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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Dec 04. 2019

에잇, 빵 차 버려!

감히 너를 못 알아보는 멍청한 회사라니

남편은 이 추운 날 새벽같이 골프에 나섰다. 기회는 요때닷 나는 우리 동네 카페가 문 열기를 기다려 노트북을 들고 깊숙이 자리 잡는다. 오래 있을 거니까. 그렇게 사장님과 신 메뉴를 맛보며 커피를 마시며 자리를 지키고 앉아 노트북을 신나게 두들기고 있는데 보이스톡이 온다. 밴쿠버에 사는 큰애다. 


신나게 추진하던 일이 잘 안되었나 보다. 많이 흥분한 것도 같고 화가 난 듯도 싶다. 아빠랑 같이 통화할까?  엄마가 빨리 집으로 갈게. 아빠 지금쯤 오셨을 거야. 그러나 그냥 알려드리는 거라며 전화 안 받을 거란다. 그래서 그냥 내가 조금 더 그 애랑 통화를 한다. 이런 통화는 남편이 제격인데. 난 그저 말만 앞서고 속마음 다 들키고 상담에는 영 젬병인데 말이다. 그런데 이 큰애는 당장이라도 전화를 끊을 듯 흥분해있더니 이야기를 하는 중에 점점 안정이 되는가 통화가 길어진다. 어찌 좋은 일만 있겠는가. 기대했던 게 무너진다 해도 그게 끝이 아닌 것을. 


그러나 먼 타국이기에 많이 마음이 쓰인다. 그렇게 걱정할 일은 아니고요 그냥 알려드리는 거예요. 하지만 먼 곳에서 홀로 마음 추스리기를 해야 할 그 애가 영 안쓰럽다. 정말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걸 그 애가 알면 좋겠다. 세상엔 별 일이 다 일어나기에 그 어떤 일도 실은 그리 큰일이 아님을 그 애가 알면 좋겠다. 흥분해서 좋은 일을 전할 때와 같이 이 아이는 이 번에도 그렇게 흥분한 목소리다. 어릴 때와 꼭 같은 그 흥분한 목소리를 듣고 나는 그 애의 상태를 가늠할 수가 있다. 


살짝 이직을 생각했는가 보다. 굉장한 러브콜에 흥분했다가 어이없는 반전에 충격을 많이 받았는가 보다. 제대로 실력 테스트 후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의 통보라 기가 막힌 가 보다. 그 부당성에 비효율성에 이 애는 많이 화가 난 듯싶다. 부디 마음 편하게 그 사태를 맞이하면 좋겠다. 한쪽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는 것도 그 애가 알면 좋겠다.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데 무언가 도약을 위해 발버둥 치는 그 애에게 응원을 보내면서도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안이한 생각이 따라붙기도 한다. 그렇게 아등바등 악착같이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 애가 알면 좋겠다. 그리고 모든 건 다 지나간다. 굉장한 기쁨도 엄청난 슬픔도 무시무시한 충격도 불같은 흥분도...


남편과 함께 그 애에게 전화하여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아니라고 했으니 전화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남편이 이런 때는 참 잘하는데. 난 아닌데. 내가 진정한 위로가 되었을까? 부디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으면 좋겠다. 아니, 상처는 커녕 도리어 크게 외쳐주고 싶다. 


빵! 발길로 차 버려라. 감히 너도 못 알아보는 그 멍청한 회사!



지저분한 감정 모두 발길로 빵빵 차내 버리고 다시 새로운 맘으로 힘차게 도약하여라 멋진 우리 아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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