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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Dec 03. 2019

시골길을 걷다

언양에 있는 땅에 우리는 그 동네 분을 통해 농사를 지어왔다. 그런데 작년 아니 재작년부터 그 논을 다 갈아엎고 과일나무를 심었다. 은퇴한 남편과 무언가 해보려고. 그러나 심기만 했지 관리를 도통 안 해 나무에 열매가 열렸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대추나무 심었어요. 생 대추 가득 따다 드릴게요." 큰소리 빵빵 쳤지만 대추나무에 대추가 열렸는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나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 하긴 이렇게 서울로 다니면서 어떻게 그 농촌에 갈 수 있으랴. 어쨌든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하하 무슨 걱정이냐 내년에 다시 하면 되지. 했으나 너무 한 건 사실이다. 풀이 기승을 부려 실제 나무들보다도 더 크게 자라 그야말로 풀천지다. 난 좀 너무 했다. 남편에게 미안하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드는 생각은 아내가 바쁘면 남자들이 다 하던데. 하하 요런 터무니없는 생각까지도 든다. 그러나 남편은 절대 그 땅에 혼자 가지 않는다. 어쨌든 그 무법천지 어마어마하게 자란 풀들을 지금 힘들여 벨 필요가 있겠는가. 그냥 무엇이고 꽁꽁 얼어버리는 한겨울이 되면 그 무시무시한 풀들조차 몽땅 꽁꽁 얼어 죽어버릴 것이다. 이미 일을 그르친 나는 그 한겨울이 되기만을 기다린다. 자동 빵으로 풀이 정리될 그 날을.




영농 구입권 20만 원이 나왔는데 그걸 아직 하나도 못썼다. 이렇게 나무 심는 건 아니다. 여하튼 농협에서는 금년 교육이 있다며 꼭 참석하라고 한다. 우리 농사를 지어주던 분은 그 근처에 산다. 여하튼 농협에 가게 된 나는 그분께 전화를 드린다. 교육받고 나서 들를게요. 어쩌면 그 영농 구입권을 드리고 와야 할 듯싶다. 그래서 금년 12월이 다 가기 전에 무언가 필요한 걸 사둘 수 있도록.  


그래서 교육이 끝나고 나 혼자 그 집을 찾아 나선다. 문제는 남편과 교육 시작 때는 함께 했지만 중요한 골프모임이 있는 그는 어느 정도 있다가 골프장으로 빠지니 나 혼자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땅 농사지어주던 분과 그의 아내까지도 우리는 아주 친하다. 일 년에 한 번 쌀 받느라 만나던 것이 또 인연이 되어 친해졌다. 그렇게 세월은 사람들을 찬해지게 한다.  

 



아직 가을인 듯 너무도 파란 하늘. 맑고 환한 햇살. 한가한 농촌의 풍경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아니한가.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우만마을 가는 버스는 17분 후 도착이라고 뜬다. 17분? 그걸 기다려? 노노노 시골길을 걷자. 버스 정류장을 박차고 나선다. 음하하하. 이런 걸 신작로라 해야 할까 쫙 뚫린 도로에 가끔 차들이 쌩쌩 달릴 뿐이다. 큰길 따라 룰루랄라 걷는다. 와우 차 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래도 이 시골길을 걷는 것. 너무 재밌지 않아. 모하러 그 버스정류장에 죽치고 앉아있느냐 말이다. 그래서 나는 큰길 따라 걷고 또 걷는다. 아, 좋다. 



앗 그런데 모지? 자동차 전용도로라며 고가도로가 나온다. 저렇게 구도로와 신도로가 합쳐지는 곳 거기서 위로 올라가면 우리 땅이 나오는데. 음. 그런데 저 고가도로를 걸어서 건널 수 있으려나. 길치인 나는 길치답게 머리를 굴린다. 일단 길을 건너 도로포장된 논이 있는 길로 걸어 들어간다. 그쪽에는 새로 조성된 공단이 있고 그 공단 건너편에 우리 땅이 있으니 말이다. 그래. 이대로 가면 있을 거야. 걷고 또 걷는다. 그런데 앗 그 포장된 도로가 딱 끝나는 게 아닌가. 앗. 어떡하지? 아니? 왜 여기서 길이 끝날까? 어떡하지? 그리고 논이 이어지고 그 논 끝에는 무슨 덤불 같은 게 가득하고 그 너머에 공단 앞 큰길이 보인다. 음... 저 덤불을 건널 수 있을까? 길이 있을까? 아, 무섭다. 사람 한 명 없다. 




우리 땅 농사지어주던 분께 전화를 드린다. 교육 끝나고 간다 했으니 나름 기다리시던 눈치다. 아니, 거길 걸어서 온다고요? 안돼요 안돼. 나는 내가 있는 곳을 설명드리며 여기서 어떻게 가야 하는 지를 알려달라 한다. 설명을 듣더니 그리 가면 안된단다. 빨리 큰길로 나와 주유소 앞에 있으란다. 차를 가지고 데리러 오겠다고. 헉. 이게 뭔 말? 아뇨 아뇨 저는 걷는 게 더 좋아요. 걷고 싶어요 그냥 계세요. 여기 길에서 쭈욱 걸어가면 될 것 같아요. 안돼 안돼 그렇게 쉽게 올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이미 떠났다더니 다시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운전 중인가 보다. 아. 이리 쭈욱 가면 될 것 같은데. 할 수 없다. 조금 앞으로 가다 길이 어긋나면 그건 또 민폐가 될 터이니 그가 기다리라한 주유소로 되돌아간다. 금방 도착하며 여길 어디라고 걸으려 하냐 한다. 아무 데나 낯선 곳 걸으면 안 돼요. 여기 사고 많은 곳입니다. 하. 그래도 난 걸을 수 있는데. 제가 요즘 울산에서 웬만한 데 다 걸어가거든요. 그래도 여긴 아닙니다. 딱 잘라 말하며 나를 태운다.  



집에 도착하니 밥 안 먹었지 하며 당신들은 아점으로 열 시에 밥을 드셨다며 그냥 당신들 먹는 반찬으로 한 술 뜨란다. 같이라면 모를까 혼자는 괜찮아요. 저 교육 때 무어 많이 먹었어요. 사양한다. 그래도 유혹하는데 하하 어제 아래 김장했다며 김장김치랑 시래깃국 해서 먹으란다. 오홋? 김장김치? 시래깃국? 나의 눈이 호홋 반짝. 김치뿐이야. 그거 쩍쩍 찢어서 먹으라고. 반짝반짝 나의 눈은 이미 먹고 싶어요~ 를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으니. 하하



일부러 그렇게 내가 오면 밥을 주려 하셨는가 보다. 그냥 우리 먹는 대로야. 반찬 없어. 좋아요 그게 더 좋아요.  정말 김장 배추김치를 손으로 쩍쩍 찢어놓으신다. 그리고 밥 한 공기와 시래깃국. 당신이 재배한 배추에 재배한 고추에. 그리고 콩잎. 당신이 재배한 콩잎을 당신이 직접 삭힌 것. 그리고 장조림까지 하하 아주 맛있는 밥이다. 서방님이 된장국을 아주 잘 먹더구먼. 하며 된장도 준다. 돈을 드리려 하자 왜 이러나 그러려면 밥값도 내. 하하 그래서 그냥 된장을 받는다. 울산까지는 정말 멀다고 그러나 아주 재빨리 가는 버스가 있다며 정류장까지 태워주신다. 울산 12경 작괘천 이정표가 파란 하늘에 빛난다. 참 다정하고 따뜻한 분들 아닌가. 우리나라엔 이렇게 좋은 분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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