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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Dec 18. 2019

은퇴한 남편과 색소폰 오케스트라

섹스폰? 쎅스폰? 아, 너무 야하잖아. 사실 정확히 이 악기 이름을 부르게 되기까지 오래 걸렸다. 사전을 찾아보니 Saxophone으로 우리말로는 색소폰이라고 한다. 이 색소폰 연주자가 한 명도 아니고 열 명도 아니고 자그마치 육십여 명. 웬만한 오케스트라 수준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색소폰을 연주한다. 장소도 울산 문화예술회관. 그야말로 악기는 한 종류 색소폰뿐이지만 육십여 명이다. 색소폰에는 총 네 개의 종류가 있다. 가장 작고 높은 소리를 내는 소프라노 색소폰과 가장 일반적인 알토 색소폰과 좀 크면서 저음을 매력적으로 내는 테너 색소폰과 어마어마하게 크고 매우 낮은 소리를 붕붕 내는 바리톤 색소폰이다. 이 네 개의 색소폰 만으로 관현악단의 소리를 낸다. 어떻게? 유피티며 클라리넷이며 트롬본이며 호른이며 그 악기 명대로 파트가 주어져 악기는 색소폰이지만 클라리넷이 하는 부분을 호른이 하는 부분을 연주하는 식이다. 



악기를 학창 시절 배우못했지만 클래식 듣는 것을 꽤 즐기는 남편과 나에게 이 색소폰 오케스트라단 무척 매력적이다. 관중석에만 있던 우리 이제 연주자가 되어 무대 위에 있기 때문이다. 무대를 바라보던 우리가 객석을 바라보며 연주를 한다. 하하 밝은 조명 아래 새카만 객석을 향해 악기를 부는 연주자라니. 저 연주자는 어떤 생각을 할까? 저 연주자는 상당히 무표정으로 연주하네. 저 연주자의 손놀림이 대단해. 무대 가까이 앉아 연주자들과 함께 호흡하며 듣기만 했는데 이제 우리는 연주자가 되어 무대 위에서 연주를 한다. 까만 연미복을 차려입은 지휘자가 한가운데 있다. 우리는 악보를 보는 것 같지만 눈 한쪽을 넓게 펴 지휘자를 본다. 매주 무거동 스튜디오에서 두 시간씩 연습하고 일 년에 한 번은 꼭 이렇게 문화예술회관에서 연주를 한다. 번듯한 연주자가 된 느낌이다. 학창 시절 익혀야 할 피아노며 바이올린과는 달리 남편과 나처럼 뒤늦게 시작하고도 이런 연주가 가능한 게 바로 이 색소폰 같다. 서로 호흡을 맞추며 지휘자 손끝 따라 음의 셈 여림 빠르기를 결정하는 그 집중의 순간이 좋다. 



연주일은 바쁘다. 오늘의 복장은 검정 쟈켓, 검정 바지, 검정 구두, 검정 나비넥타이, 그리고 하얀 와이셔츠. 그러나 옷을 입고 가지는 않는다. 리허설이 있고 식사가 있고 그리고 나서야 연주가 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불편한 연주복을 입고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밥 먹으면서 혹 김칫국물이라도 흘리면 안되니까 연주복은 아껴둔다. 두시까지 집합이다. 남자는 두시까지 여자는 두시반까지. 와이? 남자들은 무대 세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하 여기서 연약한 여자들은 살짝 봐주는 것이다. 연주자가 되어보지 않고 요런 뒷구멍을 알 수 있을까? 하하 무대 뒤로 들어가는 지름길이다. 커다란 색소폰 케이스 두 개와 연주복 쟈켓 그리고 악보 가방까지. 바리바리 싸온 무거운 짐을 남편은 요 앞에서 내려놓고 안전한 곳에 주차하기 위해 멀리 간다. 나는 뒷구멍 앞 벤치에 앉아 그를 기다린다. 이미 도착한 분들이 그 뒷구멍에서 나오다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한다. 매주 함께 모여 연습하다 보니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았어도 서로 정이 든다. 오늘 드디어 우리가 연습한 일 년 동안의 실력을 발휘할 날이다. 오홋 하늘도 도와주려는가. 비 소식이 있었는데 비는커녕 아주 포근하다. 날이 따뜻하니 모두에게 따뜻한 기운이 퍼져나간다.



두시반부터 정식 리허설이다. 실제 연주와 꼭 같이 연주를 하는 것이다. 복장은 아직 자유 상태. 그런데 이런 곳에 꼭 지각하는 사람이 있다. 지휘자는 안절부절. 정식 리허설은 모든 사람이 와야만 시작할 수 있기에 전화로 연락을 하고 바쁘다. 왔대요 왔대. 휴우. 자, 솔로를 위한 마이크가 마련되고 지정된 자리에 모두 앉는다. 빵~ 프로그램대로 실전과 꼭 같이 하는 최종 리허설이다. 난 알토 파트. 빰 빠바 바바바 빰 바바 바바바 아주 적게 지휘자 손끝 따라 뱃속에서부터 호흡으로 빠앙 불어내며 우리의 첫 곡을 시작한다. 오랜 연습기간 줄기차게 이어졌던 지휘자의 세세한 지시가 또 떨어지고 있다. 우리는 새카맣게 또는 새빨갛게 적혀있는 악보 속 지시를 다시 한번 체크하며 오늘의 연주를 준비한다.



각 파트에 지정된 멤버들. 남편은 테너 색소폰이고 나는 알토 색소폰이기에 함께 오지만 일단 연습이 시작되면 우리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 함께 있는 줄도 모를 정도다. 그는 트롬본 파트를 맡아 거의 맨 뒤에 있고 알토 파트를 맡은 나는 맨 앞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주장 또는 연습장에 오면 나의 파트너는 잠시 바뀐다. 함께 알토 파트를 연주하는 나의 새 파트너는 나를 참 잘 챙겨준다. 예를 들어 물이라든가, 악보대를 접는 것이라든가, 빨간 펜을 빌려준다든가, 연필을 가져다준다든가, 악보를 정리해준다든가 푸하하하 남편이 해주는 온갖 도움을 연습장에서는 새 파트너가 해준다. 그래서 색소폰에 가는 그 잠깐 나는 체인징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음하하하 이 또한 매력적 아니겠는가.



연주 때는 드럼이 함께 하고 가끔은 심벌즈마저도 함께 하기에 정말 오케스트라 단원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둥둥 뜬다. 지휘자도 곡 속으로 빠져들고 연주하는 우리도 그 놀라운 화음의 세계에 빠져든다. 정작 이럴 때는 긴장되던 객석의 관중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그냥 나 자신이 있고 지휘자의 손끝이 있을 뿐 그렇게 집중하게 되는 이 순간 무척 매력적이다. 모두가 하나 되어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집중하여 만들어내는 멋진 노래들이라니. 한 곡이 끝나면 쏟아지는 우레와 같은 박수. 아, 우리 잘하고 있는가? 하하 열심히 한 만큼 청중들의 아낌없는 큰 박수가 너무 기쁘다.   



뱀처럼 늘어져있는 거대한 악기들. 잠시 휴식시간이다. 악보와 악기를 그대로 두고 우리는 잠시 자리를 뜬다. 그 사이 우리와 함께 공연하는 불청 퓨전난타 예술단의 리허설이 시작된다. 불청? 불타는 청춘이란다. 불타는 청춘 인양 신명 나게 북을 두들겨댄다. 보는 우리도 너무 신이 나 절로 어깨가 들썩들썩한다.



이제는 즐거운 저녁식사시간. 모든 리허설이 끝나고 예약된 식당으로 향하는 즐거운 시간이다. 악기도 악보도 모두 내려놓은 채 몸만 달랑 문화예술회관 앞에 펼쳐진 공원 길을 거쳐 식당으로 간다. 곳곳에 빨갛게 나무들이 물 들어있고 아니 그 모든 잎들은 어느새 낙엽 되어 바닥에 심하게 구르고 있다. 때는 바야흐로 12월 겨울이 아니더냐. 그렇게 또 2019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것만 같은 한 해가 저물고 있다. 휙휙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이다.



돼지고기 두루치기로 푸짐하게 식사를 한다. 오손도손 따끈따끈한 방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밥을 먹는다. 고기 좀 더 드세요. 남은 고기를 옆자리로 넘겨주고 시금치 연근조림 숙주나물 멸치조림 맛깔스러운 반찬을 더 달라한다. 집밥을 먹듯 시래기 된장국 해서 밥 한 공기를 순식간에 뚝딱 해치운다. 모두들 배가 부르니 기분이 좋다. 오늘 왜 이렇게들 잘하세요? 리허설 때 워낙 잘 맞춰지니 지휘자도 상글벙글하다. 덩달아 우리도 상글벙글하다. 이제 본 연주. 오늘은 객석이 가득 찰 것 같은 예감. 음하하하.



다시 문화예술회관으로 와 정식 연주 때까지 잠시 자유시간이다. 텅 빈 객석에서 이리저리 사진 촬영도 하고 아니면 그냥 분장실에 늘어져있기도 하고 또는 연습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색소폰 소리가 워낙 커서 모두 함께 연습을 하면 그건 또 문제다. 살살 조금씩 불어 볼 뿐이다. 손님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우린 분장실로 들어가 조용히 대기한다.



그러나 아가씨 같은 이 젊은 새댁들에겐 조용함이 없다. 깔깔 까르르르 항상 웃음 폭탄이다. 제가 사십이 되어요. 사십이에요 글쎄. 많은 세월을 함께 한 프로 전문가인 이들이 엄살을 떤다. 사십이 되었다고. 나이가 들어간다고. 이들의 만삭을 알고 하나 낳고 또 만삭 그렇게 배가 불러올 때부터 알고 있는데 세상에 그때 뱃속에 있던 애가 벌써 초등학교에 들어간단다. 이 프로 색소포너들은 연주 때 초빙되어 어려운 기교가 필요한 곳에 투입되어 우리의 연주를 매끄럽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예쁘고 밝고 재잘재잘 즐거운 이들과의 준비시간이 우리는 너무 좋다. 푸하하하 덩달아 우리에게서도 웃음 폭탄이 터진다.  

 


무대 뒤 대기 시간. 색소폰이라는 악기가 매우 무겁기에 오래 들고 서 있으면 지친다. 그래도 대개는 몸에 달고 있지만 혹자는 이렇게 무대 뒤에 가득한 조명대 위에 놓고 우리 순서가 되기를 기다린다. 살짝 무대 뒤에서 들여다보니 제대로 복장을 갖춰 입고 그 불타는 청춘 난타 예술단이 둥둥 두둥둥 신명 나게 북을 두들기며 춤을 추고 있다. 하하 재밌다. 그러나 다시 긴장해야 한다. 저 공연이 끝나면 이젠 우리의 시간. 마지막 연주가 남아있다. 집중하여 조심조심.



아, 모든 연주가 무사히 끝났다. 앙코르 앙코르 앙코르 앙코르 오홋 홀이 떠나갈 듯 박자 맞추어 소리쳐대는 앙코르 앙코르!!! 와우. 나도 저 객석에서 저렇게 힘차게 앙코르를 외쳐보았는데 우리가 그 앙코르를 받고 있다. 와우. 무대 위에서 엄청난 박수를 받는 기분이 바로 이런 거구나. 아, 우리 잘했나 보아. 노곤노곤 피로가 기쁨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모든 게 끝났다. 앙코르도 끝났다. 무대 뒤 분장실로 달려가 악기만 대충 집어넣고 후다닥 달려 나온다. 처음엔 요걸 몰랐다. 그냥 끝났으니까 하고 옷 다 갈아입고 악기 다 챙기고 늦게 늦게 나왔더니 하이고. 우리를 기다리던 방문객들은 지치고 지치고 하하. 많이 해보니 이제는 안다. 우선 손님맞이를 해야 한다는 것을. 남자 분장실에서 나와 기다리는 남편과 함께 사람 가득한 로비로 간다. 모두들 방문 온 사람들과 촬영이 한창이다. 우리도 꽃다발을 받는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이제 모든 걸 정리하러 다시 분장실로 들어온다. 그 복작대던 홀이 썰렁하다. 의자며 악보 대며 무대를 정리하는 분들의 손길만이 바쁘다. 그야말로 모든 것 끝난 뒤~이다. 아, 금년의 연주가 끝났다. 이제 긴 방학이다. 내년 초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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