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의전
육아하기 전에는 귀농하신 아버지를 도우러 자주 내려갔다. 때때로 일손이 많이 필요할 때에는 친구들과 함께 내려가곤 했는데 도움이 됐는지는 의문이다. 노동을 시키려는 자와 놀러 온 자의 묘한 신경전 속에, 식비와 술값만 나갈 뿐이다. 물론, 친구들과 추억 쌓는다는 점에서는 매우 기분 좋은 동행이지만, 과수원 지킴이 아버지에게는 적자를 보는 날이다.
한 번은 5명의 친구들이 한 번에 내려왔다. 한참 수확철에 함께 내려갔는데, 정말 운 나쁘게도 '비'가 왔다. 처마 밑에서 비 구경하면서 5명 장정이 가만히 앉아있는데, 이장님이 지나가면서 한 말씀하셨다.
"비 온다고 놀면 농사일은 누가 하나. 너희들 오면 다 적자인데, 빨리빨리 움직여라!"
친구들은 구시렁거렸지만, 비 맞으면서 일 시키기 미안했던 나는 기뻤다. 덕분에 다들 비 맞으며 바닥에 떨어진 낙과와 길 정비를 했다.
아들 친구들만 적자가 아니다. 아버지 친구분들이 오셔도 똑같다. 농사일은 항상 바빠서, 할 일이 많은데 친구가 오면 기차역부터 점심, 저녁, 아침식사까지 의전이 필요하다. 그리고 먼 걸음 와준 것에 고마워하시며 사과즙이나 사과박스를 집으로 보내주신다.
아들 친구나 아버지 친구나 도와주러 온다 했지만, 얼마나 일을 하겠는가. 힐링하러 시골 온 만큼, 적당한 노동 후에 밤에는 바비큐에 술을 무한 제공하신다. 일하며 흘린 땀에 취해, 자연에 취해, 술 한잔에 취해 친구들은 매우 만족한다. 그대들의 만족은 아버지의 적자라는 것을 모른 체! 다음에 또 오겠노라 하면 아버지는 언제든 오라라 하시지만, 실제 마음은 다를 것이다.
그럼(적자)에도 누군가 내려와서 웃음꽃을 피우고 가면, 또 한동안 올라(반려견)와 둘만 있어야 하니 자연스레 다음 손님이 기다려진다고 하신다. 그래서 아버지의 귀농 밭에는 친가 외가 친척들과, 아버지 친구들, 내 친구들, 어머니 성당 친구들 등 다양한 분들이 오고 가신다. 이런 부분이 귀농의 한 재미 아닐까. 가까운 지인들에게 새로운 공간을, 새로운 삶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
귀농 TIP
1. 성수기 때는 친구들을 부르지 말자! 어쩔 수 없이 의전(?)을 해야 해서 노동 시간이 줄어들고 초조해진다.
2. 도와준다는 마음만 받자! 내려오는 친구들은 자연 속에 힐링하러 오는 것이다.
자녀 TIP
1. 친구들과 함께 귀농한 아버지를 돕는다는 생각을 접어라! 일에 서툴고 잠깐만 있기 때문에 친구들은 오히려 방해가 되곤 한다.
2. 내려가기 전에 딱 끝냈으면 하는 일을 정해두자! 여러 명이 있을 때만 가능한 일들 (돌벽 쌓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