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언철 Nov 25. 2023

의사가 아닌 환자 보호자

 그날은 별다른 일 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날씨도 화창했고 기온만 좀 싸늘한 평범한 겨울 중 하루였다.  수많은 날들 중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면 내가 일하고 있는 병원에서 부모님이 검진을 받고 계신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이 나의 평범한 하루에 별다른 큰 사건은 아니었다. 여태까지 부모님 건강에 별문제가 없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진을 끝내고 부모님이 내 얼굴을 보시겠다고 내 연구실에 잠시 찾아오셨다.


"검진은 잘 끝나셨어요?"

"별거 없이 잘 끝났어. 근데 엄마 목에 뭐가 보인다고 하던데... 그래서 조직 검사까지 했어."

"목에요?"


 평온했던 평범한 나의 하루가 갑자기 초등학생 때 어머니 병간호를 해야 했던 그날로 바뀌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생 때 갑상선암으로 이미 두 차례 수술을 받으셨다. 그때는 환자가 수술을 하면 가족 중 누군가가 간병을 해야 했다. 그 당시에 나는 일 나가셔야 하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수술받은 어머니 옆에 있었다. 사실 어머니 입장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 신경만 쓰이는 간병인이었을 것이 분명했고 두고두고 어머니께 미안함이 마음속에 남아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어머니가 수술을 받으셨는지도 잊을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이미 수술을 받으셨고 문제가 없이 오랜 기간을 보내다 보니 수술을 받으셨던 목 부위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아차'하는 생각이 머리를 때렸다. 부랴부랴 확인한 검사에서 목에 커져있는 임파선이 여러 개 보이고 암의 전이가 의심된다는 결과가 적혀있었다. 가장 큰 건 4센티미터 정도로 꽤 크기가 있었다. '이렇게 클 때까지 의사 아들과 의사 며느리가 있었는데도 몰랐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는 자책이 머리를 속을 가득 메웠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고 의사가 되고 나서 가장 먼저 챙긴 것이 부모님들의 건강검진이었다.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진작에 그 검사를 빼지 말고 해 볼걸...', '왜 그때 그 검사 빼고 했을까?', '이 검사 확실한 거겠지? 다른 병원에 가서 검사를 다시 해볼까?', '진료는 어디서 보셔야 될까? 서울? 아님 여기?', '서울에서 수술하셔야 된다면 병간호는 어떡하지?', '우리 병원에서 하시는 게 더 나으려나?', '어머니, 아버지한테는 어떻게 이야기하지?', '수술은 가능은 한 거겠지?'

이런 수많은 생각이 두서없이 머릿속에서 왔다 갔다 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머리는 뒤죽박죽이 되어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먼저 아내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다.


"어떡하면 좋지?"

"일단 조직 검사 결과부터 보고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지"

"수술하셔야 된다면 어디가 좋을까?"

"먼저 어머님과 아버님께 말씀드리고 상의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일단 검사 결과 기다리고 그 사이에 좀 알아보자."

 

 어렸을 적 보았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등장인물 중 남편은 의사이지만 정작 부인의 암을 발견하지 못하고 의사임에도 가족의 아픔을 몰랐다며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이 나온다. 어릴 때 생각으론 어떻게 의사인데 부인의 질병을 모를 수가 있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정작 내가 의사가 되어보니 내 가족이 아프면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외과 의사였던 아버지가 충수염이 의심되는 아들을 지금 가봐야 전공의 애들 바쁘니 내일 아버지 출근할 때 병원 가자고 해서 밤새 아파서 힘들었던 이야기,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인 며느리를 가진 할머니가 손주 열나는데 별거 아니라고 하니 걱정돼서 다른 소아과 데려간 이야기, 부모님이 아파서 전화했는데 별거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끊어버려서 매우 서운해하셨다는 이야기와 같은 이야기는 내 주변에 의사들에게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 들이다. 하지만 그런  일화들이 나에게는 가볍지 않게 다가왔다. 어머니는 아무런 증상도 없었고 내가 눈치챌 수 있을만한 것이 없었다고 자기 위로를 해도 그걸 알아채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덜어줄 수는 없었다.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왔다. 갑상선암 재발이었다.


 집에 어머니랑 둘이 저녁 시간에 마주 앉았다.

"엄마, 이거 암 재발이 맞는 거 같고 수술해야 할거 같아요."

"그럼 수술해야지."

"엄마 수술을 서울 쪽으로 가서 수술하는 게 나을지 조금 고민은 되네요."

"아들~ 난 그냥 아들이 있는 병원에서 하고 싶은데... 그게 마음이 편할 거 같은데."

지금도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병간호를 잘하지도 못하고 무뚝뚝한 아들인데, 내가 있는 곳이 마음이 편할 거 같다는 말씀에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우리 병원 이비인후과 과장님과 흉부외과 과장님께 말씀드리고 수술 일정을 잡았다. 수술 전날이 다가왔고 어머니는 입원하셨다. 이비인후과 진료실에서 수술 과정과 합병증에 대해 설명을 듣는데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지만 모든 게 새롭게 들렸다. 어머니와 같이 수술 설명을 듣고 보호자로 동의서를 작성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가 어머니 간병을 하던 때를 지나 시간이 많이 흘러 중년이 되어버린 아들이 보호자로 어머니 곁에 있으니 내 마음의 죄스러움이 조금은 덜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수술은 긴 시간 힘들게 진행되었지만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강직하게 잘 이겨내셨다. 의사인 나는 수술 후 통증이 있는 환자들에게 쉽게 진통제를 처방했지만 어머니가 호소하시는 통증에는 안절부절못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식사를 못하겠다고 할 때 나는 가끔은 다그쳐 식사 진행해 보시도록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목이 아파 식사하기 힘드신 것은 어찌하면 좋을지 몰랐다. 어머니 수술 앞에서는 의사인 나는 있을 수가 없었다. 의사인 내가 환자 보호자인 나와 다르다는 것을, 객관적이어야만 하는 의사인 내가 객관적일 수 없는 환자 보호자인 나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했다. 수술 후에 병실에 가면 여전히 어머니는 가서 니 일 보라며 자꾸 쫓아내셨다. 어머니께는 어쩌면 난 여전히 신경 쓰이는 철부지 아들로 보일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머니는 수술 후에도 나를 보고 웃어주셨다. 그런 밝은 표정이 수술 결과를 말해주는 듯했다. 어머니는 잘 퇴원하셨고 지금은 수술 전과 같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신다.

 

 어머니가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고 회복하기까지 나는 의사가 아닌 환자 보호자였다. 환자 보호자인 나는 의사가 아닌 그냥 아픈 우리 엄마를 걱정하는 아들이었고 그 어떤 의학 지식도 환자 보호자인 나에게 마음의 위안이나 위로를 주지 못했다. 내 가족이 아프다는 건 의사로서 가져야 하는 객관적 시선의 예외이기 때문이다. 의사인 나는 어머니의 수술이 어떻게 진행될 것이며 어떤 부분이 힘든지 잘 알고 있었고 수술 후 어떤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환자 보호자인 나의 걱정을 덜어주기엔 역부족이었다. 그저 어머니가 마취에서 잘 깨어나시길, 수술장에서도 수술 후에도 어떤 문제도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아들일 뿐이었다. 나에게 오는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들도 내가 겪었던 그 과정을 거쳐서 왔을 것을 생각하니 환자와 보호자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의사에서 환자 보호자가 되어 보니 의사로서 나의 부족함이 보였다. 검사를 받을 때의 의구심, 확진을 받을 때의 우울함, 병원을 결정할 때의 혼란스러움, 수술을 받아야 하는 두려움, 재발에 대한 염려, 죽을 수도 있다 공포... 그런 수많은 감정을 한 아름 품고서 나의 앞에 환자와 보호자들은 앉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와 같이 있는 순간에도 수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의사는 믿을만한 사람인지, 이 병원은 괜찮은 병원인지, 여기에 치료를 맡겨도 되는 것인지... 그런 마음을 이제는 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환자와 보호자에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지금도 하고 있다. 내 가족의 아픔이 나에게 주었던 두려움과 불안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은 어쩌면 환자와 보호자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같이 하는 것의 시작점은 공감이라는 생각이라는 든다. 그래서 나는 항상 진료를 시작하기 전에 마음속으로 되뇌는 말이 있다.  '당신들이 얼마나 두렵고 불안한지 저도 겪고 보니 잘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주치의인 제가 당신들의 그런 마음을 나눠서 짊어질 테니 걱정하지 말고 같이 노력해 봅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