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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Dec 24. 2019

크리스마스 전날 건강검진받는 여자

하핫 핸드폰 들고 나오길 잘했다. 오래 걸려 접수하고 라커룸 들어갔다 각자 갈길 가다 다시 마주친 남편은 핸드폰도 안경도 없는 채였다. "검사에 집중해야지."가 매사에 지극히 합리적인 그가 하는 말이다. 나 역시 탈의실에서 잠시 갈등했다. 갈아입으라는 환자복에는 주머니가 없다. 핸드폰을 갖고 나갈까 말까? 주머니도 없는데? 가져가지 말아야지? 많이 기다릴 텐데? 가져가야지? 하하 그러나 손에 들고 다니면 되지 뭐. 난 핸드폰을 고 나왔다. 그런데 얼마나 잘한 일이냐. 가는 곳마다 대기자가 차고 넘친다. 하필이면 이런 특별한 날 우리처럼 건강검진받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하긴 우리는 12월 31일에 받은 때도 있다. 그렇게 건강검진은 미루다 미루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 마지못해 받기 때문이다. 


유방 촬영 아 너무 아프다. "초음파 하면 이거 안 해도 되지 않아요?" 나는 너무 아파 살짝 물어본다. "미세한 석회는 초음파로 안 나옵니다. 이거로만 나옵니다." 내 유방을 이리저리 만지며 제대로 포즈를 취하게 하는 젊은 아가씨가 유방촬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양쪽에서 납작한 플라스틱 같은 강화 판이 드드드드 유방을 꽉 꽈악 눌러대는데 아 얼마나 아픈지 모른다. 납작하게 나의 유방을 꽉 눌러 잠시 아니 꽤 오래 드드드드 촬영한다. 숨도 멈추고 그 상태로 가만히 있으란다. 아, 아파. 


내시경 위내시경. 난 이거 자신 있다. 그런데 남편은 이거 무척 힘들어한다. 그래서 씩씩한 나는 생으로 하고 남편은 수면 내시경 한다. 나중에 내가 말짱한 내가 그의 보호자 되어 회복실로 찾으러 가야 할 게다. 내시경 대기실. 하얀 약을 먼저 마시고 그리고 들어가기 직전, 입을 마취한다고 무언가를 내 입속에 떨구더니 그대로 머금고 있으란다. 일분 후에 삼키란다. 시계로 확인하고 일분 후에 꼴깍 삼킨다. 입 안이 마취되어 먹먹하다. 쌩으로 맨 정신으로 내시경이다. 드디어 시커먼 내시경실로 입장이다. 정신 말짱한 채로. "옆으로 누우세요. 뒤로 더 오세요." 간호사가 먼저 자리 정비를 하더니 의사 선생님 오신다. "시작합니다." 하면서 반짝반짝 작은 전구 달린 호스를 내 입 속으로 집어넣는다. 아, 난 잘할 수 있어. 암, 난 이거 잘해. 눈을 꼭 감으니 절로 하나님이 찾아진다. 하나님 제발 제발 저를 안 아프게 해 주세요. 제가 잘 참게 해주세요. 그러고 있는데 들려오는 간호사의 목소리. "눈뜨세요." 눈을 뜨란다. 와이? 무서운데 왜 눈을 뜨라 할까? 그래도 명령이니 뜰 수밖에. 반짝 눈을 뜬다. 그리고 목에 온 몸에 힘을 빼란다. 아니 내가 잘 못하고 있는가? 지난번 할 때는 너무 잘한다고 의사 선생님께 칭찬도 받았는데? 그래서 또 쌩으로 하는 건데? 힘을 뺀다. 목에서도 몸에서도 힘을 뺀다. 축 늘어지듯 힘을 뺀다. "침을 삼키세요." 꿀꺽 침을 삼킨다. 무언가 뱃속으로 쑤욱 들어가는 느낌. 그 와중에 들려오는 "참 잘하시네요." 칭찬에 하하 으쓱으쓱 막 신난다. 하하 푸하하하 암 그렇고말고. 내가 쌩으로 내시경을 얼마나 잘 받는데. 장내시경도 쌩으로 한 사람이야. 엣 헴.


아 그런데 힘들다. 지난번 의사는 호흡법도 알켜 주어 지시 따라 호흡하니 아주 쉽게 끝난 느낌인데  그런데 오늘은 오래 걸리기도 하고 지난번 의사 선생님은 참으로 부드럽게 나의 호흡과 착착 맞아 들어가며 이까짖것 하게 했는데 이번 의사 선생님은 무언가 마구 거칠게 쑤셔 넣고 휘젓는 느낌이다. 아, 정말 힘들다. 참기가 힘들다. 하나님 제발 빨리 끝나게 해 주세요.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아, 못 참겠어. 오래 걸린다. 호흡법 그런 것도 없다. 그냥 무지막지 휘둘려대기만 한다. 우쒸. 


복부 초음파. 캄캄한 방이다. 배를 빵빵하게 하란다. 아, 그건 자신 있지. 내가 색소폰 불 때나 성가대에서 노래할 때나 복식호흡이 기본이므로 배운 대로 복식호흡을 하며 숨을 들이마셔 배를 빵빵하게 만든다. "배로 숨 쉬지 말고 가슴으로 쉬세요. 배에 힘 빼세요." 헉. 복부 호흡 아닌가 보다. 


하나씩 복잡하고 하기 싫은 검사들이 그냥 의자에 앉아 있다 내 이름 부르는 곳으로 들어가면 끝이다. 일단 오기만 하면 되는데 그걸 왜 그렇게 미루다 미루다 크리스마스 전날에야 할까. 그래도 12월 31일보다는 조금 진전했다. 푸하하하 나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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