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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Dec 03. 2019

며느리

아들의 아내

밴쿠버에서 며느리가 왔다. 며느리? 며느리가 맞나? 뒤적뒤적 위키백과를 보니 아들의 아내라고 나온다. 맞는구나. 며느리라고 하면 되는구나. 나의 아들 남편은 놓아두고 두루두루 일을 보러 살짝 혼자만 왔다. 서울 친정에 묵고 있으면서 떠나기 전 우리를 만나러 왔다. 바쁜 일정이기에 우리도 잠깐만 그 애를 보기로 한다. 바닷가로 가 회를 먹고 카페에 가 커피를 마시면 되겠다고 하니 남편은 그래도 집에 와야지 한다. 하지만 시간상 그것은 안될 것 같다. 어쨌든 상황 따라 그건 정하기로 하고 기차역으로 향한다. 당연히 리무진을 타고 우리 집으로 올 것으로 알았던 며느리는 어머니 몇 번 버스였지요? 하고 톡을 보낸다. 우리가 나간다. 하고 그 애를 맞이한다. 우리 차를 못 찾으면 어쩌나 남편이 운전대를 잡고 있고 나는 대합실로 뛰어가 기다리다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 애를 발견한다. 아니 그 애가 나를 먼저 발견하고 어머니~ 하며 반갑게 다가온다. 머리가 많이 길었다. 화장도 곱게 했다. 눈썹도 길게 붙였다. 가볍게 내 옆에 와서 달랑달랑 매달리듯 팔짱을 낀다. 잘 있었느냐 인사를 나누며 남편이 기다리는 곳으로 간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 했던가. 하하 너무 반가워하는 남편. 그렇게 나의 아들이 없이 그 애만 태우고 바닷가로 향한다. 한정식, 회, 오리, 떡갈비 중 먹고 싶은 것을 고르렴 예약해두게. 하는 나의 톡에 즉시 날아오는 대답 저는 회 먹고 싶어요. 그래서 예약해둔 바닷가 횟집이다. 사람이 무척 많은데 일찍 예약을 해두어 바닷가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는다. 바로 앞에 파도가 넘실댄다. 며늘 아이에게 듣는 나의 아들 이야기는 또 다른 감회를 불러온다. 때맞춰 밴쿠버에 있는 아들에게서 보이스톡이 온다. 우리는 다 같이 잠깐 대화를 한다. 하하. 





외국 생활 이야기며 많은 이야기가 오가지만 이상하게 나는 회가 잘 먹히지 않는다. 아침에 남편이랑 이것저것 감자며 사과며 떡이며를 먹어서 인가보다. 거봐 아무것도 먹지 말고 오자니까. 짧은 시간이기에 우리는 많은 대화를 하는 쪽으로 스케줄을 잡는다. 요즘 아주 적은 양의 술에도 음주단속에 걸릴 수 있어 안 마신다는 핑계지만 남편은 술을 잘 못한다. 그러나 며느리도 술은 좀 하는 것 같고 나도 술을 좀 한다. 그래서 우리는 소주를 한 병 시킨다. 회에 소주가 빠질 수 없지. 하면서. 




그리고 나온 예비 반찬이 만만치 않다. 멍게도 싱싱하고 뿔고동에 전복에 문어에. 뿔고동을 보니 너무 반가워 자랑스레 설명한다. 이거 우리가 초고추장 찍어먹지만 이태리 요리사 손길이 가면 어마어마하게 비싼 요리가 된다더라 하니 며늘애 손길이 뿔고동으로 바쁘다. 하하 정작 메인디쉬 회가 나왔을 때는 배가 불러 손이 가는 게 거북할 정도로 예비 반찬이 푸짐하다. 어쨌든 며느리랑 나랑 주거니 받거니 쨍그랑 잔까지 부딪쳐가며 술을 마신다. 남편은 그저 허허 웃으며 둘 다 얼굴이 발개지네. 시어머니랑 며느리의 한 잔이라. 보기 좋다. 추임새만 넣어주며 술잔에 물을 마신다. 하하 회는 삼분지 일 정도 남았고 그리고 아직 매운탕 까지는 나오지 않은 상태인데 며늘애랑 나랑 단 둘이서 소주 한 병을 다 마셨다. 


어떻게 할까? 적당하긴 한데. 어쩔까? 한 잔 더 할까? 어떻게 할 까? 새로 한 병 가져오까? 네! 어머님. 한 병 더 마셔요. 어쭈 남편의 기가 막혀하는 모습. 며늘애랑 나랑 둘이 다 살짝 발갛게 달아오른 상태. 에잇. 그래 우리가 언제 또 이렇게 마시겠냐. 그래. 내가 우리나라에 새로 나온 맛있는 소주 소개해줄게. 하고는 술병들이 좌악 늘어져있는 냉장고로 간다. 깔끔하게 생긴 파란 진로 새로 나온 소주. 16도라는 것. 맑은 그 소주를 꺼내온다. 병마개를 따서 며늘 아이 잔에 콸콸 부어주고 어머님 제가요~ 하고는 그 애가 내 잔에 붓는다. 그리고 아빠 잔엔 찬 물. 하하 그렇게 우리는 파이팅하며 소주잔을 쨍그랑 부딪는다. 파이팅. 




와우 어머님 이거 너무 맛있어요. 너무 시원해요. 그렇지? 내가 서울의 술 잘하는 친구들에게서 알아온 거야. 거긴 술 소식이 빨라. 테라도 내가 거기서 알아왔는 걸. 하하 남편이 술에 관심 없으니까 난 술에 대해 하나도 모른다. 다만 서울 모임 갈 때마다 주류팀에 끼게 되면 술에 대한 반짝반짝 소식들을 한 아름 알아온다. 거기서 연태주도 마셔봤고 데낄라도 마셔봤고 테라도 마셔봤고 새로 나온 맑고 깨끗한 진로 소주 새것도 마셔봤다. 하하 이름하여 덕수 56 골프에서 말이다. 그걸 이야기하며 남편 즉 나의 아들에게 가서 자랑하라며 난 그 소주 맛을 보여준다. 하하. 


그 애도 나도 얼굴이 발갛다 못해 시뻘겋게 닳아 오른다. 회가 좀 남았는데 매운탕이 도착한다. 우리 이거 샤부샤부 먹듯 해 먹자. 팔팔 끓고 있는 매운탕 국물에 두툼한 회를 젓가락에 꽉 집어 들고 좌삼삼 우삼삼 휘휘 저으며 살짝 익혀 생고추냉이 장에 톡 찍어 먹으니 오홋 또 다른 맛. 맛있다. 우리 안주로는 최고다. 어머니 정말 맛있어요. 하하 그렇게 나랑 며늘애는 한 톨의 회도 남김없이 싹싹 다 샤부샤부를 해 먹는다. 얼큰한 매운탕이 우리의 소주잔 속도를 빠르게 한다. 어허. 이 속도 봐라. 점점 잔 비우는 속도가 총알 같잖아. 남편의 추임새에도 속도가 붙는다. 푸하하하




어느새 두 병 째 소주를 한 방울 남김없이 깡그리 비우며 우리 며늘애랑 나는 소주 두병을 거뜬히 해치운다. 난 그야말로 알딸딸이며 얼굴이 시뻘건데 며늘애는 나보다 센가 보다 얼굴이 나처럼 심하게 벌겋지는 않다. 그 애가 나보다 두 병에서 한 잔 더 마셨는데 말이다. 하하 그걸 어찌 아느냐. 내가 따라주려는 순간 이미 그 애 잔엔 자기가 따른 걸로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어서 마셔. 네가 나보다 한 잔 더 마신 거다. 하하 그렇게 우리는 잔 수를 세어가며 꼭 같이 나누어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알딸딸 정신도 오락가락하고 배가 너무 똥똥하게 불러 살짝 바닷가를 걷기로 한다. 고깃배가 떠있고 파도 한 방울 없는 잔잔한 바다. 그러나 아주아주 짙푸른 바다. 





아, 바닐라딜라이트요? 커피 사주겠다는 말에 하하 며늘 아이는 그 커피를 기억한다. 난 그 글 '계핏가루를 왜 넣었을까?'를 우리 가족 방에 올렸던 것이다. 그래. 그 글을 적고 나서 보니 그게 할리스 커피에서 아주 유명한 인기 있는 커피라더라. 기차 시간이 다가오기도 하고 다른 곳 커피보다 꼭 할리스 커피의 그 바닐라 딜라이트를 맛 보이고 싶어 우리는 바닷가를 걷다가 울산역으로 향한다. 그리고 내가 바닐라 딜라이트를 쏜다. 셋이 쨍그랑 잔을 부딪고 마신다. 아, 정말 맛있어요. 그래 여기 웬 계핏가루란 말이더냐. 그러게 말이에요 어머님 , 코코아 가루라면 또 몰라요. 코코아 가루라는 것도 있어? 네. 그건 어울릴 것 같아요. 하하 남편도 음 이거 맛있네. 믹스커피를 너무나 사랑하는 남편이 좋아한다. 





어느새 열차 출발 시각은 다가오고  떠나는 새 아가에게 미련이 남아 기차 타는 곳까지 함께 간다. 그거 참 어색한 순간인데 그래도 남편이 원해서 우리는 그거 한다. 열차 타는 거 지켜보고 그리고 열차가 떠나기까지 서서 막 손 흔드는 그거. 어두운 창으로 며늘애가 역시 한참을 손 흔드는 게 흐릿하게 보인다. 열차 안에서는 이 밖이 잘 보이지만 열차 밖에서는 안의 며늘애가 보이다 안 보이다 한다. 그렇게 열차는 떠나갔다. 칙칙폭폭이 아니라 쒱! 번개 같은 속도로. 우리의 큰아들의 아내가 떠나갔다. 열심히들 살아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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