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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Oct 29. 2019

갑질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무언가 기분 나쁘다. 우쒸

좀 다정하게 말할 걸


아니다. 아니야. 잘했다. 그렇게 쌀쌀하게 말할만했다. 나는 지금 피곤하고 일부러 맛있는 고구마를 먹겠다고 한 건데 제대로 못 먹은 것도 짜증 나고, 거기 딸인지 며느리인지가 응대하는 것도 영 기분 나쁘고. 그래. 좀 더 다정하게 말할 필요 전혀 없었다. 그래. 잘했어. 더 쌀쌀하게 했어도 돼! 




남편과 나는 고구마를 즐겨 먹는다. 게다가 햇 고구마가 나온 요즘 얼마나 맛있는가. 그렇게 잘 먹고 있었는데 똑 떨어졌다. 이제나 저제나 사러 가야지 하던 통에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서서 무심코 게시판을 보다 고구마를 판다는 광고를 본 것이다. 오홋. 요 거이 웬 우연? "여보. 우리 저거 사자." "믿을 수 있을까?" 모든 게 합리적이어서 그 어떤 변화를 싫어하는 남편은 그냥 하던 대로 마트에서 사기를 바라는 눈치다. 아니 그러나 직접 시댁인가 친정인가에서 농사를 지었다는 저런 동네 광고는 정말 믿을만하지 않은가? 게다가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은 그야말로 농산지와의 직거래니 얼마나 실속 있고 싸겠느냐 말이다. 사실 난 가격 숫자 등에 어두워 이것이 싼 건지 비싼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농산물 직거래 아니겠는가. 글 쓴이의 시댁인가 친정도 돕고 우리도 맛있게 먹고 이런 건 당연히 해야지. 그래서 전화를 해 신청했다. 


그리고 고구마가 왔다, 그런데 끌러보니 영 아니다. 일단 고구마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아 이건 모지? "여보, 전화해서 고구마가 왜 이렇게 크냐고 할까?" 역시 그 다운 대답이 돌아온다. "전화는 무슨! 그냥 먹으면 되지. 동네에서 전화는 무슨!" 그러나 이렇게 큰 건 아니지 않은가. 거의 팔뚝 만한 왕 고구마다. 이런 건 장사꾼들이 튀겨 팔 때나 쓰는 고구마 같다. 그런 채로 전화하지 말라니 착한 나는 순종하며 그냥 전화하지 않는다. 휘슬러 낮은 거 밥해 먹는 압력솥에 들어가지도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크다. 게다가 삶아 놓으니 너무 크기도 하고 퍽퍽하기도 하고 그 좋아하는 남편의 손길이 거의 가지 않는다. 그대로 식탁 위에서 뒹굴다 쓰레기통으로 가곤 한다. 속상하다. 오늘 아침 일어나 어제 아침 삶아 놓은 고구마가 손도 안 댄 채 그대로 있는 것을 보니 또 막 속상해진다. 저대로 뒹굴거리다 곧 쓰레기통으로 가야 할 운명이 될 걸 생각하니 우쒸 정말 속상하다. 그는 아직 쿨쿨 자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난 그때 그걸 사기 위해 두들겼던 전화번호를 날짜를 되짚어 찾아낸다. 일단 고구마를 사기 위해 통화를 했었기 때문에 카톡에서 친구 추가를 하니 된다. 그래서 난 구구절절이 사연을 적는다. 일단 커다란 고구마와 바나나를 대비해서 사진 찍어 보내며 거의 바나나 한 손 크기와 같은 그 어마어마한 크기의 고구마가 왔다고. 혹시 잘 못 온 게 아니냐고. 너무 퍽퍽하고 처음에 전화하려 했지만 동네에서 전화하기도 그래서 그냥 먹으려 했는데 자꾸 쓰레기통으로 가는 것 보니 속도 상하고 해서 말이나 해본다고. 물론 우리 아파트 단지에 사는 젊은 새댁은 고구마 농사 짓는 분의 딸이거나 며느리이거나 할 거다. 그때 광고에 그렇게 적혀있었으니까. 지금 시댁이었는지 친정이었는지가 가물가물하지만. 어쨌든


한참을 아무 답이 없더니 어른들께 연락해 보고 나서 일까. '상자에 잘 못 들어간 게 있다던데 그거인가 보군요.' 하면서 '그냥 당일 전화 주셨다면 즉시 바꿔드렸을 텐데요.'로 시작이다. 거기까진 좋았다. 나도 '배려한다는 게 도리어 이렇게 될 수도 있네요.' 하면서 다정하게 나갔다. 그런데 점점 오는 대화가 그게 아니다. 드셔 보셨느냐. 사람들이 너무 맛있다고 그 커다란 고구마까지 재구매하는데 없어서 못 팔 정도인데 자기네도 그 커다란 고구마를 잘라서 구워 먹는데 아주 맛있는데 웬일이냐는 듯.  


거기까지도 난 상당히 다정하게 대꾸했다. '아, 그렇군요. 우린 남편이 안 먹어요. 퍽퍽하다고. 죄송합니다. 너무 커서 그런가 했어요.'에 딱 오는 대답 '밤고구마 구입하신 거 아닌가요?'  '네 밤고구마예요.' '밤고구마는 퍽퍽한 거예요. 작은 밤고구마도 퍽퍽해요.' 하는게 아닌가. 난 거기까지도 성실히 대답한다. '우린 항상 밤고구마 적당한 크기 것 구입하는데 맛있게 먹었거든요.호박고구마는 본래 고구마 맛이 아니라 싫어해요.' 우쒸 그런데 나의 그 말에 아무 답이 없다. 음... 갑 을로 보자면 내가 '갑' 그가 '을' 아닌가? 모지 이 태도는? 거기서부터 나의 심기는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아무 연락 없다가 밤 다 되어 그 나이 지긋한 어른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나의 심기는 이미 틀어져있다. 그래도 갑과 을이 있다면 '을'은 '갑'이 말한 것에 어떻게든 답을 하고 끝내야 하지 않을까? 답이 없는 것도 그렇지만, 그 나이 든 분 역시 나의 심기를 건드리는 부분이 있었으니 "고구마를 안 봐서 모르겠지만 상자가 잘못되어 큰 게 갔나 봅니다." 내가 사진까지 보냈는데 요게 몬말?


난 아주 쌀쌀맞게 변한다. 그래서 "네. 네." 지극히 간단하게 대응한다. "사진도 찍어 보냈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것들입니다. 그렇게 큰 것도 같은 값을 받으셨나요?" "아닙니다. 얼마 내셨나요?"  "이만 오천 원 냈습니다." "큰 건 이만 원 받았습니다. 고구마가 있으면 바꿔드릴 텐데 다 팔려서 만원을 돌려드리면 안 될까요." "아 그러니까 잘 못 온 게 확실하군요. 그렇다면 그러세요. 통장번호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하다거나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쌀쌀하게 그렇게 하고 끊었고 딸인지 며느리인지와의 카톡 하던 곳에 짧게 계좌번호와 이름만 남겼다. 


거기 답이 없다. 읽고도 답이 없다. 어쨌든 그곳의 실수이니 '죄송합니다'는 그쪽에서 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영 불쾌하다. 오래 되도록 읽고도 답이 없는 딸인지 며느리인지와의 카톡방을 보니 더욱 괘씸하다. 남편 말대로 마트에서 맛있는 거 사 먹을 걸 괜히 동네 꺼 돕자고 주장해서 요렇게 되고 나니 남편에게 미안하고. 남편은 내가 이렇게 카톡 한 것을 알면 모라고 할까. 점잖은 그는 끝까지 모르게 해야겠다. 


괜히 아무것도 모를 그 나이 지긋한 어른에게 내가 너무 쌀쌀맞게 한 건 아닐까 싶다가도 동네 아파트 단지에서 더 달라는 데 없어서 못 팔았다고 저렇게 배가 불러져 그래도 잘못 전달되었는데 내가 전화를 할까 말까 하다 안 한 그런 고통까지 생각한다면 이래서는 안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괜히 너무 딱딱하게 전화를 받았나 싶지만 아니, 괜찮다. 난 충분히 쌀쌀할 만했다. 나도 답을 않으리라. 그런데 영 기분은 찜찜하다. 우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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