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2번,
1600km의 결정, 귀농

Feat. 스페인 사과

by 히브랭

아버지는 63세, 65세에 어머니와 함께 두 번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셨다. 40일 동안 800km 이상을 걷는 산티아고 성지순례길은, 아버지가 가셨을 때에는 지금처럼 유명하지 않았다. 정보도 한정되어 있고, 순례길에 한국인도 별로 없을 때였다. 아마도 60세 이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신앙심이 맞물려 순례길을 선택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그 1600km를 걸으시면서, 어떤 마음이었을지 30대인 나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두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고, 그다음 해에 바로 귀농을 하셨다. 왜 귀농을 결심했냐고 여쭤보면, 순례길에서 먹은 스페인사과가 너무 맛이 없어서, 한국 사과가 그리웠다고 하신다. 60세 이후,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지만 선택권이 많지 않으셨을 것이다. 남은 삶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순례길을 걷던 도중, 스페인 사과밭을 지나면서 기대감에 한입 베어 물던 사과에는 한국 사과처럼 새콤달콤한 맛이 없었다보다. 그렇게 운명처럼 사과밭을 선택하셨다.


아버지는 태생이 서울출신이다. 그래서 농사일을 모르는 상태로, 과수원 일이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귀농을 선택했다. 언제 다시 서울로 올라갈지 모르니, 첫 해에는 찜질방이나 인근 숙소를 잡고 지내셨다. 일주일에 3일은 서울, 4일은 풍기에 있곤 하셨고, 나도 휴가를 내서 함께 내려가곤 했다. 그렇게 2~3개월, 사과밭 기술을 조금씩 배우며, 이곳이 인생 3부의 좋은 터라고 확신을 하시고 완전한 귀농을 하셨다.


이후, 집을 짓지 않고 컨테이너 집을 사과 밭 가운데 만드셨다. 열심히 농협과 인근 조합을 다니고, 주위 분들에게 자문을 구하면서 그렇게 하나씩 다시 쌓아 올리셨다. 이제는 7년 차 농사꾼이 되어 사과알도 제법 크고, 선물용으로 분류되는 좋은 상품도 많이 나오지만, 첫 해에는 엉망이었다. 거의 모든 사과가 상품성이 떨어져 사과즙이 되었다. 첫 사과 판매를 위해 농협에 갔을 때 '왜 이게 D등급이냐'라고 울분을 토했던 초보농사꾼의 모습도 기억난다. 아버지의 인생 3라운드는 이렇게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심'으로만 시작됐다.



귀농 TIP

1. 귀농 쉽지 않다. 간 볼 시간을 충분히 필요하다.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다는 편한 마음으로 시작하자.

2. 집을 짓지 말고, 컨테이너 집으로 시작하자.


자녀 TIP

1. 귀농을 선택하게 되는 배경에 대해, 그 나이대의 남자 삶에 대해 충분히 상상해 보자.

2. 새로운 도전에 근심과 걱정보다, 용기를 드릴 수 있는 말들을 의도적으로 많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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