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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Nov 30. 2019

동네 지인들과 산행

11월 마지막 날에



우리는 세 부부다. 매주 일요일 밤이면 8시에 한 집에 모여 다과를 나누며 많은 이야기를 한다. 세 번째 주마다 자기 집에서 치르는 것이 너무 휙휙 빨리 돌아오는 것만 같아 네 번째 주에는 야외 행사를 한다. 산을 잘 타는 이가 모든 산행을 계획한다. 오늘은 그중 한 사람 다리가 아파 처음엔 경주 남산을 기획했으나 가까운 문수산행을 택한다. 10시까지 문수산 국숫집 앞에 모이기. 





낙엽이 그야말로 천지 빼 깔이다. 하하 온통 산길은 낙엽으로 뒤덮여 낙엽길이 되어있다. 오랫동안 함께 해온 우리는 가족처럼 서로 허물이 없어 그냥 막 그 앞에서 부부싸움도 하고 그런다. 




10월의 마지막 밤이 아닌 11월의 마지막 날. 11월 30일에 의미 있게 잘 모였다고 깔깔 모두 좋아한다. 반토막쯤 올라가 자리 잡고 앉아 먹거리를 끌러 놓는다. 사과, 과자, 커피. 한 부부의 늦둥이 딸이 함께 한다. 아버지와 손을 꼭 잡고 걷는 부녀. "딸이 아빠 손을 꼭 잡는 거예요? 아빠가 그렇게 딸 손을 꼭 잡는 거예요?" 부녀가 손을 꼭 잡고 걷는 모습이 너무 부러워 뒤에서 내가 묻는다. 25살 늦둥이 딸이 재빨리 답한다. "둘이 다요." 하하. 나의 돌아가신 아빠가 생각난다. 




깔딱 고개. 숨을 깔딱 쉬어주는 곳이다. 너른 판자와 나무 벤치가 곳곳에 있어 힘들게 올라온 등산객들이 쉬어가는 곳이다. 그 한가운데 스님이 자리를 잡고 딱딱 딱딱 목탁을 하염없이 두들긴다. 여기서부터 가파른 계단으로 정상까지 이어진다. 오른쪽으로 가면 평평한 길로 그러나 아주 멀리멀리 돌아 정상에 도달한다. 문수산 정상에 도달하는 길은 정말 많다. 




깔딱 고개에서 그대로 돌려 내려가기엔 너무 아쉽고 정상까지 가기엔 발 아픈 자가 걱정되고. 그래도 다행히 아직 조금 더 걸을 여력이 있다는 말에 깔딱 고개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평평한 길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기로 한다. 한참을 가 계곡에 다다르니 앗 너무도 화려한 하얀 꽃. 뭐지? 




한 분이 달려가 나뭇가지를 꺾어 온다. 우리는 바람에 날려 민들레 홀씨처럼 달라가 붙은 걸까 했는데 와우 하얀 털의 꽃 모양이 너무 예쁘다. 뽀소뽀송 솜털 같은 것이. 캬 부드럽고 아름답고. 그런데 흰색이라 잘 안 보인다. 짙은 낙엽을 밑에 깔아 사진이 좀 잘 찍히도록 한다. 



주홍색 낙엽 위에 놓으니 좀 더 하양이 빛을 발한다. 후배에게 배운 스마트 렌즈를 통해 검색하니 사위질빵이라고 나온다. 와우 사위질빵. 하하 재밌는 이름이다. 생전 처음 보는 듯 예쁘고 신비하다. 뒤적뒤적 사위질빵을 검색한다. 오예. 위키백과에 제대로 있다. 이 하얀 것은 사위질빵의 겨울 열매인 것이다. 그럼 사위질빵이란? 


사위질빵(출처: 위키백과)


덩굴을 이루면서 뻗어나간다. 잎은 1회 3줄 겹잎으로 마주난다. 꽃은 8-9월경에 피는데, 여러 개의 흰색 꽃이 잎겨드랑이에서 원추 꽃차례를 이루면서 달린다. 각각의 꽃은 십자형으로 퍼져 마치 꽃잎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4개의 꽃받침 조각을 가지고 있으며, 꽃잎은 없다. 열매는 수과로, 길이 10-12mm 정도의 흰 털이 붙어 있으며 가을에 익는다. (출처: 위키백과)


사위질빵 (출처: 위키백과)


줄기가 연하고 잘 끊어져서 붙은 이름이다. 한국에서는 사위 오면 씨암탉 잡는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사위 사랑이 극진했다. 그런데 옛 풍습 가운데 추수 때, 사위를 불러다 일을 시키는 예가 있었다. 귀한 사위가 힘들까 봐 장모가 다른 일꾼들 몰래 사위가 짊어진 짐을 덜어 내곤 했는데, 그걸 본 사람들이 잘 끊어지고 연약한 덩굴인 사위질빵으로 지게 질빵을 만들어도 안 끊어지겠다며 사위를 놀렸다. 그 뒤로 사위질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출처: 위키백과)





비가 올 듯 말 듯 우중충한 하늘. 발 밑에는 온통 뒹구는 낙엽들 고개를 들어보니 저 멀리 구비구비 아름다운 산. 앙상한 나뭇가지들. 겨울이 오고 있다. 한 해가 또 가고 있다.




발악을 하며 남아있는 몇 안 되는 붉게 물든 나뭇잎들. 아직 나무에 붙어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아무리 발악해봤자 곧 모두 떨어질 것이다. 세월은 그런 것이다. 하하 내년에 또 파릇파릇 새로 살아나겠지만 어쨌든 금년엔 이제나 저제나 곧 떨어져 죽을 날만 기다리는 꼴이다. 그 마지막까지도 이렇게 붉게 불타오르는구나. 제일 마지막까지. 장하다. 짝짝짝



하늘을 바라보면 쭉쭉 뻗은 그러나 앙상한 가지들. 오랜 세월 이렇게 우리의 한 해 한 해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무심한 듯 지켜보고 있다. 




발을 딛는 곳엔 한 해의 생명을 다하고 바닥에 떨어져 뒹구는 낙엽들. 참 편해서 좋아요. 함께 해서 좋아요. 오래된 세월만큼 쌓여온 정이 가족 같고 무얼 해도 서로서로 이해가 된다. 새로 은퇴 대열에 들어선 분이 운동에 몰입해 몸도 마음도 얼굴도 좋아졌다며 기뻐하고 힘들지만 보람찬 일을 새로 구한 이미 은퇴한 분에게 그래도 나이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격려도 한다. 귀 하나에 한 다섯 곳은 뚫어 금이며 은이며를 박은 젊은 25세 늦둥이 딸이 어른들과 잘도 어울린다. 하하 푸하하하 함께 웃고 발딱발딱 일어나 우리들 사진도 찍어주고 재빨리 많은 걸 도와준다. 국숫집에서 무생채 그릇도 비워지는 대로 발딱발딱 일어나 재빨리 채워놓는 등. 하하



열 시에 시작해 열두 시 반에 끝났으니 도무지 두 시간 반의 산행. 이미 점심시간이다. 배고프다. 문수산 아래에는 유명한 국수집들이 즐비하다. 등산 후에 부추전과 막걸리와 국수가 하나의 정규코스라 할까. 가을무라서 인지 본래 맛있는 이 곳 무 생채지만 오늘은 아주 기가 막히다. 국물이 진국인 이 곳 국수를 한 방울 남김없이 쫙쫙 다 마셔버린다. 아. 배부르고 노곤 노곤하고 하하. 집에 가서 푹 한잠 잘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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