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의 정치학

Feat. 텃세

by 히브랭

귀농하면 뒤따르는 질문이 바로 '텃세'이다. 어디서 유래했는지 모르지만, 귀농하면 텃세 때문에 적응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단어가 갖는 부정적인 억양 때문에, 마치 텃세를 부리는 주변 주민들이 귀농을 방해한다고 생각하게끔 만든다. 아버지의 귀농을 지켜본 나로서는 이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동아리를 해도 '정치'가 있다. 편을 먹고 경계하고 본인이 이득 되는 방향으로 생각한다. 당연히 평생 작은 지역 안에서 수십 년간 마주쳐야 하는 사람들끼리는 정치가 더 강하다. 아버지가 처음 왔을 때, 자기편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방문해서 말을 걸었다고 했다. 단순히 호의라고 생각했지만, 한쪽과 친해지면 다른 쪽에서는 이상한 이야기가 흐르곤 했는데, 여기서 텃세라는 것이 나온다. 친해진 주민들은 김치를 주고, 사과밭 기술을 알려주며 적극적이나, 반대로 이런 상황이 불편한 주민들은 수도, 토지 등 관련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며 아버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서울에만 산 나는, 작은 시골이 사람도 적고 교류도 적은데 새로운 사람(아버지)이 가면 당연히 반겨주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면, 새로운 사람을 받는 그 농가 사람들은 아버지를 3가지 부류 중에 하나로 생각했을 것이다.

1. 검증되지 않은 외부인
2.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 도시인
3. 생계인 이곳에 노년을 즐기러 온 부유한 사람
▶ 밭일 제대로 안 해서 피해줄 사람

이렇게 생각하면, 굳이 친절을 베풀 필요도 없으며 동시에 농사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귀농인을 예민하게 볼 수밖에 없다. 한 농가에서 농약 등을 제대로 못 치면, 순식간에 다른 농가까지 벌레들이 생기기 때문에 초보 농부가 왔을 때 당연히 일을 잘하나 못하나 감시하게 되고 의심스러웠을 것이다.


다행히 아버지는 이런 불편한 상황들을 '막걸리'로 해결했다. 상시 막걸리와 떡을 드실 수 있게 준비했고, 누구든지 밭에 오면 한잔 하면서 편하게 말씀을 이어가셨다. 굳이 본인을 어필하려 하지 않으셨고, 서울에서 무엇을 하다가 내려왔는지도 (7년 차인 지금까지도)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낮에 말이 잘 통하신 분이 있으면, 밤에는 바비큐를 하자고 다시 초대하곤 하셨다. 이런 '비비기 능력'은 전국 공사현장의 현장소장과 직원들을 다뤄야 하는 일을 25년 넘게 하시면서 쌓인 노하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막걸리 정치를 수년 누적하니 이제는 완전한 지역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고, 귀농 4년 차에는 청년회장을 권유받으셨다고 한다. (농담이 아니라, 69세 때 권유받은 직책이 정말 '청년회장'이다. 그 동네에서는 막내이시기 때문이다.)


나도 내려가면, 꼭 저녁에 동네 이장님이나 주위 분들과 함께 바비큐를 먹었다. 청년들이 없고, 자녀분들이 자주 올 수 없기 때문에, 젊은 청년이 함께 막걸리를 마시며 이야기를 잘 들어주니 재밌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술을 건강상 마시진 않지만, 가서 반갑게 인사드리고 잔 올리면서 자리에 동석을 해도 좋아하신다.



귀농 TIP

1. 역지사지로 생각하면 텃세가 당연하다. 스스로 노력해서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2. 나의 밭 상태가 주변 밭에 큰 영향을 준다. 그래서 지역 주민들이 매의 눈으로 잘하는지 지켜보고 있으며, 수시로 방문하여 말을 건다. 이때, 이들을 환영해 줄 막걸리와 떡, 주전부리 등을 상시 준비하자.


자녀 TIP

1. 밭을 방문하게 되면, 꼭 주변분들께 인사드리자.
(자녀들이 와서 인사 안 하고 가면, 아버지가 여전히 객지 사람으로 느껴질 것이다.)

2. 가능하면, 주민분들께 저녁 식사 하면서 막걸리 한잔 따라드리자.
(난 아버지 혼자 계셨기 때문에, 혹시 연락 안 될 경우를 대비해서 만나시는 분들 번호를 모두 저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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