 상여 외치는 소리에 귀 기울이랴 뜻밖에 마주친 귀한 행렬을 보고 어쩔 줄 들 모른다.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진다더냐 창해 유수 흐르는 물 다시 오기 어려워라 어허어허넘차어하" 가사도 참. 그렇게 세월은 흘러 흘러가겠지. 



다음 병천순대! 여기까지 와서 그 유명한 병천 순대를 안 먹고 갈 수는 없다. 우리의 점심은 병천순대. 제일 유명하다는 아우내 먹거리 순대다. 너무 사람이 많은 곳이라 예약도 안된다. 이십여 명인 우리는 누구든 재빨리 가서 자리를 잡기로 한다. 아슬아슬 겨우 자리 잡은 우리 이후부터 그곳은 꽉꽉 모든 자리가 차는 것도 모자라 카운터에서부터 쭈욱 쭉 줄이 늘어서는데 금방 그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어진다. 우리는 순댓국에 앞서 순대를 시킨다. 보통 동네에서 사 먹는 길거리표 순대와는 차원이 다르다. 오동통한 순대에 가득 메워져 있는 것들이 일단 냄새가 하나도 안 나고 참 맛있다. 꺼려하던 간이니 그런 내장들도 쫄깃쫄깃 아주 맛있어 접시를 순식간에 싹싹 비운다. 그리고 등장하는 뜨끈뜨끈 순댓국. 아, 맛있어. 




병천순대 그 점심까지가 모든 행사의 끝이다. 그런데 덤으로 여기까지 온 김에 독립기념관을 보기로 한다. 그 옛날 처음 이 곳이 문을 열 때 아주 어렸던 우리 애들 데리고 왔었는데 그땐 아주 황량하고 썰렁했던 기억이다. 그런데 이제 이 곳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 너른 주차장에 차를 댈 곳이 없을 정도다. 게다가 단풍은 노랗게 얼마나 예쁘게 물들었는지. 산으로 좀 더 깊은 산책을 할 사람은 산으로, 살살 걷기만 할 사람은 산책로로, 우리처럼 먼 사람은 빨리 귀향길로, 하하 그렇게 각자의 길로 헤어지며 일박이일의 소중한 만남을 마무리한다. "건강하게들 지내고 있어라. 다음에 꼭 만날 수 있도록." 어느새 헤어지는 인사말에 건강이 꼭 끼어드는 나이가 되었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알베르 카뮈 이방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