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뜰 Oct 31. 2019

알베르 카뮈 이방인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제인지 모르겠다. 


헉! 이렇게 시작했나? 분명히 학창 시절 이 책을 읽고 카뮈에 대해서 논하고 했는데 왜 시작부터의 이 문구가 그렇게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걸까? 모지? 난 이 책을 읽은 걸까 과연? 여고시절에?


처음 이 책을 다시 접한 건, 그러니까 시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읽어야만 했던 여고시절 말고 나 스스로 다시 접한 때를 말하자면, 그건 우연히도 우리 집 앞 산속 독서실. 호홋 매일 오후 네시면 나랑 은퇴한 남편은 언제 이런 여유가 있었냐 싶게 한창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야 할 그 시간의 산책을 즐기고 있다. 우리 집에서 나가자마자 오른쪽으로 발길을 획 돌려 두어 발짝 가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틀면 작은 돌계단이 나오고 그걸 밟고 살짝 내려서면 그대로 나무 숲이 이어지며 산으로 올라가는 작은 오솔길이 나온다. 그야말로 나무가 울창한.


그 작은 산의 꼭대기에 올라서면, 아니 아주 꼭대기는 아니고 그러니까 본격적 산이 시작하는 그 참이라 해야 할까. 거기서 직진하여 아래로 내려가면 거대한 호수공원으로 이어지고, 오른쪽으로 가면 그냥 그곳이 마치 산등성이인 듯 산 같은 언덕 위로 길게 길이 나 있고, 왼쪽으로 가면 정말 산 꼭대기로 가는 아주 가파른, 그러나 나무 계단이 잘 놓여 있는 길이 나 있는, 일종의 사거리 같은 곳이다. 잠시 숨을 돌리는 곳.


요 거이 바로 우리 동네 그 산은 아니다 그냥 잠시 쉬어가라고 하하


거기서 대개 우리는 직진하여 호수공원으로 가는데 그날은 좀 달리하고 싶었다. 문득 그런 날이 있다. 그래서 직진 대신 우회전을 했다. 그렇게 한참 숲 속 길을 가다 보니 세상에 숲 속의 작은 집이랄까 아니 작은 카페? 여하튼 온통 유리로 된 아주 작은 집이 나오는데 그 안에는 책이 가득했다. 아니 가득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선반에 대부분 채워져 있었다. 거기 그 옛날 내가 애들에게 사줬던 글씨가 큼지막하고 꽤 잘 만들어진 하드박의 세계문학전집이 쫘악 진열되어있다. 애들과 함께 하던 바로바로 그 책이 반갑기도 하고, 언젠가 애들이 다 떠나고 더 이상 볼 사람 없다 하여 도서관에 이 전집을 통째로 기부했는데 바로 그 책일까? 싶기도 하고. 괜히 미니멀 라이프를 실행한다고 애들도 보고 나도 가끔은 들여다봤던 그 초록빛 하드박의 거대한 전집. 그걸 도서관에 기증하고 그리고 많이 아니 살짝은 후회했던. 하하 그냥 항상 우리 집 책꽂이에 있어도 되었는데. 가금 학창 시절이 그리우면 거기서 아무 거나 뽑아서 보면 그 재미도 괜찮았는데 했던 바로바로 그 전집이 있는 것이다. 기증이라고 난 거창한 뜻을 가지고 아끼던 책을 도서관에 가져다주었지만 그뿐. 그 책을 뒤져보아도 어디 기증 그런 말은 없고. 음. 어떻게 되었을까. 나의 그 책은.


어쨌든 그 안으로 들어가 책을 한 권 들고 나왔다. 그때 내 손에 들린 게 바로바로 '카뮈의 이방인'이었고, 바로 옆에 있는 기다란 벤치에 앉아 새소리 들으며 책을 읽는데 그 첫 줄이 바로 이거였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제 인지도 모르겠다.‘ 오홋 분명 내가 읽은 책인데. 그런데 이렇게?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고 팍 시선을 끄는 그 문장에 정신없이 읽고 있는데 남편이 가자 한다. 난 마냥 산속에서 이 책을 읽고 싶은데 남편은 맘에 드는 책이 없는가 자꾸 집에 가자 한다. 그래서 그대로 나왔기 때문에 그 뒤가 항상 궁금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어제, 우리가 빌린 책의 만기인 빌린 지 이주일 째가 되어 남편과 함께 도서관에 갔고, 드디어 이 책을 골랐다. 그때 잠깐 앞부분만 읽다 못 읽은 것에 대한 미련이 항상 있었기 때문이다. 난 책 고르는 방식을 바꾸었다. 검색 없이 도서관의 그 많은 책들 사이를 룰루랄라 걸으며 나에게 손짓하는 책을 고르는 하하 그 나만의 방식에서 벗어나 검색대로 간 것이다. 카뮈의 이방인을 검색했다. 그랬더니 줄줄이 책이 나온다. 와우 많기도 하다. 어디에 있는지 소상하게 나오는 자리배치표를 딱 끊어 그 자리로 가 본다. 와우 정말 많다. 이방인. 난 여기서! 하하 일단 내 손에 잡히기 쉽고 손에 꼭 들어가고 부드럽고 아무 곳에서나 부담 없이 꺼내 읽을 수 있는 것을 그 많은 책들 중에서 선택의 우선순위로 두고 골랐다. 그랬더니 최종 결선에 두 권이 걸렸는데, 안을 보니 하나는 너무 글씨가 작아 탈락. 결국 글씨가 어느 정도 크면서도 얇고 매우 부드러운 바로 위의 책이 선정되었다. 오홋. 그 책을 골라 들고 혹시나 하여 제조일자를 보니 오홋 바로바로 2018년 8월이라. 그야말로 새로 나온 따끈따끈 신상이구만. 그렇게 골라낸 책을 난 지금 서울 가는 열차 안에서 읽고 있다. 


그런데 끝까지 읽기도 전에, 너무 책이 좋아 내용이 좋아 크기가 좋아 그 부드러움이 좋아 그 느낌을 빨리 전하지 않고는 미치겠다. 그래서 그가, 돌아가신 엄마의 아들이, 즉 그 책의 주인공이 그저 장례식을 마쳤을 뿐인데 난 '아하 제1부가 끝났구나~' 하면서 노트북을 꺼낸다. 음하하하 아껴 보자는 마음도 있다.


서서히 진행되는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다. 아니 아주 신선하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그냥 나의 오늘의 삶을 보는 듯하다. 직장이며 상사며 버스며 주변 사람이며. 번역이 깔끔해서일까? 김주경이라. 작가 소개는 있지만 번역자 소개는 없다. 그런데 정말 깔끔하게 잘 번역했다. 말에 군더더기가 없다. 짧고 간결하다. 게다가 2018년 8월 출판된 책이다. 책에도 유통기한이 있겠냐마는 이런 책도 제작 날짜를 확인하면 최근 책이 무언가 읽기도 쉽고 무언가 편하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제 인지도 모르겠다.'로 시작하는 그 무덤덤한 필체는 끝까지 이어지며, 장례식장에 가면서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살던 요양소에 가면서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함께 산책하며 사귀었던 할아버지 이야기하며 장례식 그 자체 보다도 그때 그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그 세세한 느낌을 아, 어쩜 이리도 잘 묘사할 수 있을까. 슬픈 건 슬픈 건데 그런데 이 세상은 또 그런대로 돌아가고. 괜 찮 다. 정말 괜찮다.  


책을 참 잘 골랐다. 그런데 책이 무슨 달걀도 아니고 우유도 아니고 제조일자를 보다니? 푸하하하 나의 선택 방식에 너무 웃음이 나오지만 어쨌든 난 제대로 맘에 꼭 드는 책을 만났고 나의 오늘 여행은 그야말로 성공이다. 요걸 올리고 다시 책을 읽어야지. 하하 나의 10월의 마지막 날은 이렇게 카뮈와 함께 이방인 되어 멋지게 시작한다. 파이팅!



매거진의 이전글 갑질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