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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바 Apr 03. 2024

제2의 고향 쿠알라룸푸르 안녕

떠나기 전 마음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정착 시기

1. 첫 번째 정착 실패: 2018년 9개월
2. 두 번째 정착 실패: 2020년 6개월
3. 세 번째 정착 성공: 2022년 9월 ~ 현재
(쿠알라룸푸르에서 쿠칭으로 이주)

말레이시아 사람들과의 인연


1. 마사지 샵에서 만난 아저씨


쿠알라룸푸르 최대 번화가는 부킷빈탕 지역이다. 잘란알로 야시장 주변에는 마사지샵이 즐비하고 있다.


2018년. 부킷빈탕 거리를 걷다가 한 마사지 샵에 들어갔다. 발 마사지를 받았다. 그때 만난 제임스(가명) 아저씨가 다섯 살 된 아들을 보고 예뻐해 주었다. 그 후로 단골이 되었다. 때로는 간식도 사주고 때로는 말동무도 돼주었다. 진심으로 아들을 좋아해 주었다. 쿠알라룸푸르를 떠나기 전에 마사지 샵에서 작별 인사를 했다.


2020년. 남편과 아들을 데리고 마사지샵에 갔다. 2년 만이다. 여전히 제임스는 아들을 예뻐했다. 많이 컸다며 아들을 번쩍 안아주었다. 그 이후 코로나가 터졌다. 한 번만 보고 만나지 못했다.


2022년. 아들을 데리고 또다시 마사지 샵에 갔다. 제임스가 안 보였다. '어디로 갔을까?' 궁금했다. 직원한테 물어보았다. 일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어느 날 부킷빈탕 거리를 걸었다. 우연히 제임스 아저씨를 마주쳤다. 제임스가 먼저 아들을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2년 반 만이다. 아홉 살 된 아들을 한눈에 알아봐 준 것이 신기했다. 그동안 서로의 근황들을 이야기했다. 제임스는 다른 마사지 샵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킷빈탕에 갈 때마다 마사지 샵을 갔다. 제임스는 아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다.


쿠알라룸푸르를 떠나기 3일 전


아들은 제임스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엄마와 마사지 샵에 가면 누군가가 자신을 예뻐했다는 것을 기억한다. 좋았던 감정은 무의식 속에 있었나 보다. 마사지가 끝나고 제임스는 아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이번에도 아들을 번쩍 안아준다. 그리고 아들에게 말한다.


"처음 만났을 때는 작고 가벼웠는데 이제는 커서 무거워졌네"


제임스는 5년 동안 아들의 성장을 본 사람이다. 우리를 볼 때마다 진심으로 대했다. 그 마음이 따뜻했다.


2. 유튜브로 알게 된 친구


2018년. 유튜브를 시작했다. 어느 날 우연히 내 영상을 보고 나와 친구하고 싶다는 메일을 받았다. 한국어를 예능과 드라마로 독학한 말레이시아 사람이었다. 스물두 살. 쿠알라룸푸르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미아(가명). 우리는 만나기로 했다. 다섯 살 된 아들을 데리고 식당에서 기다렸다. 십 분뒤에 미아가 도착했다. 미아의 언니와 동생도 같이 만났다. 그들은 아이를 좋아해서 아들과 놀아주기도 했다. 그 당시 아들은 영어를 말할 수 있어서 귀여움을 한 몸에 받았다.


미아는 한국어가 수준급이라서 막힘 없이 대화했다. 서로 궁금했던 문화에 대해 질문했다. 나는 무슬림 여성이 쓰는 히잡에 대해 물어보았고 미아는 장롱면허에 대한 뜻을 물어보았다. 나는 절로 신이 났다. 외국인 친구와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언어 장벽 때문이랄까. 한국어를 잘하는 미아 덕분에 금방 친해졌다. 그들과 정이 들었는데 헤어짐은 아쉬웠다. 우리는 같이 밥을 먹고 작별 인사를 했다.


"언니! 나 한국어 글씨 잘 못써!"


미아가 수줍게 건넨 한 통의 편지

언니. 나 미아야.
언니를 만나서 너무 기뻐.
언니가 어디에 있든 행복하게 살아.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만나자.
그리고 내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귀엽게 한국어로 적혀 있는 편지를 보고 감동받았다. 같이 만났던 미아의 언니와 동생도 짧지만 한국어로 한 마디씩 적혀있었다. 말레이시아를 떠나고 가끔 미아와 문자나 영상 통화를 하며 지냈다.


2020년. 서로 바빠서 만날 기회를 보고 있다가  코로나 때문에 결국 만나지 못했다.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갔다. 오랜만에 미아와 연락을 했다. 카카오톡 메신저로 우리가 보고 싶다는 말과 함께 망고 빙수 쿠폰을 선물로 보냈다. 그 당시 부산 여행할 때 쿠폰을 사용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궁금해졌다.


나: 부산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어디야?

아들: 망고 빙수 먹었던 설빙이요!


아들도 예쁜 여행지보다는 따뜻한 미아의 마음이 더 좋았나 보다.


2022년. 드디어 우리는 4년 만에 만났다. 망고 빙수 쿠폰을 주기도 했고 아들 영어 튜션을 구해주기도 해서 밥 한 끼 대접했다.*할랄 인증 된 한국 식당에서 미아와 미아 가족들을 만났다. 치킨, 김치찌개, 등을 시키고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했다. 미아는 대학교 석사 과정을 마치고 취직했다고 했다. 나보다 어리지만 배울 점이 많은 친구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바로 헤어지기 아쉬웠다.


무슬림은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를 한다. 다른 장소로 이동하면 모스크에 들러야 한다. 방에서 기도를 드려도 되기 때문에 우리 집으로 같이 이동했다. 운전을 하는 미아 언니 덕분에 집까지 편하게 왔다. 아들은 노래방 마이크를 가지고 왔다. 한국 노래를 좋아하는 미아를 위해 불렀다. 미아 동생은 아들에게 한 마디 했다.


"뺀(팬) 임니따아~~!!"


어설픈 한국어라도 좋다. 마음으로 전해졌으니 말이다. 어쩌다 보니 아들 장기자랑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다 같이 호응도 해주고 박수도 쳐준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새 저녁이 다가온다.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같이 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할랄 인증: '허락된 것'을 뜻하는 아랍어로 무슬림이 먹거나 사용할 수 있도록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도살•처리•가공된 식품에만 부여되는 인증 마크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2023년. 인도네시아 발리에 간 적이 있다. 발리에서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비행기(에어아시아)에서 사전 공지 없이 계속 연착이 되었다.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웅성 거린다. 큰소리치는 사람도 있었다.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다. 비행기에 문제가 생겼다고 비행이 취소되었다. 경유가 아닌 쿠알라룸푸로 가는 사람들은 다음 비행기 시간으로 변경할 수 있었다. 속 터지는 일 처리에 나는 초조해졌다. 이 일을 미아에게 말했다. 열 시간 만에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새벽 1시. 미야는 공항에 마중 나왔다. 그 시간에 그랩 택시가 잘 안 잡힐 거라며 우리를 위해서 기꺼이 와주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알아서 가겠다고 거절했지만 한사코 제발 그렇게 해달라며 부탁했다. 나 혼자 발리에서 상황 파악도 하랴 아들도 신경 쓰랴 피곤이 몰려왔다. 창 밖은 컴컴했다. 공항부터 집까지 한 시간 거리. 덕분에 편하게 집에 왔다. 고마운 마음은 밥 한 끼로 전했다.


내가 부담을 느낄까 봐 미아가 한 말이 있다.


"언니! 우리는 가족이잖아."


왜 쿠알라룸푸르가 제2의 고향이 되었을까?


정서적인 마음 교류


2020년. 우울증 진단을 받은 이후에도 가장 가까운 가족(친정•시댁)과 정서적인 마음을 나누지 못했다.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마음이 따뜻하다. 쿠알라룸푸르에 살면서 마음을 나눈 친구가 있어서 정서적으로 마음이 안정되었다. 마음이 편안했다. 진짜 가족처럼 느껴진 미아와 제임스 아저씨가 있어서 또다시 말레이시아에 오고 싶었다.


떠나기 전 마음


나에게 힘이 돼주었던 그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이제는 쿠알라룸푸르를 떠난다. 이곳을 떠나도 내 마음속 제2의 고향은 쿠알라룸푸르다. 


아쉽지만 쿠알라룸푸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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