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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Oct 08. 2019

언제 괜찮은 어른이 될까?

나, 신경 쓰지 마. 그냥 날도 좋은 데 왜 신청하지 않냐고 해서 해본 거야. 빼도 돼. 


아, 그 전화를 받는 순간 난 많이 죄송했다. 아, 순간의 선택이 이렇게. 정말 죄송했다. 무슨 이야기냐. 아, 그런데 난 또 그런 상황이 와도 그럴 것만 같다.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걸까? 자. 일단 무슨 이야기인지 처음부터 해보자.


은퇴한 남편은 직장동료들과 하는 'OO OB'라고 하는 골프팀에 소속되어있다. 그 팀은 번창하여 6팀이니 꽤 많은 것이다. 거기 아내들이 공을 치는 사람도 있고 안 치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은퇴해서 24시간 함께 하는 서방님이 기왕 공치러 갈 때 함께 하면 운전 안 해도 돼, 계산 안 해도 돼, 밥 신경 안 써도 돼, 여러 가지로 편하기 때문에 함께 가면 매우 좋다. 그래서 영악한 공치는 아내들은 일명 'OO OB 레이디'라 명하며 따라붙고 있다. 어떻게? 내가 주동이 되어 레이디 방을 만들고 거기서 신청을 받아 팀을 만들어 어떻게든 서방님들께 들이미는 그런 형식이다. 그렇게 하면 거의가 그곳 회원인 남편들은 일제히 부킹 시간대에 전화를 돌려 우리들 자리를 함께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많을 때는 레이디팀도 3조, 또는 2조. 적을 때는 딱 한조가 되기도 하지만 여하튼 레이디팀은 여전히 생존하고 있다. 하하 


'레이디팀 신청받습니다~ '공고를 내고 순차적으로 네 명이 신청을 했다. 물론 내가 제일 먼저 신청했고. 나는 나름 룰을 정해 순차적으로 끊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렇게 마감시간이 되어가고 있는데 그런데 일사불란하게 금방 신청한 네 명과 달리 뚝 떨어져서 마감을 코앞에 둔 조금 아까 띵~ '신청합니다~'라고 톡이 뜬 것이다. 그것도 연세도 많으시고 직장에서도 남편의 상사였던 분의 사모님께서. 음 여기서 난 잠시 갈등했다. 


제일 먼저 신청한 내가 그러나 신청한 사람들 중에는 제일 젊으니, '즐겁게들 치세요~' 하고 양보를 해드릴까? 그러나 그런 마음도 아주 잠시, 아니 그렇다면 룰이라는 게 어색하잖아? 그냥 룰은 룰 대로 지켜져야지. 누구라고 늦게 신청해도 앞으로 빼드리고 그렇게 하려면 너무 복잡하지 않을까? 그래서 잔꽤를 냈다. 룰대로 가되 그분이 너무 섭섭하지 않으시도록. 


'세 분만 빨리 신청해주시어요. 곧 마감됩니다.' 모 이런 식으로 공고를 내면서 살짝 세 명이 빨리 차지 않으면 사모님 탈락할 수도 있습니다.라는 멘트를 아주 살짝 곁들인 것이다. 가을 날씨도 좋은데 빨리 신청해주세요~ 재촉도 했다. 누군가 우리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제발 3명만 후다닥 신청해주어라. 그러면 만사 오케이인데. 하고 있던 차에 그런 전화가 온 것이다. '탈락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쓴 게 많이 걸린다. 그냥 '늦게 신청하셨지만 사모님께 양보하겠습니다~' 이렇게 했다면 얼마나 더욱 아름다울 수 있었을까. 생각이 깊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난, 정말 공을 치고 싶었기에 제일 먼저 신청했고 그리고 맨 꼴찌로 신청한 분을 떨어트릴 수밖에 없었던 건데 아, 그런데도 그런 전화를 받으니 괜히 막 죄송하고 내가 부끄럽고 그렇다. 그 공이 뭐라고. 한 번쯤 양보해도 되지. 배려심이 부족하고 너무 이기적인 것만 같아 마음이 많이 불편하다. 아이고 나는 참 언제야 괜찮은 어른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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